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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네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19 조회수680 추천수7 반대(0) 신고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네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그는 또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루카 1,5-25)



  하느님의 말과 세상의 말은 차이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은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며, 세상의 말은 세상의 일을 하는데 필요한 도구입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직접 말씀하시기보다 우리 입을(使者) 통해서 이웃에게 말을 전하게 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처럼 預言者는 하느님의 말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우리말만 한다면 하느님의 말은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요. 그분의 말씀이 전해지도록 우리는 입을 다물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이 제대로 통용되는 이 세상을 만들려면 하느님의 일이 세상 구석구석까지 미쳐야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일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알 수 없는 시기에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생의 기간이 정해져 있는 인간들에겐 더더욱 신비로 남아 있게 마련입니다.


  인간이 하는 세상의 일은 우리가 만들어 놓은 방법으로, 계획한 시간에 이루어져야 칭찬을 받습니다. 그러다보니 일에 능률을 찾으려는 데다 목표를 세우고,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일을 하더라도 능률과 이익을 찾으면 저도 모르게 인간의 일이 되고 맙니다. 또 하느님의 일을 하면서 마치 자기가 무엇이라도 되는 양 자부심을 지니면 결국은 인간의 일을 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교회 봉사활동도 자칫하면 인간의 일이 될 때가 많습니다.


  원래 일이란 그것을 계획하고 시킨 이의 것입니다. 조각이나 건축에서 작가의 이름만이 드러나지 공사한 인부의 이름이 올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인부들은 제가 일한 수고비를 받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시켜서 일한 자가 보수도 받고 영광도 받으려 하면 욕심일 뿐입니다. 그 욕심은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그것은 그 일의 전부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심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일에서도 그런 경우는 지탄받습니다.

  또 일을 시킨 이에 앞서 일을 수행하는 자가 그 보수를 기대하고, 요구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일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 자의 보수는 그 일을 행하는 자체가 주는 기쁨이 될 뿐이지, 하느님의 일을 행한다는 자부심이 보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일은 무상으로 베풀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맡아볼 사람이 내가 아니더라도 그분은 누구든지 시키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포함하여 모든 이가 당연히 하여야 할 일입니다.


  인간의 일은 하느님의 일과는 반대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일이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왜곡 시키면 시킬수록 하느님나라의 도래는 그만큼 지연될 것입니다. 혹시라도 내 잘못 때문에 하느님 나라의 지연이 초래된다면 나는 대죄를 짓는 것입니다. 나 혼자만이 非구원 상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非구원 상태로 좀 더 머무르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는 숫제 벙어리가 되는 것이 합당합니다. 침묵으로 하느님께서 일하실 때까지 성전에 머무르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즈카르야가 주님의 천사를 만난 것도 두 부부가 하느님의 성전에서 도망치지 않고 끈질기게 매달렸기에 가능했습니다.


  기다림은 현대인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스트레스로 변하였습니다. 기다림이라는 단어는 이제 동화 속에서나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동차도 인터넷도 학업도 성공도 돈벌이도 모두 남보다 빨라야 하고 선두에 나서야 안심이 되는 세태가 되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뒤처지게 되면 우리는 불안하게 되고 심지어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버립니다. 그리고는 우울증에 빠져 버리게 됩니다.


  교회는 이들에게 기다림의 평화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최소한 덩달아 날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희망과 인내가 더 좋은 몫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보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큰 교회보다, 거국적 행사보다 소공동체 운동이 더 힘을 얻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언제나 자식을 기다리는 짝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자식이 그 사랑하는 마음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자식이 문 밖에 나서는 순간부터 부모는 대문을 쳐다보며 언제나 돌아오나 기다리게 됩니다. 그 마음을 자식이 아는 날엔 평화가 올 것입니다. 모두가 의인의 마음을 지니는 날 하늘나라는 열리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 저희에게 용기를 주소서.

  기다림이 당신의 뜻에 더 합당한 것을 알았으니

  참을 줄 아는 힘을 주소서.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과 순종하는 의인의 마음을 알게 하소서.

  그 가르침을 그렇게 한편에 처박아 두기에는

  너무나도 소중한 말씀임을 깨닫게 하소서.

  참고 희망하며 기다리는 것이

  바로 아버지의 뜻임을 알게 하소서.

  제 말 못하는 벙어리가 되는 지혜를 내려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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