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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저녁묵상]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까? l 이찬홍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24 조회수740 추천수8 반대(0) 신고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까? 



   신학교 입학 동기들이 올해 졸업을 하고 내년 초에 사제 서품을 받습니다.  타 교구에 친한 동생이 있어 학교에 전화를 걸고, 축하 인사와 함께 서품 성구가 뭐냐고 물었습니다.  부제님은 ‘피앗’ 곧, “보소서.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라는 성모님의 마니핏캇을 정했다고 했습니다.  성모님을 사랑하는 부제님이기에, 자기에게 맞는 성구를 선택했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제님께서 이 성구를 정한 이유는 성모님을 본받으려는 마음에 선택한 것만은 아닐 것이라고… 부제님, 역시 일생을 주님 뜻 안에 의미를 두고 주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으로 사제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쁘고 행복한 순간만이 아니라 서품의 감동과 전율의 느껴지는 순간만이 아니라, 삶이 버겁고 힘들 때라 하더라도…  심한 좌절감과 절망감 등, 그 어떤 순간이라 하더라도, 주님께 대한 희망과 믿음을 잃지 않고 굳굳 하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이요, 고백일 것입니다. 자주 이러한 다짐과 고백을 되새기며 살아간다면, 부제님은 참된 주님의 종이요, 주님의 뜻이 이루는 복되고 행복할 삶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저하고는 많이 다른, 곧 종이 다른 분이거든요.)


   복음에, 성모님과 엘리사벳의 만남이 소개됩니다. 엘리사벳은 성모님을 만난 후, 다음과 같은 인사를 드립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약속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


   정말 성모님은 행복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행복은 어떠한 행복입니까? 이 세상에서 최고의 아들을 젖먹이고 키웠다는… 그 아들로 인해 동네 사람들과 친구들에게 목에 힘주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행복감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성모님의 행복은 아들을 태안에 모신 10개월 밖에 안 되는 행복입니다.  우리 또한 그러한 성모님을 보며 행복한 여인이라고 칭송하지 않습니다.


   아들을 낳은 곳이 방이 아니라, 마구간입니다. 아들은 낳고 3일일 지나기 전에, 헤로데의 칼을 피해 이집트로 도망쳐야만 했습니다. 아들이 12살 때, 성전에 갔다가 아들을 잃어버려 애간장을 태웠습니다. 서른이 되더니, 장가갈 생각은 하지 않고, “때가 되었다.”며 집을 나가 버립니다. 간간히 아들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들려옵니다. 힘들게 찾아 가 보았더니, “누가 내 어머니요, 형제들이냐?”는 핀잔만 듣습니다.  그러다가 끝내, 아들은 어머니의 마음에 못을 박고, 십자가 위에서 무참하게 죽임을 당해 버립니다.


   이러한 성모님의 일생을 보며, 그 누가 행복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결과는 해피엔딩이 아니냐?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받지 않았느냐? 그러기에 행복한 여인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냐?’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우리의 삶은 매순간 현재지 미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과정에 의해서 결과가 결정되는 것이지, 결과에 의해 과정이 묻혀 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모님이 행복한 분이라 칭송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드리는 칭송은 결과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끝까지 믿고 따랐기에, 그 믿음의 삶이 복되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이루어진 모든 과정과 아픔을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이겨냈기에 행복한 분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모님의 행복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그 어떤 유혹, 시련, 아픔 속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기에… 하느님께 드린 고백을 굳건히 지키며 살아갔기에…  엘리사벳과 우리 모두는 “행복하십니다.” 라고 칭송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인입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했고, 삶의 순간순간에 그 고백을 새롭게 되새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행복합니까?  행복하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것은, 우리 삶에 시련과 아픔, 절망이 생기기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늘 함께 해주신다는 것은, 우리 삶의 근심과 걱정, 불안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가는 순간 내내 삶에 대한 근심과 걱정, 자녀에 대한 근심과 걱정, 앞날에 대한 불안감 등이 끊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눈앞이 캄캄해지는 그런 순간에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다면…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자신에게 다가온 근심과 걱정, 시련과 아픔을 이겨낸다면…  그 모습과 그 삶이 바로 복된 삶이 아니겠습니까?

진정 소중한 행복을 갖고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성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주님께서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오십니다. 우리가 행복한 사람이기에,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께 행복감에 넘친 인사를 드렸으면 합니다. 행복감은 충만하지만, 그 행복감을 표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분들은 가톨릭 성가 445「예수님 따르기로」라는 성가를 부르며 주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시다. 아멘.


                              - 이찬홍 야고보 신부

 

 

                              

 

 

             

                                      거룩한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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