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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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07 조회수669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7년 1월 7일 주님 공현 대축일

 

 

The star that they had seen at its rising preceded them,
until it came and stopped over the place where the child was.
They were overjoyed at seeing the star,
and on entering the house
(Mt.2,9-10)

 

제1독서 이사야 60,1-6

제2독서 에페소서 3,2.3ㄴ.5-6

복음 마태오 2,1-12

 

제 방에는 참으로 많은 열쇠가 있습니다. 성당의 모든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열쇠들이 있으니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그 열쇠 모양만 보고서 ‘이 열쇠가 어디 열쇠구나.’라고 알 수 있을까요? 하도 많다보니, 또한 비슷비슷한 열쇠가 많기 때문에 어디 열쇠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을 여는데 어렵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그 열쇠에는 어디 열쇠인지가 적혀 있거든요. 따라서 그 열쇠 모양을 보고서 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열쇠에 적혀 있는 글씨를 보고서 문을 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밤이었습니다. 모임을 마치고는 성당 현관 유리문을 열기 위해 열쇠 꾸러미를 꺼냈습니다. 열쇠에 적힌 글씨를 보고는 성당 현관 유리문의 위쪽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문을 열려는 순간, 아래쪽도 닫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주로 위쪽 키만 닫고 다니는데, 마지막으로 나가는 분이 아래쪽 키도 닫고 나갔나 봅니다. 열쇠 꾸러미를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현관’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는 열쇠를 찾았습니다. 열쇠구멍에 넣으니 잘 들어갑니다. 하지만 문이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쪽으로 돌리고, 또 반대쪽으로 돌리고... 꿈쩍도 하지 않는 문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갈등이 생기더군요. 수녀원에 전화를 걸어야 하나, 아니면 사무장에게 연락을 해야 하나, 또 아니면 밖에서 자야 하나....

다시 열쇠꾸러미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은 열쇠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열쇠를 집어서 돌리는 순간, 너무나 쉽게 열렸습니다. 성당 현관 유리문의 아래쪽 열쇠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현관’이라고 적혀 있으니, 당연히 이 열쇠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꼭 진실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으려고 했을까요? 그래서 외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즉, 예수님의 탄생이 지닌 공적인 의미를 확인하고, 구세주 예수님이 곧 만민의 주님이란 사실을 공적으로 선포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 나와 있듯이 동방박사 세 사람은 만민의 주님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실 분을 경배하러 옵니다.

먼저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헤로데를 찾아간 것을 볼 때, 만민의 주님은 분명 화려한 궁전에 태어날 것으로 예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궁전 안에 예수님은 계시지 않았지요. 왕이라는 분은 그 화려한 궁전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대신 냄새나는 마구간에서, 또한 그 왕을 섬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닌, 초라한 목동들이 자리를 하고 있는 곳에서 만민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예수님을 보고서 과연 주님이라는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요? 저 같으면 확인을 위한 어떤 노력을 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동방박사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버리고서, 만민의 주님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바치지요.

이들이 겉모습만을 중요하게 여겼다면, 만민의 주님을 봤다는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요? 겉모습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고백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주님을 제대로 보고 있을까요? 우리 곁에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누워 계신 힘없어 보이는 예수님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 지를 반성해봅시다.

겉만 봐서는 주님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주님은 겉보다는 안쪽에 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만 드러나는 주님이 아니라, 숨어 계신 주님을 찾아봅시다.

 


나의 이름 석자를 책임진다는 것(박성철, '행복한 아침을 여는 101가지 이야기'중에서)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한 어느 설문 조사에 의하면 "당신의 자녀가 당신을 닮아도 좋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절대 안 된다는 대답을 한 사람이 90퍼센트에 육박하는 통계가 나왔다고 합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후회와 자녀가 더 나은 삶을 살기 바라는 부모의 마음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그 설문조사를 접하고 나서 며칠동안 괜스레 마음이 착잡해지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나는 과연 훗날 나의 자식이 커서 나를 닮아도 좋겠다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생각해 봅니다.

만약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자신있는 젊음이고 싶습니다.

내 이름 석 자를 완전히 책임진다는 것이 가장 힘겨운 일일지라도 이 다음에 누구의 가슴에든 잊혀지지 않는 이름으로 남을 수 있도록…….

마음을 잃어 버리면 이미 나를 잃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제 그런 옹골찬 마음으로 두 팔 걷어붙이고 뛰어가야겠습니다.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지금 이 순간도 과거 속으로 묻힐지 모르니 서둘러 나의 길로 뛰어 가야겠습니다.

 

They saw the child with Mary his mother.
They prostrated themselves and did him homage.
Then they opened their treasures
and offered him gifts of gold, frankincense, and myrrh.
(Mt.2,11)

 

 
Kevin Kern - Sundial Dreams

 

Ten Sharp /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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