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아주 어린 시절에 우리 가족에게 교리교육을 해주신 인보성체수도회 오 수산나 수녀님이 사진 한 장을 보내주셨다. 이 사진은 단기 4291년(1958년) 4월 6일에 찍은 흑백사진으로, 어머님이 청평본당에서 윤을수 신부님(인보성체수도회 설립자)께 세례를 받고 찍은 가족사진이다. 어렸을 때 본 기억이 있었는데, 중간에 잦은 이사로 분실하여 늘 마음으로 아쉬워했었다. 가족들이 아버지·어머니 주위에 서 있는데 묘하게도 내가 제일 가운데 있고, 아버님의 친구이셨던 고 김홍섭(바오로) 판사님이 우리와 함께하셨다.
그렇다! 「무상(無常)을 넘어서」의 저자, 지금까지도 법조인의 귀감으로 존경받는 사도 법관 김 판사님이 주말이면 우리집 사랑방에 머물며 전도하시던 기억이 난다. 그 선하고 마냥 온유하고 인자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 사진을 크게 확대하여 서재에 모시니 방안이 따스하게 안정을 찾은 듯하다.
전통적 유교문화에서 살아온 한 가정이 가톨릭 신앙으로 귀의한 것은 그 가정의 역사가 구원의 역사로 전환된 것을 뜻하며 각 사람한테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이를 두고 사도 요한은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1요한 5,4)라고 선언하신다.
세례는 예수님의 영이 우리 인간 안에서 이루시는 새로움이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모님의 태중에서 잉태되시고 태어나셨듯이 같은 성령께서 우리 인간 각자 안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이룩하심이다. 이는 우리가 하느님의 양자(養子)가 됨을 말함이니,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로마 8,15ㄴ).
구요비 신부(가톨릭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