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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월 7일 야곱의 우물- 마태 2, 1-12 묵상/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07 조회수571 추천수2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을 모두 모아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마태 2,1-­12)

오늘은 아기 예수님이 이방인들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신 날입니다. 동방박사의 방문은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인물들, 그리고 이 일이 일어난 때와 장소를 구체적으로 생각하면서 내 삶의 자리를 바라보려고 합니다. 주인공인 예수 아기와 그 가족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별을 중심으로 한 박사들의 여정이 돋보이고, 헤로데를 중심으로 한 율법학자와 대사제들은 매우 분주합니다.

헤로데. 그는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나신 분’이란 말을 듣고 위협을 느낍니다. 그래서 아기를 찾으면 자신도 경배할 것이니 알려 달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에게는 메시아보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권위와 자리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헤로데의 행동에서 탈출기에 나오는 이집트 왕 파라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이 무섭게 불어나자 두려워, 히브리 여인들이 사내아이를 낳으면 모두 죽이라고 산파에게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집트의 공주가 모세를 물에서 건져 파라오의 궁에서 길렀고 후에는 하느님의 사람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종살이에서 해방시켰습니다. 헤로데는 동방박사들이 다른 길로 떠났다는 것을 알고 베들레헴의 두 살 이하 어린이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하여 무죄한 아기들이 순교합니다. 예수의 부모는 박해를 피해 아기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아기는 장차 율법의 노예가 되어 있는 백성을 해방시키고, 모든 인류에게 하느님의 새 백성이 되는 구원의 길을 열어줍니다.

그 다음은 학자들과 대사제들입니다. 그들은 성경에 대한 지식은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신랑을 기다리며 깨어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누가 신랑인지도 몰랐던 것입니다. 지식은 있었지만 지혜는 없었던 어리석은 처녀들과 같습니다.

한편 동방박사들을 봅니다. 그들은 율법이나 예언서를 몰랐습니다. 단지 ‘별을 보고’ 온 것입니다. 그들이 별을 연구하는 학자들이었다고 합니다만, 그 별은 꼭 하늘에 떠 있는 별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 별은 하느님께서 궁극이요 절대를 향해 살아야 할 모든 사람 마음속에 심어주신 별로, 진리를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떠오르는 별입니다. 학문의 궁극적 목적은 ‘진리’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학자인 그들은 진리에 이르고 싶은 소망과 열망을 가졌기에 진리로 인도하는 별을 인식하고 따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별이 언제나 찬란히 빛나는 것은 아닙니다. 해가 뜨면 별은 보이지 않듯, 우리의 별도 때로는 다른 많은 장애물로 가려져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박사들도 그랬습니다. 왕이라고 하면 당연히 왕궁에서 살 것이란 선입견을 가지고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때로는 무지로 인해 실수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원의를 놓지 않으면 다시 별은 떠오릅니다. 박사들은 오히려 헤로데에게 더 정확한 정보를 얻고 떠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진리를 보았습니다. 그 아기는 ‘나는 진리다’고 하게 될 아기였으니까요. 참으로 무능한 이 아기를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알아보고 경배할 줄 알았던 이들의 안목을 나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장소를 살펴볼까요. 예루살렘은 대성전이 있고 학자들과 대사제들이 있고 헤로데가 사는 화려한 도시입니다. 아기가 나신 곳 베들레헴은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작고 초라한 고을로 인식되던 곳이었나 봅니다. 그러니까 헤로데와 율법학자와 대사제들은 그들이 안주해 살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춘 화려한 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고, 동방박사들은 마치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고향과 친척을 떠났던 것처럼 목표를 향해 어디든 떠날 준비가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곳이 가장 보잘것없는 곳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집착은 별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 때는? 물론 예수께서 나신 때요, 별이 나타난 때입니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별을 보고 기회를 포착한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마치 부르심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힌 사람은 적은 것처럼 말입니다. 별은 언제나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보일 때 행동으로 따라가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만나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 함께 동반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박사들은 아기를 뵙고 그들 삶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은 올 때와 다른 길입니다. 꿈에 헤로데한테로 돌아가지 말라는 하느님의 지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기를 만난 사람의 길은 만나기 전과는 다릅니다. 아기를 만나기 전에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헤로데를 만나는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그 아기’를 발견한 그들은 밭에 묻힌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삽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그리고 하느님이 지시해 주신 길을 따라가면서 그들 삶의 현장에서 그 아기를 임금으로 고백하며 황금을, 그 아기가 하늘과 땅을 잇는 영원한 사제임을 고백하는 유향을, 그분이야말로 자신의 생명을 바쳐 세상을 구원하시는 구원자임을 고백하는 몰약을 바치는 증언과 선포의 삶을 살 것입니다.

자, 이제 구원의 보편성은 모든 이방 민족을 대표하는 동방박사들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에페 3,6)는 하느님의 심오한 계획이 내 안에서 성취되도록 마음의 별을 따라 나설 준비가 되었는지요? 그 별의 인도를 따라 매일매일을 채우면서 아기가 있는 곳에 도달하는 새해가 되어야겠습니다.

정 세라피아 수녀(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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