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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해 초하루 아침, 백화산에서 황금돼지를 잡다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07 조회수509 추천수4 반대(0) 신고

 

     새해 초하루 아침, 백화산에서 황금돼지를 잡다

      



▲ 어두운 새벽부터 백화산 정상을 가득 메운 태안읍 주민들.  
ⓒ 지요하

<1>

올해도 초하루 새벽에 충남 태안군 태안읍에 있는 백화산을 올랐습니다. '태안반도태안청년회'에서 주최하는 '2007 해맞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냥 참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신년 축시'를 낭송해야 하는 일도 있어서였습니다.

지난 2004년부터 해마다 초하루 새벽에 백화산 정상에서 거행되는 해맞이 행사에서 매번 신년 축시 낭송을 했습니다. 이번이 벌써 네 번째입니다.

이번에는 신년 축시 짓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지난해 세 번째 신년 축시 낭송을 하고 나서 태안반도태안청년회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이 일을 연거푸 세 번을 했으니 내년부터는 하지 않겠다. 내년에는 고장의 다른 시인에게 부탁하라."

일종의 선언이었지요. 그 일을 해마다 나 혼자 독점하다시피 하는 것도 모양이 좋지 않은 일로 여겨졌고, 고장의 여러 시인들에게 미안하기도 한 일이었습니다. 거기다가 고달픈 감도 없지 않았습니다. 여러 시간을 바짝 꼬부라져서 시를 짓는 일도 사실은 힘이 들었고, 그것을 갖고 새해 초하루 새벽에 백화산을 올라 춥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낭송을 한다는 것도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절대로 그 수고를 하지 않기로 진작부터 작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20일이 넘도록 신년 축시 부탁이 오지 않아서, 태안반도태안청년회 사람들이 작년의 내 선언을 잘 기억한 나머지 고장의 다른 시인에게 부탁했을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12월 23일 당질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태안반도태안청년회 간부들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당질녀가 내게 전화를 한 것이었습니다. 당질녀의 남편도 그 단체의 간부이기 때문에 당질녀에게 그런 '소임'이 맡겨진 것 같았습니다.

당질녀는 내가 작년 해맞이 행사 후에 한 말 때문에 반도청년회 사람들이 크게 걱정을 하고 있다면서, 당숙에게 아주 바짝 매달리는 본새이더군요. 당질녀에게 그런 소임이 맡긴 정황을 생각하니 딱 부러지게 거절을 할 수가 없더군요.

당질녀는 성탄절이 지난 후에 반도청년회 신임 회장에게서 전화가 갈 거라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성탄절 운운한 것은 천주교 신자로서 성가대 봉사도 하는 내 바쁜 사정을 감안하겠다는 뜻인 것도 같았습니다.

그 뒤 성탄절이 지나고도 이틀이나 꺾어진 28일에서야 그 단체의 신임 회장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너무 늦은 전화가 언짢은 감을 주면서, 다른 시인에게 부탁을 하기는 너무 늦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을 노리고 그렇게 느지막이 내게 전화를 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들더군요.

그의 부탁은 간곡하였습니다. 이번 한 번만 더 수고를 해달라는 말도 했고, 지난 세 번의 내 '완전 봉사'에 대해 미안한 뜻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끝까지 거절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역의 자생적 사회봉사 단체로 30년 이상의 역사를 이어오며 여러 가지 뜻이 있는 일을 많이 하는 그 단체의 부탁을 끝까지 거절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31일 저녁에 신년 축시 짓는 일을 했습니다. 2006년의 마지막 작업인 셈이었습니다.


▲ 일제히 하늘에 '희망풍선'을 날리며 환호하는 태안 읍민들  
ⓒ 지요하


<2>

태안읍 백화산 정상 해맞이 행사는 오전 7시에 시작되었습니다. 군수, 군의회의장, 문화원장, 교육장, 태안반도태안장년회 전임 회장 등이 이런저런 역할을 맡은 '제천제'를 거행한 다음 신임 청년회장의 개회사, 군수와 군의회의장의 신년사, 소프라노 독창, 색소폰 연주, 신년 축시 낭송, 소망풍선 띄우기, 만세 부르기, 행운권 추첨 순으로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나는 행사 전 백화산 정상으로 오를 때 행사 진행요원에게서 '행운권'을 한 장 받았습니다. 번호를 보니 '666번'이었습니다. 나는 백화산을 오를 때는 신년 축시 낭송을 마치면 곧바로 내려올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행운권 번호를 보니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666, 세 자리 숫자가 똑같은 번호를 받기도 쉬운 일이 아닐 거라는 묘한 생각이 들면서 은근히 기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행사 마지막 순서인 행운권 추첨이 시작될 때 나는 차(茶)가 마련된 곳으로 갔습니다. 커피 잔에 뜨거운 물을 받는데, 군의회의장이 뽑은 행운권의 번호를 사회자가 불렀습니다. 660이라는 숫자를 듣는 순간 절로 긴장이 되더군요. 그러나 마지막 숫자는 7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나한테 그런 행운이 올 리 있나.

그런데 문화원장과 교육장과 태안반도태안장년회장이 차례로 행운권을 뽑은 다음 여섯 번째로 청년회의 전 회장이 행운권을 뽑았을 때였습니다. 청년회 전 회장은 행운권을 사회자에게 주지 않고 자신이 직접 큰소리로 번호를 불렀습니다.

"6백6십6번!"

