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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 복음묵상]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l 양승국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02 조회수831 추천수12 반대(0) 신고

2007년 1월 2일 성 대 바실리오와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요한 1,19-28)

 

 “I am the voice of one crying out in the desert,
‘Make straight the way of the Lord,’
as Isaiah the prophet said.”

 



요한 세례자는, 유다인들이 보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그리스도로 여기지 말라고 강조한다. 그리스도는 자기 이후에 오시는 분으로서 자신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는 미천한 존재라며, 자기 자신을 겸손하게 고백하고 있다


 ☆☆☆


바실리오 성인(329-379년)은 동방 교회 수도원 제도의 창시자로서 동방 교회 전례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바실리오는 친구인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 성인과 함께 수도 생활을 시작하여 제1차 니케아 공의회의 교의를 수호하는 교회의 사도로서 아리우스 이단을 배격하였고, 자신의 수도 생활의 영성을 『바실리오 규칙서』로 정리하였습니다.
이 규칙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 말씀을 어떻게 수도 생활에 적용하고 실천하느냐 하는 내용입니다. 그는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생활을 이상적인 공동체로 제시하면서, 장상과 수도자들 간의 수직적 관계보다는 형제들 간의 수평적 관계를 더욱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또한 은둔 생활보다는 수도자들의 공동체 생활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공동체 생활이 그리스도의 최고 계명인 사랑을 더 잘 실천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형제적 친교와 사랑을 강조하는 그의 수도 생활은 현대의 수도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고, 그의 규칙서는 오늘날까지 동방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수도 규칙서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바실리오와 그레고리오 두 성인은 성경 말씀에 따라 사셨던 분들입니다. 형제애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적 삶이 두 성인의 삶이었습니다. 이러한 공동체 정신은 수도 생활을 하지 않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신앙의 덕목이 됩니다. 교우들과 나누는 공동체적 친교와 사랑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확실한 길이 됩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광야에서>

당시 세례자 요한이 벌인 세례갱신운동은 백성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자 요한에게로 달려갔습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던지는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집중했습니다. 또 열광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례자 요한이 보여주었던 청빈한 생활, 말과 행동의 조화, 호소력 있는 외침,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사람들은 지금까지의 예언자들과는 격을 달리하는 세례자 요한에게 홀딱 반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추종자들은 날이 갈수록 불어나기만 했습니다.

군중들 사이에서 이런 말조차 퍼져나갔습니다.

“혹시 세례자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그 정도 인물에다, 성품에다, 정직함에다, 탁월한 언변...아마도 가능성이 농후할거야”

사람들의 초점이 온통 세례자 요한에게 쏠리다보니 이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찬밥신세가 된 사람들, 갑자기 파리 날리게 된 유다 지도층 인사들, 유다 최고의회 사람들은 은근히 심기가 뒤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두려움도 느껴졌습니다. ‘혹시라도 세례자 요한이 메시아라면 우린 어떻게 되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줄을 설려면 확실히 서야지’ 하는 마음에 세례자 요한이 정말 메시아인지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세례자 요한의 메시아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 사절을 보낸 것입니다.

조사관이 세례자 요한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세례자 요한에게나, 예수님에게나, 그 누군가에게 줄을 서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유다인들에게나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그간 세례자 요한의 위치나 입지는 자신도 모르게 아주 높이 올라가 있었습니다. 추앙과 숭배의 대상으로까지 올라가 있었습니다. 스스로도 무척 부담스러웠겠습니다. 본인은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 메시아가 아니라면 적어도 엘리야 정도 되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단 한 번의 단답식 대답으로 지금까지 자기도 모르게 쌓아올려진, 그리고 꽤나 부풀려진 자신을 일거에 허물어트립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엘리야도 아니다.”

“예언자도 아니다.”

사람들은 조급한 마음에 재차 묻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겸손하게도 세례자 요한은 솔직히 자신의 신분을 드러냅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신원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은 뒤에 오실 메시아에 비교하면 광야에 떠도는 소리, 허공에 맴돌다 사라지는 소리에 불과하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아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절대로 그리스도가 아니요, 단지 그리스도에 앞서서 파견된 ‘소리와도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잘 자각하고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본의 아니게 사람들로부터 집중적인 시선을 받았지만 그 어떤 환상에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스스로를 향해 주인공이 절대로 아님을 명백히 밝히면서 주인공은 오직 예수님임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고백합니다.

요한이 조금이라도 덕이 덜 닦였더라면, 준비가 좀 덜되었더라면 군중들의 환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교회 안에서 덜 닦이고 덜 준비된 수도자나 성직자들이 자신의 삶을 그렇게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가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따라 사람들의 시선집중을 뒤로 하고 다시금 황량한 광야로 나아가는 세례자 요한의 쓸쓸한 뒷모습이 정말 멋있어 보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광야,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오직 ‘광야에 메아리치는 소리’ 역할에 만족하는 세례자 요한의 바람 같은 삶의 모습이 눈물겹도록 존경스럽습니다.

- 양승국 신부

 

                      

       


      "♬내가 천사의 말 한다해도"~연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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