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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강론]나를 부끄럽게 한 다미안회 회장님ㅣ이찬홍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05 조회수634 추천수7 반대(0) 신고

                                      

 

                나를 부끄럽게 한 다미안회 회장님

                             

 

   지난여름에 본당 중고등부 주일학생들과 함께 소록도 봉사 활동을 다녀왔습니다. 처음 나환우들을 대하면서 환우들을 기피하거나, 놀라워하면 어쩌지?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학생들은 스스럼없이 환우들을 만났습니다. 기쁘고, 활기차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한 소중한 시간이었고, 모두가 아쉬움을 뒤로한 채, 제주항에 몸을 실어야했던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체험이었고, 모두가 해피엔딩으로 끝난 결과이지만, 가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분노를 드러냈고, 편법을 통해 이루어진 봉사활동이었습니다.


   올해 초 쯤에 주임 신부님께서 ‘중고등부 신앙학교를 소록도 봉사활동 가는 것으로 준비했으면 한다.’고 말씀하셔서 일정에 대해 알아보니, 고등부는 봉사활동을 할 수 있지만, 중등부는 받지 않는다기에 포기했었습니다.


   그런데, 중등부 레지오에서 중학생을 데리고 소록도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레지오 단장님을 만나 중학생이 갈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갈 수 있다는 말씀을 듣고, 레지오 단장님과 대화가 잘 되어 중학생뿐만 아니라, 고등학생까지도 함께 가는… 이번 신앙학교를 소록도에서 하자는 결정을 했습니다.


   준비기간이 얼마 되지 않기에 바로 대대적인 홍보에 들어갔습니다. 주보공지, 가정통신문 등을 통해 참가 신청을 받았습니다. 여느 때와는 달리, 소록도 봉사활동을 간다고 하니 본당 학생들만이 아니라, 타 본당, 신성여고 학생들까지 신청했습니다.


   저와 교사들이 준비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 레지오 단장님께서 ‘교구 다미안회도 저의 날짜에 간답니다. 함께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볼까요?’ 묻자, ‘함께 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 주십시오. 경험이 많은 분들이니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미안회에서도 우리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어 주어, 잠자는 것만 빼고는 먹고, 활동하는 것을 함께 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다 잘되었습니다. 학생들도 설렜지만, 저 역시 친한 선배 신부님이 소록도 본당에 보좌로 계신지라 오랜 만에 신부님을 만나 뵐 기대감으로 마음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소록도에 갈 날을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주임 신부님께서 저를 찾으시더니, ‘소록도에 방문한다고 병원에 신청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니마시!’ 라고 대답하자, 신부님께서 ‘다미안회 회장님이 전화가 왔는데, 우리 중앙 성당이 병원 봉사 계에 방문 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함께 가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미안회 회장님께서 ‘이번에 다미안회 뿐만 아니라, 중앙 성당 중고등부 학생들과 함께 갑니다.’는 내용을 병원에 연락을 했을 때, 병원에서 중앙 성당은 신청하지 않았다는 통보를 받고 주임 신부님께 알려주었던 것입니다.


