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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영혼 "
작성자이종삼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11 조회수576 추천수4 반대(0) 신고

"육체" 에 이어서 "영혼" 에 대하여 묵상합니다.



“영혼"



"영혼"이란 무엇인가?

영혼의 본질은 신비이며

부족한 저가 이 신비를 다 알기에는 큰 한계를 느낍니다.

조금이나마 접근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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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본질은

하느님의 사랑에서 파생된 사랑으로 태어났습니다.

원죄 이후 영혼은 죄로 물들기 시작합니다.

계속되는 죄의 증가로 인하여

육체의 노동에 비해

기대에 못 미치는 결실을 불평하며

영혼은 육체와 점점 타협을 하고

스스로 더 큰 죄로 물들어갑니다.

그러면서 본질을 숨기지는 못하고

때론 자책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영혼은

창조이후 지금까지 이어 온 것입니다.


육체와 영혼은 후손에게 대물림됨으로써

죄의 사슬은 이어져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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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은 육체의 모든 것(정보)을 담고 가공하는 보물창고입니다.

모든 지식과 경험, 감각 등이 영혼에 고스란히 남아 존재합니다.

신비한 것은 영혼은 어떠한 것이나 저장할 장소가 무수히 많다는 것입니다.

선한 것은 선한 곳에 악한 것은 악한 곳에,

지혜는 지혜로운 곳에, 더러운 것은 더러운 곳에,

지식과 경험, 감각 등은 또 각각 다른 곳에 저장됩니다.


영혼은 육체의 경험을 통해서

깨닫게 되기도 하고 분석하기도하며 지시하기도 합니다.

또한 선한 본성에 따라 구분하기도 하고,

육체의 요구에 의하여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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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선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혼이 타락하여 악한 영혼도 있습니다.

타락한 영혼은 죄의 합리화가 만성이 되어

타락했는지도 모릅니다.

단지 희미하게 "이것은 아닌 것 같은데" 라는

선한 본성의 목소리를 듣기는 합니다만,

타락한 영혼은 듣질 않습니다.

철저히 육체의 쾌락에 충실할 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말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인간의 반은 천사고, 반은 악마다"

저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영혼의 창고에

선한 것을 쌓아둔 양과 악을 쌓아둔 양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을 많이 쌓아둔 사람의 악한 생각은

허공에 떠도는 바람일 뿐입니다.

머리 속에서 머물지 못하고 그냥 스쳐지나갑니다.

그것이 기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악을 많이 쌓아둔 사람은

반대로 선한 생각을 영혼이 싫어합니다.

선한 생각이 나면 피해버립니다.

그리고 악한 생각에 기뻐 춤을 춥니다.

악한 것만 몰래보고, 악한 것만 듣고,

악한 말을 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더 악한 것을 찾고

진리라도 터득한 듯이 기뻐서 널리 퍼트립니다.

또한, 악한 것을 행동으로 옮깁니다.

악에 취하여 춤춥니다.

악한 육체가 원하기 때문입니다.

선한 사람을 보면 멍청한 놈이고

자기의 먹이일 뿐입니다.


더 나아가면 타락한 영혼은 제 정신이 아닙니다.

이제 육체를 뛰어넘어 중독의 상태에 들어갑니다.

육체가 도리어 말립니다.

"큰일 난다 그만해라. 내가 죽겠다."

그러면 영혼은

"안돼 너(육체) 죽고 나(영혼)죽자

우린 끝을 봐야 돼."

악한 자의 결말은 이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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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영혼 속에 있는

악(죄)을 없애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죄가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선하신 하느님과 닮아가고

악의 달콤함이 즐겁지 않으며

선의 기쁨에 춤추게 됩니다.


그러면 선함과 악함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영혼의 창고 속에 담겨있는

누적된 지식과 경험, 육체의 감각에서 얻어진

모든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소중한 것을 나쁘게 사용할 때 악한 것이 됩니다.


영혼의 본성은 사랑입니다.

사랑의 불꽃을 피우기 위하여 사용될 때 선한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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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환경 속에서 죄와 동떨어져 살수 없습니다.

