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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되어가고 있다 ' - 김지한 리차드 신부님 (파푸아뉴기니 지부)
작성자임성근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05 조회수821 추천수8 반대(0) 신고

                                 
           

     김지한 리차드 신부 / 파푸아뉴기니 지부

 

 

 8년이라는 세월을 앞만 바라보고 달려왔다. 이 글을 쓰면서 꼭 8년 전 파푸아뉴기니에 첫 발을 내딛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삶이 선명하게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벌써 꽤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지냈다.

 

 그동안 몇몇 회원들은 여기를 떠났고, 또 몇몇은 새로 합류하여 함께 살아가고 있다. 다른 형제들에 비해 유난히 잦았던 본당 이동, 집 지으려고 이곳에 온 것도 아닌데 늘 따라다녔던 건축…쉽지만은 않았던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가슴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이곳 사람들로부터 받아온 사랑이다.

 

 물론 본당에 따라, 또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곳 사람들의 신부에 대한 사랑은 한국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귀한 것이든 하찮은 것이든 무엇인가가 생기면 본당 신부 주겠다고 찾아오는 자매들, 본당에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기쁜 마음으로 함께 해주는 형제들, 허구한 날 나에게“못된 놈들”이라는 소리에 이어 꿀밤을 얻어 먹으면서도 함께 놀아주는 꼬맹이들. 이들이 함께 해주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혹자는 나에게 외롭지는 않은지, 한국에 가고 싶지 않은지, 가족들 보고 싶지 않으냐고 물어보지만 나의 대답은 항상‘아니요’이다. 물론 나의 부모님과 형제들은 보고 싶다. 하지만 예수님 말씀대로 당신을 따르기 위해서는 가족도 생각하지 말아야 하니까 접어두고 살아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곳에 나의 새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다.어느 집 아빠는 사냥하다가 다쳤고, 어느 집 엄마는 언제 아기를 낳고, 어느 집 꼬마는 어제 머리통이 깨졌고 등등 날마다 동네의 새로운 소식을 접하면서 나도 그들처럼 되어가고 있다.

 

 그들처럼 ‘되어가고 있다’ 보니 오래간만에 한국에 나가면 모든 것이 새롭다. 모든 것이 복잡하고 변화속도가 빠른 한국에 가면 나는 이방인도 아니면서 한국인도 아닌 듯이 행동한다. 늘 단순하고 순수한 이곳에서 살다보면 소위 말하는 문명세계가 귀찮아진다. 이곳에는 머리 굴려가면서 살 이유가 없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괜찮은 곳이 여기다. 그냥 최소한의 것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이곳이다. 내가 서기 위해서 남을 짓밟을 이유도 없다.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아첨할 필요도 없다. 조금 더 안전하고, 조금 더 빨리 가기 위해 좋은 차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냥 주어진 대로 살아가고 그리고 살아야 하는 곳이 여기다. 그래서 좋다.

 

 10년 전, 한국에서의 삶을 정리하면서 나름대로 생각했던 것이‘어떻게 하면 선교지의 사람들처럼 될 수 있을까?’였다. 이런저런 이론도 생각해 보았고, 실천방향도 모색해 보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곳의 사람들이 나의 스승이었다. 마치 엄마가 아기를 낳아 젖을 먹이고, 말을 가르치면서 키우듯이, 이곳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던 나에게 이들의 젖을 먹여주었고, 이들의 말을 가르쳐주었고, 이들의 문화를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이들처럼 되어주기를 원했다.

 

 만 8년을 이곳에서 살았으니 나는 이제 겨우 여덟 살이다. 여덟 살짜리 꼬마가 본당 신부랍시고 몇천 명을 사목하는 것도 우스운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곳은 그리 특별한 사목방법을 요구하는 곳이 아니다. 한국처럼 기발한 사목방법을 만들어서 신문에 날 이유도 없는 곳이다. 그냥 이들과 함께살면 되는 곳이다. 이들이 함께 있기를 원할 때 함께 있어주고, 이들이 이야기하고 싶을 때에 귀담아 들어주고, 이들이 길을 갈 때 함께 손잡고 걸어가주면 되는 아주 단순하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아름다운 곳이다. 그냥 이들처럼 되면 되는 곳이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묻혀서 선조들로부터 넘겨받은 천국의 열쇠로 하늘 문을 열고 그곳으로 들어가면 그것으로 내가 원했던 선교사의 삶이 마쳐지는 곳이다.

 

 올해는 파푸아뉴기니에 한국인 선교사가 파견된지 25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10월 말에 마당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에서 교구장님과 교구민들을 모시고 조촐한 기념식도 하였다. 흔히 25주년은 은(銀)에 비교한다. 은은 예로부터 우리에게 몸의 건강상태나 음식의 안전상태를 알려주는 귀한 금속이다. 한국외방선교회의 파푸아뉴기니 지부의 상태가 밝은 은색깔이기를 바랄 뿐이다. 혹시라도 그다지 밝지 않은 검은 색이 나는 은이더라도 기도와 희생과 보속으로 다시 잘 닦아 아름답게 반짝반짝 빛나는 은으로 만들면 될 것이다. 그냥 단순하게 이곳 사람들이 나에게 바라는 것처럼

이들이 주는 사랑을 먹으면서 또 내가 가진 이들을 향한 사랑을 서로 나누면서 이들처럼 되어가는 사람으로 남고자 기도한다.

 

 

                             

                                                                                                                -해돋이에서 해넘이까지-
                                                                                          -선교의 현장에서

                                                                           -출처:한국외방선교회지 2006년 겨울호(통권 63호)

 

파푸아뉴기니 마당지부

파푸아뉴기니 마당지부 성당

마을 어귀에서 선교사를 기다리는 주민들

마당교구 시시악 성당

'너는 누구냐? 어디서 왔느냐?
선교사를 맞아들이는 전통적인 예식이다.
복음화의 과정이 어떠한지를 이 예식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시시악 성당 들어가기 전 입구

 

 


Largo - Oboe

Largo - C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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