   사실, 저도 그때까지 소록도에 가려면 병원 봉사 계에 신청을 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사건이 발생되기 전까지 그 누구도… 레지오 단장님도… 다미안회 회장님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이제 와서 어떻게 하나?’ ‘학생들에게 신청을 다 받아버렸는데… 신앙 학교가 일주일도 남지 않았는데‥’ 참 막막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다 이렇지 뭐…’ 라는 마음으로 위안을 삼았지만, 무엇보다도 성당의 공신력을 떨어뜨려서는 안 되겠기에‥ 주임신부님께 ‘저의 무지로 인애 초래된 결과니, 제가 처리하겠습니다.’는 말씀을 드리고는, 곧바로 선배 신부님께 전화를 드려 사정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자 선배 신부님께서는 너무나 쉽게, ‘그냥 와, 내가 수녀님에게 이야기 해줄 테니까, 봉사활동을 할 수 있을 거야. 할일 없으면, 돌아다니며 쓰레기라도 줍지 뭐.’ 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제 살았구나 …’ ‘나에게는 오라는 신부님의 말씀이 복음이다. 는 마음에 형만 믿고 그냥 간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바로 주임 신부님을 만나 뵈고는 갈 수 있다고… 선배 신부님께 이야기를 해보니, ‘학생들이 소록도에서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봉사활동 확인서인데, 병원 이름이 아니라, 주임 신부님 이름으로 해주면 될 것 같습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 잘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었습니다. 교구 다미안회 회장님께서 병원 측의 허락이 없으면 소록도에 가도 병사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소록도 보좌 신부님과 수녀님과 통화한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수녀님과 통화를 했나 봅니다. 답답함을 넘어 화가 치밀어 올라, 주임신부님을 찾아뵈고는 ‘다미안회 회장님이 누굽니까? 수녀님과 통화해 보니, 좀 전에 교구 다미안회 회장님이 전화 왔었다고 합니다. 이번에 학생들 소록도에 못가면, 그 사람 때문인 줄 알겠습니다.’며 은근히 신부님의 협력을 요구했습니다.


   신부님께서 ‘그분은 그런 분이다.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좋지 않는 감정으로 소록도에 가서 다미안회 회장임을 만나 뵈었습니다. 다미안회 지도 신부님께서 함께 가지 못해서, 제가 회장님과 함께 해야 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하루, 이틀, 삼일을 함께 지내며 여러 곳을 방문하게 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회장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분이셨기에, 병원에 신청을 하지 않는 우리 본당이 소록도에 방문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생각이요, 말씀이었구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장님은 한마디로 재미없는 선비 같은 분이셨습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가 명확했습니다. 주임 신부님 말씀대로, 한번 안 된다는 것은 눈에 흙이 들어와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된다고 하면, 끝까지 되게끔 노력하는 분이셨습니다. 심성이 이러한 분이신데… 이렇게 삶이 옳고 곧은 분이어서 신청을 하지 않은 우리 본당이 소록도에 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이를 모르고 화를 낸 제 모습이 그렇게 미안하고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봉사 마지막 날에 ‘준비하는 동안 회장님께 화를 내며 심기를 불편하게 해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는 사죄를 드렸습니다. 회장님께서도 ‘아닙니다. 제가 너무 죄송합니다. 기분 좋게 함께 와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오늘날을 자기 정체성 상실의 시대요, 가치관이 흔들리는 시대라고 하는데, 다미안회 회장님께서는 자신의 소신과 뜻을 명확하게 품고 살아가는 분이셨습니다. 그분을 만나 뵌 후로, 서로 존경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저는 가치관이 자주 바뀌는데… 가지 못하는 봉사활동도 편법을 써가 갔고…


   복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나타나엘은 예수님을 무시하는 발언을… 곧,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라며 예수님을 소개하는 필립보를 무색하게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그러한 나타나엘을 칭찬하는 말씀을 하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거짓이 없다.”는 말씀은, 자신의 생각, 감정을 속이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소개를 들을 때, 예수님을 무시하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저 듣기 좋은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당당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늘, ‘맞으면 맞다. 틀리면 틀리다.’가 명확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 “거짓이 없다.”는 칭찬을 들은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자신의 소신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오죽했으면, ‘모두가 “네” 라고 할 때, 혼자만 “아니오.” 라고 대답할 수 있고, 모두가 “아니오.” 라고 하는데 혼자만 “네” 라고 대답할 줄 아는 당신이 진정 000(멋있고 아름다운-찾지 못해 임의로 정했습니다.) 사람입니다.’ 라는 광고가 나왔겠습니까?


   ‘네’ 할 것은 ‘네’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것은 세상을 거슬러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융통성이 없어 세상을 힘들고 답답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닙니다. 바로, 선비의 모습처럼 자신의 정체성과 소신을 간직한 모습이요,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으로부터 “거짓이 없다.”는 칭찬을 듣는 모습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소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청하며 생활했으면 합니다. 아멘.

(*주) 아니마시 : 제주도 사투리 / 아니요


                - 제주교구 중앙성당 이찬홍 야고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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