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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월 11일 야곱의 우물- 마르 1, 40-45 묵상 / 내가 먼저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11 조회수738 추천수5 반대(0) 신고

내가 먼저

그때에 어떤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곧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
(마르 1,40-­45)

◆알래스카의 여름은 천국의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온통 숲은 초록으로 빛나며 불어오는 바람도 초록바람이다. 호수가 300만 개가 넘는다 하니 물 또한 싱싱하고 어느 곳에서나 물소리가 정겹다. 지난 여름, 숲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배가 등가죽에 붙은 개 두 마리를 만났다. 나를 보고 흠칫 놀라면서도 애처롭게 쳐다보며 꼬리를 감춘다. 목줄이 끊어진 것으로 보아 도망쳐 나온 것 같았다.

 

나는 개를 무서워한다. 하지만 애원하는 눈빛을 외면할 수 없어 멀리 있는 수녀원까지 되돌아와서 먹을 것을 챙겨주었다. 개들은 맛있게 먹고 보답이라도 하듯 한 시간 내내 뒤를 따라오며 한적한 숲길에서 나를 보호해 주었다. 외진 숲길은 무스라는 큰 짐승과 곰이 나올 수 있어 조마조마한데 녀석들 덕분에 마음놓고 걸을 수 있어 무척 행복했다. 개들과 헤어지는데 아쉬움이 남았다. ‘부디 좋은 주인 만나 행복하기를….’

 

돌아오는 길에 개들의 눈빛이 지워지지 않았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신을 비우고 겸허하게 낮출 때 구원이 온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은 머리 둘 곳조차 없는 떠돌이 신세로 가난한 동네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 그분은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자, 병자와 죄인들 사이에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붙잡혀 매질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 그러나 그분의 십자가는 오늘날 우리에게 구원의 상징이 되었고 내 구원이 이루어지는 곳이 되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저주했던 그 십자가가 인간을 구원하는 도구가 되었고, 매일의 삶에서 자신의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자만이 구원의 길로 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오늘 저 나병환자처럼 겸손되이 무릎을 꿇어야 한다. 내가 먼저 고개 숙여야 하고 먼저 손을 내밀어 상대편 손을 잡아야 한다. 내가 양보하여 한걸음 물러섰을 때 그리고 내가 한 계단 내려섰을 때 화해와 용서와 사랑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모두들 위로 올라가기 바쁜 세상이다. 매일매일 바벨탑을 쌓기에 여념이 없는 이 시대에 나병환자는 자신의 구원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먼저 겸손되이 무릎을 꿇는 것부터 배우라고 가르친다.

문화순 수녀(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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