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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상에서 박해 받으며 죽어야 하는 그리스도.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25 조회수676 추천수10 반대(0) 신고

세상은 그리스도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세상은 세상에 대해서만 압니다.

하지만 세상 보다는 그리스도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가 저마다

내가 그리스도에 대해 잘 안다며 살아 갑니다.

저 역시도 그 중의 한사람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오셨습니다.

잃어버린 양은 회개하는 한 사람일 수 있고,

소외된 보잘것 없는 형제 하나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치 99를 위해서는

하나(1)의 생명은 그저 그럴 뿐이다고 한다면 ...

 

99를 위해서 1는 사랑 없는 가운데 죽어 가도

그저 '아, 죽어 가는구나' 할 뿐, 99를 위해서

1의 죽음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세상 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비록 1일지라도 그 생명과 사랑을 위해서

많은 이들 가운데서 - 하느님의 손을 펼치시어 치유하시고, 악마를 몰아 내시며

죄를 사하여 주시고 하늘의 평화를 누리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1)가 그저 사라지는 흙먼지인 것처럼 그렇게 여기는 나라가 아니셨습니다.

 

인간적이고, 인본적인 이유로 박해자인 로마에게

해방의 칼을 들려는 이들을 그리스도께서는 멀리 하시고

 

오히려 핍박하는 원수들에게 칼을 내리고

믿음 있는 사랑으로 대하라고 가르쳐 주신 주님 이셨습니다.

 

다수를 위해서는

살아남기 힘든 하나(1)라도 희생되는 것을 원치 아니 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인간의 모든 것들이 부패적 입니다.

이 암울함이 로마 병사와 같은 핍박일지라도

그들에게 칼(악의)로서 세상적 평화를 얻고자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수 속의 '보잘것 없는 한(1) 생명'을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이다고 말씀하시며

가식적인 율법의 행위 보다는 진정한 사랑을 강조 하셨습니다.

 

인간이 인간적일 때에, 오히려 인간이 인간을 죽이게 됩니다.

어떤 좋은 명분 아래에서 칼을 들이 대어 영혼을 죽이기도 합니다.

 

당하는 입장에서도 또한 세상적으로 변하여

또다시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역시 인간적으로 대응하려 합니다.

이렇게 세상은 우리들 마음 속으로 스며들면서 영혼들을 어지럽히게 합니다.

 

다수를 위해서 하나(1)를

사랑으로 살리는 그리스도와 같은 일은 필요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악으로 치부되어 버리고 맙니다.

 

99의 다수를 위해서 세속적인 방식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1를 위한 그리스도의 일은 오히려 인간적인 짐(악)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스도를 죽여야 하는 것이 세상 입니다.

십자가에 매달아야 하는 것이 세상의 지혜 입니다.

 

다수를 위해서 살기 힘든 자는 흙으로 돌아가야 하고

작은 '예수의 그리스도'는 '십자가 길'을 가게 됩니다.

 

'믿음과 사랑'의 '하느님의 뜻'대로가 아닌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것에 따라 세상적으로 대응할 때,

 

살아 남기 힘든 보잘것 없는 하나(1)의 영혼을 위한

'그리스도적인 생명과 사랑'은 그리스도처럼 박해를 받게 됩니다.

 

칼에 대해 칼로서 일어 선다면 그리스도의 나라,

하느님의 뜻은 이 땅에 이루어 지지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

 겸손과 사랑의 십자가.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고서는

'예수님의 사랑'이 아니고서는

 이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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