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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론]대림시기의 독서와 복음 [박상대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11 조회수699 추천수6 반대(0) 신고

 2006년 12월 11일 대림 제2주간 월요일

 그때에 남자 몇이 중풍에 걸린 어떤 사람을

평상에 누인 채 들고 와서,

예수님 앞으로 들여다 놓으려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루카 5,17-26)

 

 And some men brought on a stretcher a man who was paralyzed;
they went up on the roof
and lowered him on the stretcher through the tiles
into the middle in front of Jesus.
When Jesus saw their faith, he said,
“As for you, your sins are forgiven.”

 



 ). 이사야 예언자가 전한 예언의 완성으로서 예수님의 모습이 제시된다. 주님께서는 걷지 못하는 중풍 병자를 걷게 하시는 육체적인 질병의 치유와 함께 그의 영혼까지도 치유해 주신다. 현세적이며 육체적인 구원과 영혼의 구원을 모두 이루어 내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이 치유의 이야기는 다른 육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치유해 주신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차원의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다른 장애를 가진 이들은 모두 한 가지 또는 그 이상의 장애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의지로 주님을 찾아갈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중풍 병자는 신경이 마비되어 스스로의 힘으로는 주님께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병자가 주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주변 사람들의 도움 때문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중풍 병자를 데려온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치유해 주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아갈 수 없는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어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 자신의 의지와 힘이 부족할 때에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자신의 의지와 공덕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나를 사랑하고 돌보아 주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보시고 우리에게 은총을 허락하시는 분이십니다.

 

 

 

대림시기의 독서와 복음

  대림시기 1주간 월요일부터 12월 16일까지의 복음은 어떤 기준에 의하여 선택 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다. 하지만 딱히 어떤 선택의 기준을 찾을 수가 없다. 확실한 것은 마태오와 루가복음에서만 선택된 부분이 장(章)의 순서에 따르지 않고 임의로 봉독된다는 것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연중 제10주간부터 34주간 사이에 봉독된 적이 없는 대목을 택한 경우가 많다. 굳이 대림시기에 봉독되는 복음의 내용을 말하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일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메시아의 도래와 현존이 가져오는 징표들에 관한 내용으로서 병자와 소경치유, 죄사함 등의 기적과 억눌린 백성들에 대한 배려와 위로를 들 수 있다. 둘째는 메시아적 징표들에 대한 인간의 태도로서 믿음과 불신을 대립시킴으로써 믿음이 하느님나라의 보장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셋째는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를 대조하여 세례자 요한이라는 인물과 그의 역할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 이상으로 메시아의 정체와 권위가 출중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대림시기의 복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복음을 항상 독서에 연결시켜 묵상하는 것이다. 사실 이 시기에 봉독되는 독서가 거의 이사야예언서에서 발췌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야 한다. 이사야예언서는 서로 다른 시기에 집필된 세 권의 예언서가 한데 묶여 있다. 제1이사야(1-39장)는 오직 하느님만이 절대자요 주님이시라는 주제를 가지고 하느님께 충실할 때 구원이 가능하며, 구원의 징조는 처녀가 잉태하여 낳은 아들이 임마누엘이 되어 메시아가 되리라는 것을 예언한다. 임마누엘이 곧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제2이사야(40-55장)는 이스라엘 백성의 바빌론 귀양살이(BC 587-538)를 배경으로 그들에게 희망과 위로, 해방과 자유를 제시한다. 특히 유명한 네 번의 “야훼의 종의 노래”를 통하여 야훼의 종이 바로 백성에게 해방과 자유를 선사할 고난과 죽음을 불사하는 메시아임을 밝혀준다. 이 또한 신약의 인자(人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고된 모습이다. 제3이사야(56-66장)는 이스라엘이 귀양살이를 끝내고 귀환하여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이 됨을 예언하면서 이로써 옛 것은 지나가고 새 세상, 곧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것을 선언한다. 이 또한 고난과 죽음을 불사한 신약의 메시아 그리스도를 통해 온 인류와 세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서(이사 35,1-10)를 주의 깊게 읽어볼 필요가 있다. 독서의 주제는 하느님께서 친히 오시어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구원이 무엇인가? 구원은 말이 아니라 실재(實在)이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백성을 구원하러 오시는 그 때에 소경은 눈을 뜨고, 귀머거리는 귀가 열리며, 절름발이가 사슴처럼 기뻐 뛰고, 벙어리도 혀가 풀려 노래하며, 사막에 샘이 터지고 황무지에 냇물이 흐른다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 뿐만이 아니다. 그곳에 크고 정결한 길이 환하게 트여, 그 길이 ‘거룩한 길’이라 불린다고 했다. 자, 이제 복음을 보자. 이사야의 예언이 그대로 복음 안에 성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임마누엘 하느님이 세상 안에 계시고 인간과 더불어 계시는데 중풍병자 하나 고치는 것이 뭐 그리 어렵겠는가.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거룩한 길’을 세우는 데 있다. 거룩한 길이란 곧 ‘죄의 용서’를 의미한다. 예수의 반대자들에게는 중풍병자가 단지 치유되어 ‘일어나 걸어가는 것’(24절)에 만족해야 했다. 그들은 메시아의 도래와 현존의 표징을 읽을 수도 없었고, 그에 대한 믿음의 태도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는 자는, 비록 그 믿음이 주위의 도움을 받은 믿음이라 할지라도, 육체의 병을 치유 받았음은 물론, 그 안에 죄사함을 통한 ‘정결하고 거룩한 길’을 닦고 그 길을 걸어가는 기쁨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이다.

-박상대신부-

 

 

                           

                                           주여 임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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