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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국수 삶는 건 우리에게 맡겨"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21 조회수690 추천수6 반대(0) 신고

         

 

 

                  "국수 삶는 건 우리에게 맡겨"

 

 

   "큰 일 났네. 국수가 다  떨어져가요. 선교사님, 아무에게나 빨리 국수사리 좀 삶으라고 하세요."


 부엌에서 정신없이 바쁜 후원회 아주머니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골롬반 평신도 선교사들이 기금을 마련하려고 처음 연 바자이다 보니 모든 것이 서툴렀습니다. 손님이 얼마나 오실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한 터라 대충 어림잡아 국수를 준비했는데 사리가 떨어져 가는 것이었습니다.


 손님들은 자꾸 밀려오는데 큰 일 났습니다. 급한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아도 모두들 맡은 일에 바빠 선뜻 일을 시킬 사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급한 마음에 이리저리 살피는데 어디선가 "정 여사~"하며 저를 부르는 소리가 났습니다.


 이곳에서 시집도 가지 않은 저를 '정 여사' 라고 부를 사람들은 제가 다니는 노숙자 쉼터 아저씨들 뿐 이라는 것을 아는 터라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아! 아저씨들이 정말 와주셨구나…."


 기쁨도 잠시, 너무나 급한지라 쉼터에서 주방을 담당하시는 아저씨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분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저는 아저씨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국수사리 좀 삶아 달라고 청했습니다.


 별일 아니라는 듯 흔쾌히 승낙하신 그 아저씨의 뒤를 따라 쉼터의 다른 아저씨들도 우르르 국수 삶는 곳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잠시 후 국수사리를 가지런히 삶아 내 오셨습니다.


 부엌에서 일하시던 아주머니들은 "누가 삶았는데 이렇게 국수를 잘 삶아? 오늘 삶은 국수 중에 제일 잘 삶았네"하시며 기뻐하셨고 손님들은 누가 삶은 것인지도 모른 채 맛나게 잔치국수를 드셨습니다.


 쉼터 아저씨들을 바자에 초대해 놓고 혹시 주눅이 들어오시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여러 분들이 함께 나타나셔서 국수사리를 근사하게 삶아주시고, 옷도 고르고 닭 꼬치도 드시며 즐거워 하셨습니다.


 또 다른 지역의 쪽방 노숙자 아저씨들도 오셔서 제게 국화꽃을 한아름 안겨주셨습니다. 며칠 뒤 여느 때처럼 쉼터 가족회의에 참석했습니다. 모두 바자에 다녀온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습니다. 한 아저씨가 말씀하셨습니다.


 "다음에는 애당초 국수 삶는 건 우리에게 맡겨. 한식 군데 어뗘. 자신 있다니까."


 너무 감사해 눈물이 났습니다.


             - 정복동(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평신도 선교사 담당)

                     

 

♬ 주님여 이손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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