행운권 추첨은 열 장만을 뽑았습니다. 수백 명이 모인 가운데서 단 열 명만이 뽑혔고, 내가 그 안에 들었습니다. 신년 초하루 아침에 해맞이 행사장에서 행운을 얻은 열 명에게는 각기 1돈짜리 '황금돼지'가 주어졌습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 나이를 먹도록 공개 행사장에서 추첨에 뽑혀 상품을 타보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런저런 크고 작은 행사에서 행운권을 받은 경험은 꽤 있지만 그 행운권이 행운을 가져다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가족 모두가 거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류의 행운이라는 건 애초 우리 집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이런저런 행운권 추첨 때마다 아예 기대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07년 1월 1일 아침에, 해맞이 행사가 치러지는 백화산 정상에서 그런 뜻밖의 행운이 내게 찾아온 것입니다. 그것도 돼지해에 황금돼지 한 마리가…. 비록 금 1돈짜리 작은 돼지이긴 하지만….

물건의 부피나 값을 떠나서 신년 초하루 아침의 해맞이 행사에서, 행운권 당첨으로 돼지해에 황금돼지를 탔다는 것이 되우 즐거운 기분을 갖게 하더군요. 그래서 나는 내가 당뇨환자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행사장에서 아침부터 빈속에 맛좋은 동동주를 두 잔이나 마셨지 뭡니까. 술기운으로 기분이 더욱 둥둥 뜨는 것 같더군요.

기분 좋은 일은 또 하나 있었습니다. 행운권 추첨이 시작되기 직전에 반도청년회 간부 한 명이 내게 와서 봉투를 주더군요. 처음 받아보는 봉투였습니다. 지난 세 번의 신년 축시 낭송은 완전히 무료 봉사였는데(고장에서 열리는 뜻있는 행사이니 고장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 행사를 돕는 것으로 생각해 왔는데), 이번에는 사례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나로서는 글을 써서 번 2007년의 최초 수입이었습니다. 새해 초하루 아침에 백화산 정상 해맞이 행사장에서 올해 첫 번째 고료 수입이 되는 봉투를 받았다는 사실은 매우 각별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에 대한 인식이 나를 즐겁게 했는데, 거기에다가 행운권 당첨으로 황금돼지까지 받게 되었으니….

구름 때문에 동녘 하늘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지는 못했지만,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어머니와 마누라에게 '축하'를 했습니다. 내가 새해 초하루 아침에 백화산 해맞이 행사장에서 비록 적은 금액이나마 올해 첫 고료 수입이 되는 봉투를 받고, 또 행운권 당첨으로 황금돼지를 타왔으니 당연히 어머니와 마누라에게 축하를 할 일이었습니다.

봉투에는 10만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나는 그 돈에서 만원을 떼었고, 신년미사(세계평화의 날/천주의 모친 마리아 대축일)를 지내러 가족과 함께 성당에 가자마자, 새해 첫날에 새해 첫 십일조 헌금을 했습니다. 황금돼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확실한 값을 알아본 다음 정확하게 십일조 헌금을 할 생각입니다(우리 성당은 개신교 신자들처럼 올해 십일조 헌금을 하기로 해서…).

올해 첫날 내게 첫 고료 수입과 행운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면서, 내가 새해 초하루 아침에 백화산 정상 해맞이 행사장에서 낭송한 신년 축시를 여기에 소개합니다. 내 글을 즐겨 읽어주시는 분들, 오늘 처음 내 글을 접하시는 모든 독자님들께 올 1년 동안 좋은 일들이 많이 찾아오고, 건강과 평화 속에서 복 많이 지으시기를 기원 드리면서….


▲ 백화산 정상 어귀에 걸려 있는 해맞이 행사 현수막.  
ⓒ 지요하


신년 축시



올 한해 돼지처럼 살자



세월 속에는 길이 있다
태양을 도는 지구에게 길이 있어
하루 24시간이 있고
일년 365일이 있듯이
세월 속에는 노상 길이 있다
시작도 있고 끝도 있는 길이다
끝이 시작이 되고
시작이 끝이 되는 길이다
하나로 끝없이 이어진 길이로되
태양을 도는 지구의 길을 따라
이렇게 저렇게 구분되고 채색되는 길
그 길을 따라 우리는 다시
한 굽이 끝머리를 딛고 올라서서
끝이 시작이 되는 길 위에 섰다
2007년으로 구분되고
정해년 돼지해로 채색된 길 어귀
세월 속에 이렇게 길이 있는 것은
지구가 총알보다 38배나 빠른 속도로 날면서도
궤도를 벗어나지 않듯이
우리네 인생도
도리(道理)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여 다시금 한 처음의 길에 올라서니
돼지가 꿀꿀거리며 맞이하는 길이다
누구나 돼지꿈을 꿀 수 있는 길
돼지 한 마리 잡아 하늘에 소원을 빌 수 있는 길
자연의 풍요와 비옥함을 누릴 수 있는 길
충령군으로 봉해지던
세종대왕님도 만날 수 있는 길이다
올 한해 돼지와 더불어 살게 되었으니
돼지들이 꿀꿀거리는 이 길에서
우리 모두 돼지가 되어보자
복과 재물도 좋지만
독사에게 물려도 죽지 않는 돼지
죽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돼지
그런 돼지를 배우자
더하여 돼지의 다산 능력도 배워보자
돼지 또한 양면성이 있어
탐욕과 게으름과 지저분함의 상징이기도 하니
그런 돼지는 되지 말자
돼지 떼가 꿀꿀거리는 한 세월의 길을
돼지가 되어 살되
탐욕과 무절제는 버리고
돼지의 느긋하고 푸근한 심성으로
수더분하게 살자
세월 속에는 길이 있음을 늘 생각하며….  


  2007-01-02 11:27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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