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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존재는 행동하는 실존보다 더 위대하다 / 김일영 신부님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6-12-29 조회수784 추천수4 반대(0) 신고

지난 성탄 전야 미사 때 마리아니스트 수녀원에서 김 일영 프란치스코 신부님께서 해주신 강론 말씀입니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성탄 팔부 축제기간이라 메모한 것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어떻게 다른가 나누고 싶습니다. 먼저 나누기 전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어떻게 말씀이 사람이 되실까? 먼저 말씀이 사람이 되시는 과정을 역학적으로 상상해 봅시다.

 

여기 성령이 있습니다. 성령이 돌다가 어떤 한 사람을 찍습니다. 그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모릅니다. 마음이 깨끗하고 믿음이 신실한 사람입니다. 성령이 딱 찍습니다. 번개가 나무를 찍듯이.

 

언제 찍는가? 기도할 때 찍습니다. 말씀이 왼쪽 귀로 들어갑니다. 믿음이 없으면 말씀이 들어가서 대뇌를 치고 오른쪽 귀로 나갑니다. 믿음이 있으면 말씀이 들어가서 대뇌를 치고 걸려서 나가려고 하다가 아래로 내려가다가 심장에 한 번 쇼크를 주고 말씀이 자궁으로 가서 임신이 됩니다.

 

이것이 말씀이 사람이 되시는 역학적인 과정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이해가 안가면 저해가 안 옵니다. 동정녀가 한 아들을 잉태하였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잉태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특별한 방법으로만 내안에서 잉태되십니다. 즉 내가 깨끗하고 잘 살 때, 하느님을 잉태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어떻게 다른가?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망원동 공동체에 세 사람이 아프리카 케냐로 선교를 나가서 썰렁합니다.

 

파스칼 신부님과 둘이서 식사를 하면서 애기(선교 나사신 수사님들)들이 보고 싶다고 하였더니 늙어가는 징조라고 하셨습니다.

 

한 수사님은 밥을 좋아합니다. (탄수화물, 단백질)

한 수사님은 고기를 좋아 합니다. (단백질, 탄수화물)

 

 "존재는 행동하는 실존 보다 더 위대하다." 있다는 것, 있음은 무슨 큰 일을 하는 것(행동하는 실존) 보다 더 위대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신학교에 다닐 때, 하이덱거의 이 말을 몰라서 다시 들었습니다. 빵꾸난 사람이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중풍 병자, 과부, 어린이들은 하찮아 보이지만 그런데 하느님은 존재자체를 더 귀하게 여기시기에 그들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의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리십니다.

 

있음 자체를 사랑하시기에 그렇습니다.

 

인간은 행동하는 실존에 얽메어서 조건적인 사랑을 합니다. 그냥 사랑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이기적입니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하니까, 부모가 유산을 많이 주어서, 이웃이 나에게 도움을 많이 주니까 사랑합니다. "때문에" 사랑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불구하고" 하시는 사랑입니다. 돈많이 벌어주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못생겼음에도 불구하고 하시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사랑과 하느님의 사랑의 차이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이상입니다. 죽어서나 완성되는 것입니다.

 

언젠가 누님이 제게 말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바랄 것이 없다. 이미 행복을 다 받았다." 이미 있음 자체로 부모에게 큰 행복을 주었다는 의미입니다.

 

저희 어머니도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1년 동안 착각 하셨습니다. 아버님이 저녁 6시면 퇴근하셨는데 6시가 되면 벌떡 일어나셨습니다. 정신 착란처럼. 아버지가 병원에 그냥 있어만 주셔도 좋은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존재가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사야서 38장을 보면 "왜 존재가 중요한가?" 를 알 수 있습니다. 있음이 없으면 다 소용 없다. 살아 있는 사람, 산 사람만이 당신을 찬송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존재는 행동하는 실존보다 더 위대하다." 굳이 이런 말을 안해도 "있을 때 잘 해" 라는 우리 노랫말에도 있습니다.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은총이 무엇인가? 기도할 때, 붕붕 뜨는 것 방언하는 것, 이런 것은 가장 낮은 은총입니다. 이런 것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질투와 시기 미움속에서 살고 있는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은총입니다.

 

왜 말씀이 소가 되지 않았는가? 왜 말씀은 꼭 인간으로밖에 올 수 없는가?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최고의 은총입니다.

 

마지막으로 상기시켜 드리고 싶은 것은 "좀 손해보고 사십시오." 조금 손해보는 인생이 잘 사는 인생입니다. 예수님, 요셉 성인, 성모님, 모두 손해보는 인생을 사셨지요. 내 것 내 가족만 챙길것이 아니라 좀 넓게 손해 보는 삶을 사십시요. 이 미사를 통해서 은총을 주시도록 청하고 다시 한 번 성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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