T.V를 봐도 자극적인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선택권이 별로 없지만

영혼의 창고에 계속 쌓아 두다보면

나중에 없애려면 애먹습니다.

하느님과 친교 할 때 이 모든 것이 분심으로 나타나지요.


신비한 영혼의 창고에 못된 것이 많은데

이것을 없애려 합니다.

그러나 없애려한다고 해서 없어집니까?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우리 힘으로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 성령하느님을 모셨습니다.

우리가 진실로 뉘우치고 청하면

성령하느님은 죄로 물든

우리의 영혼을 치유하여 주십니다.

성령은 악(죄)의 쾌락이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님을

영혼에게 증명해보이시며,

천천히 영혼이 느끼게 하고

죄를 태워 없애고

죄가 있던 자리에 하느님의 사랑을 심습니다.

우리는 고백성사를 보고 똑같은 죄를 반복해서 범합니다.

이것은 죄의 달콤함이 아직 영혼의 창고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인내로서 기다리며 천천히 변화시켜주십니다.


왜 이렇듯 하느님은 우리를 용서하십니까?

하느님은 불쌍한 우리의 영혼에 대한 연민의 정

즉, 무한한 측은지심입니다.

왜 이다지도 인간을 향한 연민의 정 그리고 눈물까지 흘리실까요?

그것은 인간의 영혼에 대한 한계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짧은 인생을 통해서

영혼은 영원한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는 인간을 바라보면

마냥 불쌍합니다.

이것을 정말로 깨닫는다면

저렇게 살지는 않을 것인데.......

그래서 말씀으로 알려주시고,

기적을 통해서 깨우쳐주시고,

그래도 알아듣질 못하는 불쌍한 영혼이

죽은 후에 가야할 길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시고,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이 죄로 인하여

세상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슬픔과 고통에 대한 눈물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짧은 생을 통해서

영혼이 창조 때의 하느님의 본성으로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립니다.

오늘도 못 알아듣는 불쌍한 영혼에게

목을 놓아 타이르십니다.


"구하라, 찾아라, 두드려라.

그러면 알려주겠다.

불쌍한 영혼아!

죄의 달콤함이 결코 영원한 평화를 주지 않는다.

눈을 돌려라. 마음을 돌려라

그러면 깨닫게 될 것이다.

영혼아 너의 고향은 "나"다"


영혼이 깨달아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가 정화되어 없어지는 만큼

성령께서는 더욱 더 활발히 영혼의 죄의 창고에서

우리의 죄를 태워 없앱니다.

이때 우리는 마음속의 성령의 불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뜨거운 성령의 불길이 영혼의 죄를 태워 없애는 작업을

우리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불의 뜨거움으로 체험해야만합니다.


영혼은 정말로 신비체입니다.

정화된 영혼은 이제 어떤 악이 와도 장소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저 스쳐가는 바람일 뿐입니다.

육체도 영혼의 사랑에 순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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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영혼의 신비는

하느님을 닮아서

다른 불쌍한 영혼에게 옮겨가기를 갈망합니다.


불쌍한 영혼을 보면 불쌍해서

사랑에 굶주려 목말라합니다.

그 불쌍한 영혼이 정말로 불쌍해서

가만히 있질 못합니다.

어떻게 하면 불쌍한 영혼을 구할까?

고민하고 기도하고 만나고 사랑을 알려주고파 미칩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이것이 성령하느님의 활동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성령하느님을 통해서

불쌍한 사람의 타락한 영혼에 불을 지핍니다.

그리고 죄를 태워 없앱니다.

주님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사랑은 없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 속에는 분명히 "벗에 대한 사랑이 선행"되어야만 합니다.

사랑이 선행되지 않는 어떠한 죽음도, 봉사도, 희생도,

그 어떠한 것도 울리는 징과 같습니다.

즉, 하느님을 닮은 영혼은

분명히 하느님의 측은지심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성령하느님 저의 영혼을 태우소서.

무한한 사랑을 주시어

평화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훗날 주님께서 "넌 날 닮았다"하게 하소서. 아멘.



긴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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