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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그런데 이제 보니 그것도 아니더군요.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26 조회수700 추천수4 반대(0) 신고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마태 10,17-22)



  사람들은 누구나 어떤 잣대를 지니고 삽니다. 그 기준을 칼처럼 날카롭게 적용하느냐 좀 넉넉하게 맞추느냐에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기준이라는 것이 종교, 문화, 성별, 민족성, 관습에 따라 차이가 크다고 합니다.


  개와 고양이가 그렇게 아옹다옹 싸우는 이유가 서로 좋아하고 싫어하는 표현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개는 반갑거나, 자기 기분이 좋을 때 꼬리를 들고 흔드는데 비해, 고양이는 반대로 내려 반가움을 표현 한답니다. 또 개는 싫어하거나 겁이 날 때 꼬리를 밑으로 내려 감추는데 비해 고양이는 싫거나 화가 날 때 꼬리를 치켜든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비슷한 동작에 서로 반대되는 해석을 하고는 오해하여 싸울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죠.


  사람들도 이런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기준을 자기에게만 맞추다 보면 서로 오해만하고 미워하게 됩니다. 자기 기준을 바꾸기 전에는 용서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게 됩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갈등이 생겨날 때 우선은 그 이유가 혹시 서로 다른 잣대로 생각하지나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답니다. 특히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일어나는 오해는 아무리 같은 집에서 한 이불 덮고 살더라도 언제나 일어난다고 합니다. 문화 인종적 편견은 더 심각해서 우리 사회에서 만연된 외국인 노동자의 학대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될 문제입니다. 왕따 문제도 주류와는 다르다는 사소한 이유 때문에 생겨난답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것들이 바로 먼 사람들 사이에서 보다 가까운 사람들끼리 사이에서 벌어진다는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부모와 자식, 형제지간, 이웃사촌 등등 살을 맞대고 사는 사람끼리 원수처럼 지내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중에 가장 가슴 아픈 경우가 서로 종교가 다른 경우일 것입니다. 외짝교우들이 겪는 외로움과 고통은 심각합니다. 심지어 강제로 냉담하게 되거나 종교를 바꾸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여성 외짝교우가 많은 교회 사정이 더 더욱 안타깝기만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경우 가족 간에 종교가 다른 경우가 다른 나라 보다 많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에서처럼 겉으로 터져 나온 종족 간 종교 분쟁은 다행이 없습니다. 한 가족 안에서 반목하고 고통을 겪는 당사자는 매우 힘들지 않겠는지요.

   

  오늘 복음에서 이런 경우에 대한 해결책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생명을 빼앗기는 박해의 경우는 아니지만, 가족과 이웃들에게서 냉담과 배교를 요청 받았을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지레 겁먹고 걱정하여 자신의 신앙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아니면 지나치게 강하게 나가 집안을 분란에 빠트리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성령께서 해결해 주시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서로 자신의 잣대를 들이대며 싸움만 일으키는 어리석음 보다 사랑이라는 성령을 느끼게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을 원하는 가족에게 사랑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단순히 인간적 양보나 인간적 사랑이 아니라, 성령께서 일하는 것이라는 확신을 스스로도 지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이 성령께서 보이는 것이라는 표현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얼버무릴 것이 아니라 최소한 지켜야할 부분을 선언하고 그 외에는 희생으로 견뎌내야 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신앙인으로써 순교 정신일 것입니다.

  좀 더 시간을 내어서 가족들에게 봉사하여야 합니다. 시부모나 친정에, 처가댁이나 본가에 눈 밖에 나는 일이 없도록 솔선수범하는 일이 성령의 작용에 따르는 길이라고 명심해야 합니다. 수면 시간을 줄여서라도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이 오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변화를 일으키시는 힘이 있습니다. 먼저 나를 사랑의 인물로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자신이 변화되고 나야 이웃도 변화가 되는 법입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자신이 변화 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변화 시킬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것도 아니더군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요?

  어렸을 땐 빠른 것이 제일 중요한 줄 알았지요.

  

  느린 거북이와 재빠른 토끼 경주 동화는

  처음부터 결론이 나 있었습니다.

  시간을 가지고 경쟁하는 게 아니라,

  겸손과 인내를 가르쳤죠.


  나이 들고 보니 그것도 아니더군요.

  어디로 향할지 방향이 더 중요합디다.

  야구 선수는 빗맞아도 방향이 좋으면 안타입니다.

  어렸을 땐 그것도 운수소관인줄 알았죠.


  그런데 이제 보니 그것도 아니더군요.

  사막에서 길 잃은 사람은 먼저 자신의 위치부터

  살펴보아야 방향을 찾을 수 있답니다.

  그리고 방향을 가리켜 주는 것이 나타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 보는 것이

  더 시간을 절약하는 길이랍니다.

  제대로 목표에 도달하는 첫 걸음이랍니다.

  

  그런데 주님은 순서가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부터 변하라고요.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것이,

  어리고 나이 먹는 것에 달린 것이 아니라

  다 제가 변하는 순서라는 말씀입니다.


  글쎄 이리 쉬운 것을 왜 여태 몰랐나요?

  너에게 돌리지 말라는 것이 이다지도 어렵더군요.

  이제 알고 보니 다 그것이더군요.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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