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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산골 신부 . . . . . . . [김영교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02 조회수823 추천수8 반대(0) 신고

 

 

 

 

 

 

귀국 준비를 위하여 온종일 뛰어다니다가 늦게 돌아 왔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 벨 소리가 울려왔다.

 

의외로 그 전화는 몇 백리나 떨어져 있는 사람이 나를 만나기 위해

기차로 달려와서 역에 내리자마자 건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순간에 내가 집에 없었더라면

멀리서 온 그사람에게 크게 실망을 줄 뻔했다.

 

전화로 미리 약속을 하지 않고 무작정 찾아온 그 경솔함을 탓하기에

앞서서...

 

잘 아는 학생이었다.

공부도 잘했지만 그보다도 의지가 강해 늘 듬직한 데가 있는

학생이었다.

집이 가난했던 게 흠이 될 수 없는 유일한 흠이었지만...

그것마저도 쾌활한 성격으로 감추곤 하던 모범생이었다.

 

졸업을 하고 장성한 후에도 그 가난은 가시지 않아,

집안 살림을 도우려 몇 개월전에 이 독일에 와서

많은 고생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자기 딴에는 귀국한다는 나를 꼭 만나야 할 필연성이라도 느꼈음인지,

잠깐 나를 만난 후에는 이튿날의 근무를 위하여

그 밤으로 다시 떠나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역 대합실로 나가 잠깐 만날 시간의 여유밖엔 없었다.

 

무리하게 시간을 내어 멀리서 찾아온  마음이..

고맙다기보다 어떻게 보면 미련스럽게까지 보여 나무라고도 싶었지만,

막상 외투깃을 세우면서 나를 기다리고 서있는 그의 얼굴을 대하니

반가움만 앞섰다.

평범한 몇 마디의 얘기가 끝나자 그가 이런말을 했다.

 

"신부님, 우리나라에 돌아가시면 신부님 주위에 저처럼 가난해서

 공부하기 어려운 아이들이 있을 거예요.

 그런 아이들을 발견하시거든 꼭 제게 연락을 해주세요.

 제가 힘있는대로 도울께요..."

 

그러니까 바로 그 얘기를 하기 위하여 그렇게 먼 길을 기차를 타고

밤중에 달려왔던 게다.

 

한동안 나는 가만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앞에서 조용하면서도 정중히 얘기를 하고 있는

이 한 가난한 사람의 마음은...

이미 옛날에 내가 보아 오던, 그래서 자꾸만 어린 사람으로만 느껴지는

'그애'가 아니었다!

 

함부로 반말을 하면 안될 만큼 나이가 들어있었다.

그러나 그 속에 들어 있는 마음만은 옛날과 조금도 다름없는 '그애'

들의 순진함이었고, 그건 무언가 깊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나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조용히 돌아왔다.

부모를 대신하여 나를 돌보아 주시던 형님은 그 짧은 사이에 돌아가셨고

형수님은 고생으로 많이 늙어 계셨다.

그외엔 모두가 그대로였다.

 

그리고 우리 땅에 내리기도 전에 내 일터는 결정이 되어있었다.

순박한 시골 신자들이 살고 있는 조그만 산골 본당의 주임신부란다.

그리고 바로 그 옆엔 내가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중학교가 있다.

 

며칠 안되었지만 주임신부와 학교 담당이라는 직책

모두에 경험이 없는 나이기에 벅차지만 나는 꼭 믿고 싶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을 돕는 그런 따뜻한 얘기들로

꽃 피워야 하겠다.

우리 모두 함께 고운 얘기를 만들어 가야겠다.

 

얼어 붙었던 땅 위에 새 봄의 예쁜 꽃들이 피어나

우리의 가난한 마음에도 훈훈하게 피어나리라고 믿는다.

 

'운산'이라 이름하는 이 외딴 곳에......

 

 

 

- [가난한 마음]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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