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284) 산 낚시 / 이길두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05 조회수754 추천수6 반대(0) 신고

 

                         산 낚시

                                 

                                                                 글쓴이 : 이길두 신부님

 

 

"신부님 어쩌지요? 아이들과 소풍갈 날짜는 다가오는데 장소도 그렇고

 함께 해줄 놀이도 그렇고 걱정이에요."

 

"그래 나도 걱정이다 길수야, 한번 생각해 보자......!"

 

길수는 잘 생기고 덩치가 큰 유일한 남자 교사다.

과묵하게 맡은 일을 잘 해서 '길두 동생 길수'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애제자요, 사랑하는 동생 같은 믿음이 깊은 청년이다.

 

조그만 시골마을 성당인데도 주일학교 미사에 나오는 아이들이 칠십여 명이다.

토요일 오후만 되면 재잘대는 아이들 소리가 동산에서 마을로 퍼져나간다.

 

며칠 뒤, 다시 들려오는 전화소리.

 

"신부님 내일인데요. 뭘 해야 될지.... 시골이라 교사도 없고, 이럴 땐 너무 힘드네요.

 신부님!"

 

"그래 길수야, 우리 아주 특별한 소풍을 만들어 보자!

 지금 바로 읍내로 가서 아이들 문구, 팬시용품을 사다놓고 거기에 아이들 이름을 다

 써놓아, 그리고 선물받은 동물인형들도 꺼내놓고. 참! 고추비닐 끈도 한 다발 사다

 놓고, 알았지?"

 

다음날 '하느님 만나러 가는 소풍' 을 준비한다.

 

"길수야, 우리들은 하느님을 만나게 하는 천사다.

 나는 긴 머리 치마 입은 천사, 너는 잘 생긴 뚱뚱이 천사."

 

길수도 나도 큰 배낭에 선물을 한가득 넣고 산을 올랐다.

올라가는 길섶 군데군데 천 원짜리를 숨겨놓고, 소나무 가지에 크레파스, 돌 틈 사이에 필통, 나무 그루터기에 수첩, 큰 잎사귀 위에 손수건, 쌓인 낙엽 위에 토끼, 곰, 등 인형들을 흩뿌려놓고 올라간다.

정상 못 미쳐 제일 힘든 코스에서 잠시 쉬면서 선물 꾸러미와 인형을 제일 많이 숨겨놓았다.

 

700고지나 되는 높이라 쉽게 볼 산이 아니다.

길수가 힘들어 한다.

산 정상에 이르러 고추비닐 끈에 선물을 매달아 나뭇가지에 동여매고, 선물 달린 쪽은 벼랑 끝으로 던져놓고 바삐 내려갔다.

 

"신부님, 저 태어나서 산 처음 타 봐요. 근데 이따가 아이들 데리고 또 타야 되는데

 죽을 것 같아요."

"힘들지? 나도 힘들다. 그래도 어쩌냐? 점심은 고기 사줄 테니 힘내라."

 

성당에 아이들이 모여 재잘재잘 시끄럽다.

"오늘 소풍은 하느님 만나러 산으로 간다. 얘들아! 하느님이 보물을 주실 거야.

 기도하고 출발! 빠라바라밤." **^^**

"누굴 만나요, 신부님?"

"보물을 만나다구요?"

"보물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하느님이 어딨어, 산에? 혹 스님은 있을랑가 모르지만."

 

당돌하고 귀여운 녀석.

너희들은 고생 끝에 하느님 계신 걸 알게 될 거다.

지금은 아니고 먼 훗날에 흐흐....

조장은 중학생 형님들이 맡아, 6개조로 나누어 출발했다.

산행 초입부터 연신 푸념과 짜증에 내 이름을 가지고 놀리기도 한다.

"이길두 아니고 저길두 아니고, 이게 뭐에요." 아우성이다.

 

갑자기 한 녀석이 외친다.

"야 보물이다!"

나무 위에 보물이 걸려있어 가지에서 보물을 따는데, 먼저 본 조에 우선권을 주었다.

바위틈에서 수첩, 연필을 찾고 호랑이를 사냥한 녀석은 강아지랑 바꾸고, 토끼는 저학년 주고....

근데 보물을 찾았어도 자기 것이 아니란 걸 알고 아이들은 이내 실망하는 눈초리들이다. 보물마다 이름이 쓰여있기 때문이다.

 

중턱에 올랐을 때 저학년 아이들은 형들이 다 찾는다고 투덜거린다.

학년 별로 헤쳐모여 저학년 아이들을 앞세우고 나니 형들은 뒷짐만 진다.

다시 형들한테 보물을 따달라고 부탁하더니 고분고분 말도 잘 듣는다.

서로서로 아끼고 도와주며 올라가는데 제일 힘든 코스에서도 아이들은 지칠 줄 모른다.

 

올라가는 길에 돈을 주은 아이는 "야 돈이다!" 소리치는데 "임자 있는 돈이다." 하니

"제가 찾았으니 제 건대요." 한다.

"수고 한 조장 형들 이름 써있는 거니까 형 줘라."

"신부님 꽝이라 써있는 건 누구거예요?"

"꽝이니까 네 꺼지."

 

좋아하는 우리 다람쥐들.

 

정상 코앞에서 모두 멈추게 하고, 이제부터 낚시를 할 테니 고기를 낚아보라 시켰다.

'아니 산에서 웬 낚시?' 하며 갸우뚱하는 아이들 중에 꾀돌이 한 녀석이

"야 여기 낚싯줄 있다!"

하면서 나뭇가지에 묶여있는 고추비닐 끈을 발견하고 잡아 올리니 이게 웬 월척!

가방 안에 아이들 먹을 간식이 가득하다.

서로 나눠먹는 모습이 예쁘다.

 

벼랑 끝에 숨겨놓은 가방을 보며

"너무 위험한데 어떻게 할거니?" 하고 묻자

"머리를 써야죠." 하며 전부 손을 잡고 인간 밧줄이 되어 가방을 낚아오고 즐거워한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손톱보다 작은 자기 집을 바라보며

"애게, 겨우 손톱만하네."

"저기 우리 엄마는 새끼손톱의 때보다 작겠네."

재잘재잘, 시끌벅적.

 

오늘 아이들은 산 하나를 맛있게 먹은 날이고, 하느님을 만나고 온 날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하느님을 만난 추억을 미리 심어주고 싶었다.

 

내가 찾은 보물이 다 내 것만은 아니라는 것,

보물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그윽한 곳에 있다는 것,

보물은 함께 나누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제일 힘든 코스에 하느님께서 소중한 보물을 제일 많이 준비해 놓으신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었다.

 

먼 훗날 우리 아이들 중에 신앙을 잘 간직한 아이도 있을 테고,

하느님을 잊고 사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 고향에 왔을 때 옛날 함께 했던 신부님, 선생님, 주일학교 친구들을 생각하며 오늘의 소풍을 추억하게 될 것이다.

 

하느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계시는 분이시기에 앞서가서 만나도 되고

뒤에 가서라도 만나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든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먼 훗날 하느님을 만날 아이들의 얼굴을 그려본다.

 

하느님은 보잘것없는 신부를 낚고 나는 아이들을 낚는다.

 

                                 *******

 

"신부님 왜 이렇게 철이 없으세요?" 아이들과 이런 말을 주고받을 만큼 가깝게 지내는

이길두 신부는 오늘도 아이들과 무엇을 하며 놀까 고민중인 철없는(?) 청년이다.

지난주는 축구를 했으니 이번 주에는 마술을 할까? 하고.....  .

 

 

                     출처 : 가톨릭 다이제스트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