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06 조회수830 추천수6 반대(0) 신고
2006년 12월 6일 대림 제1주간 수요일

 

 

Great crowds came to him,
having with them the lame, the blind, the deformed, the mute,
and many others.
They placed them at his feet, and he cured them.

(Mt 15.30)

 

제1독서 이사야서 25,6-10ㄱ

 

복음 마태오 15,29-37

 

제가 남들보다 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시지요? 이곳 간석4동 성당에 와서도 저는 똑같이 생활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어제도 새벽 일찍 일어나서 기도와 묵상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습니다. 성당에서 묵상을 하고서 방에 다시 들어왔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사실 성지에서는 이렇게 이른 시간에는 전화가 오기 않기 때문이지요. 저는 혹시 병자성사가 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으로 얼른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픈 환자의 신음소리가 들립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여보세요? 어디 아프세요? 제가 뭘 도와드릴까요?”

계속해서 신음소리가 들립니다. 저는 다시 말했지요.

“많이 아프신가봐요? 지금 계신 곳이 어디세요?”

그러자 수화기 저편에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오빠~ 좋아~”

장난 전화였지요. 저는 “뭐야~”하면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화가 나더군요. 기도하고 기분 좋은 상태에서 방에 들어왔는데 이상한 장난 전화를 받아서 기분이 안 좋아졌습니다.

잠시 뒤, 또 전화 벨소리가 울립니다. 전화를 받자 수화기 저편에서는 아까와 똑같은 신음소리가 들립니다. 욕을 해주려고 폼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문득 ‘내가 화를 내봐야 뭐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상대방은 내가 화내기를 바라면서 장난 전화를 한 것이 아니겠어요? 따라서 내가 화를 내면서 상대방의 의도대로 된 것이겠지요. 그래서 저는 전화를 끊지 않고 그대로 수화기를 책상 위에다 내려놓았습니다. 상대방에서 신음소리를 내든 말든, 어차피 전화요금은 전화를 건 상대방에게 부과될 테니까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수화기를 들어보니 상대방은 스스로 전화를 끊었더군요. 그리고 그 뒤로 전화는 오지 않았습니다. 만약 제가 화를 내고 말로 욕을 했다면, 대답 없이 신음만 하는 이 여자의 전화를 계속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 마음 안에 미움도 계속 자리 잡았겠지요. 하지만 한 번의 참음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더군요.

주님께서는 이러한 인내를 요구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미움보다는 사랑을, 다툼보다는 용서를 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이지요. 그런데 마귀의 유혹은 어떠할까요? 주님의 의도와 정반대로 사랑보다는 미움을, 용서보다는 다툼을 원하는 것이 마귀의 유혹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이제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그래서 이 세상에서는 도저히 희망을 둘 수 없는 사람들, 즉 다리 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과 말 못하는 이들이 예수님 앞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모두 고쳐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멈추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주실 생각을 하시고, 빵의 기적을 행하십니다.

우리들과는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내가 무슨 호의를 베풀면, 상대방도 내게 호의를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면 “뭐 이렇게 예의 없는 사람이 다 있어?”하면서 다시는 그런 호의를 베풀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우리들입니다. 결국 좋은 일을 하고나서도 마음속에는 나쁜 마음이 생기는 순간입니다.

요즘 세상이 복잡하고 다양한 것처럼 마귀의 유혹도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좋은 일을 하고도 나쁜 마음이 생겨서 결국 악으로 기울어지게 하는 것이 마귀의 유혹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마귀의 유혹에 우리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그냥 그 유혹에 계속 넘어가겠습니까? 아닙니다. 그 유혹에 절대로 넘어가지 말아야,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승리를 드러내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미움보다는 사랑을, 다툼보다는 용서를 실천하는, 그래서 계속해서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승리가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이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대가를 바라지 말고 선행을 합시다.



 
나의 최선을 최고의 하느님께(오스왈드 챔버스 '주님은 나의 최고봉' 중에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만일 삶의 모든 영역을 예수님께 드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대로 그분께 드려야 합니다.
바오로의 이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나의 확고한 목표는 나의 최선을 최고의 하느님께 드리는 것,
주님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이런 확고함은 의지의 문제지, 논쟁이나 이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 의지를 절대적으로, 철저하게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너무 생각하고 고려한 나머지,
주님께 모든 것을 드리겠다는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처럼 자신을 가장합니다.

 

 

 

“My heart is moved with pity for the crowd,
for they have been with me now for three days
and have nothing to eat.
I do not want to send them away hungry,
for fear they may collapse on the way.”
(Mt 15.32)

 

 


 

세상의 약속


 And I...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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