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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괴짜수녀일기] “담뱃불 꺼!” <20>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10 조회수813 추천수7 반대(0) 신고
 

                        “담뱃불 꺼!”

 

                              


   지하철 역 구내에서 있었던 일이다. 층계를 내려가 막 승강장으로 들어서는데, 학생인 듯한 차림의 청년 셋이서 담배를 피우며 떠들고 있지 않는가. 아니 이럴 수가?

   “ 야, 담뱃불 꺼, 너희들 학생이지?”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재수생이오.” 그들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재수생은 학생 아냐? 저기 금연이라고 적힌 게 안보여?”


   그들은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내친 김에 목소리를 한 옥타브 더 올려 꽥 고함을 질렀다. 그 녀석들은 그제야 화들짝 놀라며 담배를 바닥에 던져 얼른 밟아 끄고는 막 도착한 지하철에 올라타 버렸다.


   나는 그들이 아무렇게나 뭉개놓고 간 담배꽁초를 주워 휴지통에 버리면서 속으로 참 다행이다 싶었다. 혹시 주먹이라도 한 대 날리면 어쩌나 하고 내심 겁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덩치는 유난히 작은데다 양미간을 최대한 좁혀 인상을 써본들 무섭다는 느낌을 전혀 못 주니….


   전에 미국에 들렀을 때 일이 생각났다. 내가 잠시 거주하던 네브라스카 주 놀폭 수녀원 앞에는 넓고 맑은 호수가 있었다. 나는 그곳으로 가는 길을 따라 가끔 산책을 하곤 했었는데, 출렁거리는 호수는 정말 평화로웠다.


   하루는  호수에서 한 청년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 청년은 드디어 제법 큰 고기를 낚아 올렸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그는 잡은 물고기를 도로 물속으로 던져 넣고 있는 게 아닌가. 이유인즉, 잡을 수 있는 물고기의 크기가 법으로 정해져 있는데 조금이라도 거기에 미달되면 도로 호수로 보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 고기들은 내 발 크기보다 더 컸는데도 말이다.


   주방 소임을 맡고 있던 로사리아 수녀는 발을 동동 구르며 애석해했다. 그걸 자기에게 주었으면 한국 수녀들을 위해 매운탕을 맛있게 끓여  주었을 텐데 하며. 그 청년은 곧 잡아줄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우리는 그 말에 펄펄 끓는 매운탕 생각을 하며 낚싯대 끝을 열심히 주시했다.


   그러나 반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아마도 동네 물고기들이 매운탕 소리에 겁을 먹어 비상 도주를 해버린 모양이었다. 끝내 매운탕을 포기하고 수녀원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누가 보든 안보든 법을 지키는 그 청년의 선한 마음씨가 오래도록 잊혀 지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만난 그 젊은이들과는 퍽 대조적인 모습으로.


          - 이호자 마지아 수녀(서울 포교 성 베네딕토 수녀회)/ 前 애화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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