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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들을 때와 말할 때를 가려야한다.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06 조회수602 추천수3 반대(0) 신고

 

<들을 때와 말할 때를 가려야한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르 1,7-11)



  마르코 저자는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시는 장면을 지극히 냉정한 시각을 유지하면서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의 시각은 세례자요한이 자기 자신의 사명을 잘 알고 성실히 수행하는 모습을 그립니다. 그에 대한 설명을 최소한으로 줄였으며, 구약에 예언되어 있는 대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시는 장면도 그저 객관적인 사실만 보고합니다. 두 분 사이에 어떤 관계가 맺어지는 것을 걱정한 처사입니다.

  세례 받으신 후에도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는 모습을 예수님만 보신 것으로 기록합니다.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도 예수님만 들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아무도 모르는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세례자 요한도 어떤 분이 뒤에 오셔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푼다는 것만 알고 있는 듯이 기록합니다. 아직은 예수님의 신원이 비밀에 붙여져야 했습니다. 그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생기려면 좀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런 마르코의 시각이 1901년 브레데라는 학자가 지은 ‘메시아의 비밀’이라는 책에서 밝혀졌습니다. 마르코 시대에 ‘메시아로서의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과 ‘역사적 예수의 활동에 대한 非메시아적 전승’ 사이에 괴리가 심했는데 마르코 저자는 ‘메시아의 비밀이라는 방법’을 창안해서 해결 하려고 했다는 주장입니다.

  마르코저자는 예수님께서 스스로 메시아라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게 의도적으로 숨기셨으며 그 결과 일반 사람은 물론 제자들조차 예수님의 정체와 그 의도를 올바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적습니다. 예수님께서 평소에 말씀하신대로 수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으며 사흗날에 부활하신 뒤에라야 비로소 모든 비밀이 풀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복음서와 달리 마르코저자는 이 대목에서 세례자 요한마저도 예수님의 정체를 분명히 알지 못한 것으로 그립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성령을 받으시고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시편2,7),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이사42,1).” 이라는 목소리를 들으셨으나 아직 그 때가 오지 않았으므로 침묵하시고 공표를 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살다보면 들을 때와 말해야 할 때를 잘 가려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의 귀가 두개인데 반해 입이 하나인 것은 두루 많이 듣고, 말은 가려하라는 뜻입니다. 들은 것을 새기고 새겨, 전해야 하는지 비밀로 해야 하는지 판별해야합니다. 들은 것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할 여유가 필요합니다.

  들은 것을 쪼르르하고 말해 버린다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촉새라고 놀립니다. 듣자 마자 말하면 대개의 경우 덧붙여 말하게 됩니다. 자기가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 생각이 덧붙여지기 마련입니다. 꾸며서 말하게 됩니다. 말하기에 앞서 재삼 살펴야하는 것입니다.

 

  가톨릭 피정은 이런 원리를 들어 피정기간 동안 침묵수행을 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주로 듣기위해서 자신의 말을 삼가는 것입니다. 자신의 말을 하는 동안에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의 자세는 듣는 이의 자세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로마10,17)”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물론, 부부지간에 서로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부자지간, 이웃지간에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들어야 신뢰가 생기고 사랑이 싹트게 됩니다. 듣지 않으니 오해가 생기고 불신이 싸이게 됩니다. 그 결과 서로 미워하게 되고 싸우게 되며, 국가끼리는 전쟁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또 말할 때를 잘 가려야 합니다. 아무리 듣기 좋은 말도 여러 번 들으면 짜증이 납니다. 하물며 듣기 싫은 충고나 고언을 하려면 그 때를 잘 살펴야합니다. 상대방이 받아들일 준비가 된 상태에서 말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어조로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하여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우리는 그대로 따르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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