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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 복음묵상] 스승을 뛰어넘는 제자들ㅣ 양승국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04 조회수810 추천수8 반대(0) 신고

2007년 1월 4일 주님 공현 전 목요일


그때에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요한 1,35-42)

 

 John was standing with two of his disciples,
and as he watched Jesus walk by, he said,
“Behold, the Lamb of God.”
The two disciples heard

what he said and followed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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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세례자는 주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묘사하며, 자신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라가게 한다. 이 가운데 한 사람은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그는 형에게 메시아를 만났다는 말을 전하며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간다. 이로써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들이 탄생하게 된다


 ☆☆☆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끊임없는 영양 섭취를 통해서만 그 기능을 유지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산물을 배설하는 기능도 영양 섭취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이러한 대사 기능의 순환이 온전치 않거나 멈출 경우 생명체는 병에 걸리거나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러한 대사 현상은 신체적인 것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끊임없이 움직이며 외부의 자극을 처리하고 그 부산물들을 방출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의 순환 기능이 원활하지 않으면 마음의 병에 걸리게 마련입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감정적인 정화를 유도해 내는 사회적 자정 기능을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린 양에게 모든 우환과 질병, 그리고 각 개인들의 삶의 질곡에서 빚어지는 수많은 감정의 찌꺼기들을 뒤집어씌운 채 그 양을 매질하고 불에 태워 죽임으로써, 사람들이 정당하게 처리하지 못한 감정적 부산물들을 정화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 어린 양은 자신의 희생을 통하여 사람들의 삶을 원활하게 이어 가게 해 주는 구원자의 역할을 한 셈입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가 없으시면서도 우리의 죄를 모두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써, 우리의 생명을 구해 주신 ‘착한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우리 자신도 이웃의 고통에 함께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때에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스승을 뛰어넘는 제자들>


잘 나가던 전성기 시절, 세례자 요한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습니다. 요르단 강에서의 세례를 통해 요한은 범국민적인 쇄신운동, 회개 운동을 전개했었습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요한이 주도한 자정운동에 기꺼이 동참했습니다. 후에는 예수님조차도 요한을 찾아오셔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달이 차면 기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요. 드디어 예수님의 때가 도래합니다. 예수님께서 서서히 구원사 무대의 전면으로 나서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시대가 열리면서 그간 세례자 요한에게 집중되었던 사람들의 이목은 이제 예수님께로 쏠리기 시작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조금씩 쇠락해가는 스승의 기운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습니다. 은근히 심기가 불편해졌습니다.


사람들이 이제 다들 예수님께로 몰려가고 있는 반면, 그 동안 스승 요한을 향해 구름처럼 몰려오던 사람들의 수효는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심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끓어오르는 질투심과 시기심을 잠재울 수가 없었습니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스승 요한은 미동도 꼼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급기야 오늘 복음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그나마 남아있던 요한의 두 핵심 제자마저 자신을 떠나 예수님의 제자단에 편입됩니다.


제자들이 떠났다기보다 오히려 요한이 제자들을 떠나보냅니다.


예수님께서 가까이 오시자 요한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그분을 따라가게 놔둡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 동안 잘 양성시킨 제자들, 떠나보내자니 아쉬움도 컸겠습니다. 섭섭함도 많았겠습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얼마나 배포가 큰 사람이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그릇이 큰 사람이었는지 모릅니다. 세례자 요한은 제자들이 언제까지나 자신에게 종속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스승인 자신을 뛰어넘도록, 스승인 자신을 딛고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배려합니다. 자신보다 더 큰 스승이 나타나자 제자들을 향해 저분을 따라가라고 지시합니다. 세례자 요한에게서 참 스승, 큰 스승의 면모를 봅니다.


한 명 한 명 떠나가는 제자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한 순간에 등을 돌리고 마는 군중들, 급격히 쇠락하는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던 세례자 요한의 심정은 꽤 쓸쓸하고 허전했겠습니다. 


한때 잘 나가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세례자 요한과 그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핵심제자들마저 속속 예수님의 제자단으로 편입됩니다. 그나마 남아있던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존재 의의가 급격히 쇠락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속수무책인 스승의 태도를 보고 크게 실망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스승을 향해 따집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분에게 몰려가고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냥 보고만 계실 것입니까?”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그간 자신이 주인공이었지만 이제 자신의 시대가 가고 새로운 무대가 열렸다. 새로운 무대의 주인공이신 예수님께로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 안에서 나날이 성장하도록 매일 저는 죽어갑니다.”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서라면, 이 내 한 몸 어떻게 되어도 좋습니다.”

 

-양승국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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