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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뜻을 이루러 세상에 온 우리들 ----- 2006. 12.24 대림 제4주일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24 조회수577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6. 12.24 대림 제4주일                                                

미카5,1-4ㄱ 히브10,5-10 루카1,39-45

                                      

 

 

 

 

하느님의 뜻을 이루러 세상에 온 우리들

 



감실 옆 환히 빛나는 네 개의 대림초와

미리 마련된 탄생하실 아기 예수님의 소박한 집이

주님 탄생이 임박했음을 알려주면서

우리 마음을 기쁨으로 물들이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주님 탄생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주님께서 탄생하실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우리들 모두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 시간에 저는 누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들인지,

또 누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행복한 이들인지 구체적으로 나누고 싶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이들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이들이 행복한 이들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이요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이들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 그 영혼의 뿌리를 내린 사람들입니다.

 

사실 믿음보다 더 귀한 선물도 보물도 없습니다.

이 믿음의 빛이 있어야 하느님의 말씀도 듣고 이해하며,

하느님의 마음도 알고,

참되시고 좋으시고 아름다우신 하느님을 뵙습니다.

 

절망 중에도 희망을,

죽음 중에도 생명을,

어둠 속에서도 빛을,

악속에서도 하느님의 좋으심을 봅니다.

 

현 순간에도 영원을 삽니다.

보이지 않는 믿음의 마음, 믿음의 눈, 믿음의 귀는 이토록 중요합니다.

 

다음 시편 저자의 고백입니다.

“당신은 나의 주님, 당신만이 나의 행복이십니다.”


빛 자체인 태양처럼

사랑 자체이자 행복 자체이신 하느님을 믿는 것보다

세상에 더 좋고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세상의 행복들 다 덧없는 환상들입니다.

다 지나가는 것들입니다.

 

연목구어(緣木求魚)란 말도 있듯이

하느님 아닌 것에서 행복을 찾기에 결국은 환멸이요 허무입니다.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영원한 행복이신 주님께 영혼의 뿌리내리는 믿음 있어야 비로소 참 행복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 알아봅니다.

믿음의 사람들보다 더 큰 위로와 격려가 되는 사람들도 없습니다.

 

마치 요셉수도원의 든든한 배경이 되고 있는

‘언제나 그 자리’의 불암산 같은 사람들입니다.

 

마리아의 믿음에 감격한 엘리사벳의 외침입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바로 하느님 믿음이 행복의 요체임을 말해줍니다.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도,

형제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도 내 믿음의 삶뿐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이들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이들이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이요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이들입니다.

 

하느님 믿음은 자연히 하느님 뜻을 따름으로 표출되기 마련입니다.

기쁘게 즐거이 하느님의 뜻을 찾고 따르는 삶에 최우선을 둡니다.

 
단순하게 살라고 하느님께서 만드신 사람들인 데

왜 이렇게 복잡하고 혼란해졌습니까?

 

왜들 그렇게 불안해하고 두려워합니까?

 

하느님의 뜻을 잊고 내 뜻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내 뜻대로 살다보면 하느님께 멀어져 복잡하고 혼란할 수뿐이 없습니다.

 

하느님 주신 본래의 진실과 선과 아름다움을 잃게 됩니다.

반면 하느님의 뜻을 따를수록 삶은 단순해지고 행복해집니다.

 

본래 하느님 주신 진실과 선과 아름다움을 꽃피우며 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내 존재이유이자 삶의 의미, 삶의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빠지면 우리의 삶은 태양 없는 삶과 같아 위태하기 짝이 없습니다.

사실 하느님을 잃어버려 암흑 속에 방황하는 이들 얼마나 많습니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느님께 이르지 못합니다.

 

참으로 내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찾을 때

내적 평화요, 공동체의 평화입니다.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평생 삶이 그러하셨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세상에 들어오는 첫 순간부터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느님의 뜻을 행함으로써 참다운 제사를 바치신

완전한 대제관이 되신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마침내 단 한 번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시어

인류를 거룩하게 만드셨고

지금도 매일의 거룩한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의 뜻을 이루러 세상에 왔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고 행하는 일에 항구하도록 합시다.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믿음의 진정성은 늘 하느님의 뜻을 찾아 살 때 환히 들어납니다.

 

진정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하느님의 뜻에 삶의 초점을 맞춥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를 때 참 행복입니다.

 

작음을 추구하는 이들입니다.
하느님부터가 작은이들을 좋아합니다.

 

작음 안에 숨어 계신 하느님이요 작음 안에서 체험하는 하느님입니다.

사실 하느님의 뜻을 찾는 이들은 자연스레 하느님을 닮아

가난하고 겸손한 작음의 길을 추구합니다.

 

바로 작음을 추구하는 길이 행복의 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바로 작음의 신비는 1독서의 미카의 예언에서도 환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 가운데에서 보잘 것 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 크고 아름답고 화려한 예루살렘을 주님 탄생지로 택한 하느님이 아니라

보잘 것 없는 베들레헴을 주님 탄생지로 택한 하느님이십니다.

 

작고 낮아지고 비워진 가난과 겸손의 그 자리에서 만나는 하느님이요,

크고 높고 가득 채워진 허영과 교만의 그 자리에서

결코 하느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복음의 마리아와 엘리사벳,

후대의 우리 신앙인들의 눈에 행복한 이들이지

당대 사람들의 눈에는 참으로 가난하고 비천한 보잘 것 없는 작은이들이었습니다.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다’는

마리아의 고백이 이를 입증합니다.


가난하고 겸손한 믿음의 사람들을

당신의 도구로 쓰시는 자비하신 하느님이십니다.

 

진정 하느님을 사랑하는 우리들

언제나 믿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작음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참 행복의 길은 이 길 하나뿐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참 좋으신 주님은

이런 우리들에게 한량없는 축복과 평화를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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