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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06 조회수633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7년 1월 6일 주님 공현 전 토요일

 

 

“One mightier than I is coming after me.
I am not worthy to stoop and loosen the thongs of his sandals.
I have baptized you with water;
he will baptize you with the Holy Spirit.”
(Mk.1,7-8)

제1독서 요한1서 5,5-13

복음 마르코 1,7-11

 

어제는 봉성체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침부터 우리 성당 내의 거동이 힘든 환자들에게 봉성체를 했지요. 사실 2000년에 봉성체를 해 본 뒤, 정말 오랜만에 하게 된 봉성체였습니다. 솔직히 힘들더군요. 그런데 봉성체를 하면서 예전에 만났던 어떤 형제님이 생각나더군요.

환자방문을 하러 병원에 갔다가 어떤 형제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교리를 해야 한다고, 그런데 지금 상황이 안 좋으니까 방문교리를 할 수 있도록 해드리겠다고 말씀드렸지요. 이 형제님께서는 방문교리를 그때부터 하시게 되었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저에게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형제님께서는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얼마 살 수 없다는 진단을 이미 받았답니다. 말기 암 환자였거든요. 그런데 세례를 받은 뒤, 이 형제님이 이상해진 것입니다. 병원에서 도저히 살 수 없다고 하신 분께서, 갑자기 상태가 좋아지신 것입니다.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항상 누워계셨던 분이 이제는 돌아다니시기까지 합니다. 형제님께서는 제게 이런 말씀까지 하시더군요.

“신부님, 저는 정말로 새로운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제가 만약 완전히 낫게 된다면 이제는 교리 선생님이 되어서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혹시 기적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병원에서 다시 진단해 본 결과, 암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위중한 상황이었고, 도저히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인데 저렇게 열정적으로 움직이시니 정말로 이상하다는 말만을 했습니다.

어느 날, 이 형제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가족을 너무나 미워했었다는 사실을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죽어도 용서할 수 없었다고 생각했던 가족들. 그러나 이제는 용서해야겠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자기가 이렇게 살아 있도록 한 것은 화해의 시간을 주님께서 마련하신 것 같다는 말씀도 하시더군요. 그리고 가족들과 모두 화해하셨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기쁘게 주님의 곁으로 가셨지요.

용서란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요? 하지만 용서하지 않고 미움을 간직하면 간직할수록 결국 나의 상처는 더욱 더 커지게 됩니다. 이렇게 오히려 손해인데도 불구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자기 자신을 낮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보다는 위에 서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세례자 요한의 겸손을 다시금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었던 세례자 요한이었지요. 그러나 그는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라고 말할 정도의 겸손함을 보여주시지요. 이렇게 자신을 낮추기에 하느님을 가장 잘 준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 자신의 겸손함을 생각하여 봅니다. 얼마나 겸손하였는지……. 여전히 이기심과 욕심으로 한 없이 높아지려는 내 자신의 한심함을 떠올리면서, 세례자 요한의 겸손을 내 마음 안에 품어보겠다는 욕심을 감히 해 봅니다.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용서하세요. 주님께서도 도와주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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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기쁨입니다('좋은 글' 중에서)



기도는 기쁨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사랑을 비추어 주는 햇빛과 같습니다
기도는 영원한 생명을 향한 희망입니다
기도는 여러분 모두와 나를 위해서 타오르는
하느님 사랑의 불꽃입니다

당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도록
당신이 싫어하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가장 훌륭한 사랑의 방법입니다.

이웃에게 행하는 조그만 애덕의 가치를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우리가 많은 일을 함으로 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지니고
그 일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안에서 행복하다는 뜻은
그분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분처럼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분처럼 내어주는 것입니다
그분처럼 섬기는 것입니다

오늘도 작은 일들에 충실하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당신을 키우는 힘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You are my beloved Son; with you I am well pleased.”
(Mk.1,11)

 


  Unchained Melody - Harry Belafo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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