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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 복음묵상]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결과ㅣ양승국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12 조회수791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07년 1월 12일 연중 제1주간 금요일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마르코 2,1-12)

 

 When Jesus saw their faith, he said to him,
“Child, your sins are forgiven.”



 자신의 힘으로는 예수님께 다가가지 못하는 중풍 병자를 사람들이 예수님께 데리고 와 치유의 기적을 체험하게 한다. 실로 인간 개개인의 힘으로는 얻을 수 없는 하느님의 은총이 있다 하더라도, 공동체가 함께 사랑으로 정성을 들인다면 하느님의 구원 은총은 반드시 우리에게 내려질 것이다
 

☆☆☆

 

“애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결과>


이제 저희 집에서의 생활을 무사히 잘 마치고 만기귀가를 기다리고 있는 한 아이가 들뜬 얼굴로 제게 말했습니다.


“신부님, 제 얼굴 좀 보세요. 처음 왔을 때와 뭔가 다르지 않아요? 지난 주말 엄마 면회 왔을 때 그러시던데, 제 얼굴이 엄청 좋아졌대요.”


그러고 보니 정말 많이 달라졌더군요. 처음 왔을 때, ‘싸돌아다니느라’ 챙겨먹지 못해서 그랬는지. 세파에 시달려서 그랬는지, 고민이 많아서 그랬는지 얼굴이 완전히 상해서 들어왔던 아이였습니다. 저게 아이 얼굴이 맞나 할 정도로 ‘삭은’ 얼굴이어서 ‘선생님’이라고 많이 놀리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아주 싱싱한 얼굴로 변했더군요. 볼에 살도 통통히 오르고, 얼굴색깔도 뽀얀 것이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갓 낚아 올린 물고기처럼 살아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치유의 주님께서 몸은 물론이고, 마음의 병, 영혼의 질병을 앓고 있는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을 당신 사랑으로 말끔히 치유시켜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 유대인들의 사고방식 안에는 이런 경향이 농후했습니다. 누군가 병에 걸리면, 그 원인을 환자 본인에게 돌리는 경향 말입니다. 뭔가 하느님께 크게 잘못했기에 벌로 질병을 앓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랍비 요나단은 병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중상, 살상, 위증, 사음, 교만, 강도, 질투, 이 7가지 죄의 결과.


또 다른 한 랍비는 “하느님께서 죄를 용서하실 때 까지 병이 그 환자에게서 떠나가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요즘 생각하면 너무나도 무리한 논리, 무자비한 논리, 환자 본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억울한 논리였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병과 죄는 서로 크게 상관없는 것이지요. 질병이란 것 이 한 세상 살아가다보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손님입니다. 특히 전염병 같은 경우 어쩔 수 없이 그 시대, 거기 살았다는 이유로 누구든 예외 없이 다 걸려서 고생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당시 환자들은 이중고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안 그래도 병과 싸우느라 죽을 지경인데, 죽을 맛인데, 위로와 격려는커녕 중죄인 취급을 당했습니다.


이런 이중고에 시달리던 중풍병자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중풍병자의 경우 그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단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게 된 말기 중풍병자였습니다. 병세가 어지간했으면 부축이라도 받아서 왔을텐데, 들것에 실려서 온 것을 봤을 때 거의 식물인간에 가까운 병자였음이 확실합니다.


중풍병자는 그 누군가가 도와줘야만 겨우 밥 한 숟가락 뜰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크게 선심 써야만 겨우 볼일도 보러갈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비참한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루 온종일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있는 일이 오랜 세월 중풍병자가 해왔던 전부였습니다. 그저 환자의 목숨이 떨어질 날만 기다리는 것이 환자 가족의 바람이었습니다.


중풍 병자를 거두고 있던 가족들의 고초도 말 할 수 없이 컸습니다. 환자 못지않게 답답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중풍병자 가족들에게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전해집니다.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던 가족들은 ‘혹시나’하는 희망을 안고 들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환자를 들것에 실었습니다. 가족들은 큰 기대와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꼭 일이 잘 이루어져야 할텐데 하는 마음에 열심히 기도 바치며 예수님께서 머무시는 집 앞에 당도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입구가 완전히 봉쇄되어 있었습니다. 치유를 기다리는 무수히 많은 환자와 가족들로 주변은 인산인해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도무지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대로 돌아가자니 억울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간절히 희망했었기에 가족들은 무리인 줄 알면서도, 예의가 아닌 줄을 알면서도 한 가지 묘안을 짜냅니다. 집 바깥에 나있는 계단을 향해 지붕으로 올라갔습니다. 천장에 있는 지붕을 조심스럽게 뜯어냈습니다. 들것에다가는 줄을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환자를 예수님께서 앉아계시는 방 한 가운데로 천천히 내려 보냈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정말 예의가 아니었습니다. 당돌한 일이었습니다. 기가 막힌 일이었습니다. 해도 해도 너무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꾸짖기 보다는 그들의 굳은 믿음을 눈여겨보십니다. 환자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 따뜻한 마음을 높이 평가하십니다. 하느님 자비의 손길과 능력을 의심치 않는 그들이 신앙에 응답하십니다.

-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신부

 

                                    사랑의 종소리 / 김석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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