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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월 15일 야곱의 우물- 마르 2, 18-22 묵상/ 어머니의 지혜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15 조회수548 추천수4 반대(0) 신고

어머니의 지혜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아무도 새 천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마르 2,18-­22)

◆알래스카의 여름 하늘은 흰구름 운동장이다. 높은 산이 많고, 산 넘어 구름 공장이 있는지 매일매일 뭉게구름이 끝없이 피어오른다. 구름이 하늘을 도화지 삼아 온갖 그림을 그리는데 멀리서 바라다보면 목화꽃이 무더기로 핀 것 같기도 하고, 배고픈 날은 솜사탕 같기도 하다. 구름을 보면서 나는 늘 아버지의 꽃상여를 생각한다. 이른 봄 아버지를 선산으로 모시던 날, 하얀 꽃상여를 따르던 나는 눈물을 훔치면서도 상두꾼의 상엿소리며 방울소리가 듣기 좋아 귀를 기울였다. 이로써 아버지의 시대가 끝나고 오빠들과 새언니들이 집안 분위기를 새롭게 만들었다.

 

조금 있으면 우리 수녀원도 소임이동이 시작된다. 한동안 온 수녀원이 술렁거리고 식탁에 앉으면 어느 수녀님이 어디로 갈까, 서로 알아맞히기 내기도 하면서 기다린다. 소임이동이 되면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도 어렵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도 어려움을 겪는다. 지금껏 서로 잘 맞추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새사람과 다시 맞추기 위해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책임자가 바뀌면 더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남은 자의 아픔’이라고 말한다. 본당에서도 신부님·수녀님들이 바뀌면서 신자들이 겪는 혼란을 적잖이 보아왔다. 그래서 어느 땐 한꺼번에 다 바뀌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생각도 한다. 새로운 사람끼리 맞추는 것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여름에 낡은 인조옷을 꿰맬 때마다 헌 인조 조각을 찾지 못해 새 천조각으로 기웠다가 번번이 낭패를 보기 일쑤였다.

이렇듯 새것은 새것끼리, 헌것은 헌것끼리 해야 무리없이 넘어간다. 그런데 사람이 바뀌고 새로운 시대가 왔는데도 자기 생각을 양보하지 않거나 고집하다 보면 어느새 하나가 되지 못하고 갈라지게 된다. 수녀원에서 소임이동 철칙은 ‘새 소임지에서 6개월 동안은 전임자가 했던 것을 바꾸지 않기’이다. 최소한 6개월은 지켜보면서 새것과 헌것이 서로 맞춰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기다림이 힘들고 어렵고 무의미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 기다림이야말로 우리를 하나 되게 하고 신뢰하게 하고 가까워지게 하며 오래갈 수 있게 해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어머니는 오빠들이 하자는 대로 조용히 따르셨다. 그리고 우리한테는 새언니의 뜻에 맞추도록 당부하셨다. 어머니는 때로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주장을 펴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계셨으면 생각도 못했을 일들이 일어나도 가만두셨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처럼 집안 대소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어머니가 고집을 부리며 자식들의 말에 반대했다면 지금처럼 될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문화순 수녀(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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