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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93) 돋보기로 보는 세상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17 조회수691 추천수10 반대(0) 신고

 

 

 

요즘 돋보기를 쓰는 시간이 많아졌다.

돋보기를 몇년만에 새로 맞췄는데 그동안 눈이 많이 나빠졌는지 도수가 높아져 처음 돋보기를 쓰자 어지럽고 머리가 아프고 빙빙 도는 듯하여 깜짝 놀랐다.

새 돋보기 쓰기가 너무 겁나서 언제 다른 병원에 가서 시력검사를 다시 해야지 생각했다. 꼭 의사가 시력검사를 잘못하여 도수를 너무 높인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돋보기집을 서랍에 넣고 한동안 맨눈으로 책도 읽고 컴의 자판도 두드렸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점점 눈앞이 침침하고 답답해서 할 수없이 돋보기를 다시 꺼내 썼더니 어두운 터널에서 대명천지 밝은 세상으로 나온듯 그렇게 환할 수가 없다. 글자가 어쩜 그리도 선명하고 크게 보이던지....이젠 머리도 어지럽지 않다.

돋보기를 너무 오래 쓰고 있으면 눈이 더 나빠진다는 걸 알면서도 그 환한 세상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어 자꾸만 쓰게 된다. 하루에도 몇시간 씩이나 쓴다.

 

내가 쓰는 컴은 안방에 있고 모니터 바로 옆 벽에 거울이 달려있다.

얼마전 돋보기를 쓰고 글을 쓰다가 우연히 일어서면서 거울을 들여다 보고 움찔 하고 놀랐다. 돋보기를 그대로 쓴 채 물먹으러 나가려다가 왜 거울을 들여다 봤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돋보기 너머로 보이는 내 얼굴이 엄청 커보이고(원래도 크기는 하지만), 피부는 분화구의 현무암처럼 모공이 숭숭 뚫려있고, 주근깨는 쏟으면 한종지는 될 것 같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내가 나이에 비해 피부가 좋다는 소리를 노상 들어온터라 안경을 벗고 다시 거울을 보았더니 그 현무암은 사라지고 평소의 내 얼굴로 보여 휴우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돋보기를 쓰고 방청소를 하다보면 맨눈에는 보이지 않던 머리카락이 왜 그리도 많은지 정말 돋보기의 성능은 대단하다. 허지만 돋보기 쓰고 거울만은 들여다 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했다. 그후로는 돋보기를 쓴 채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편치가 않다. 내 얼굴이 현무암으로 보일텐데 하는 걱정때문이다. 시력이 좋은 사람들도  피하고 싶다.

 

언젠가 한 자매가 한 말이 생각난다.

나이를 먹으며 시력이 나빠지는 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닌 것 같다던 말.....

늙어가는데 시력만 좋다 보면 늙은 자기 얼굴이 그대로 보일터이니 속이 상할 것이 아니냐고, 시력이 적당히 나빠지면 늘어가는 주름살도 잡티도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니 모르면 약이라고 마음은 편할것  아니냐고....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나이든 친구들끼리 만나면 얘 넌 주름도 하나 없고 왜 그렇게 뺀뺀하냐? 하는 소리도 하는게 아닌가 싶어진다. 모두들 시력이 나빠져서 보일 것이 잘 보이지 않는줄은 모르고 ㅎㅎㅎ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노인네들 옆에 앉아 있다 보면 웃는다지 않는가.

얘 넌 하나도 늙지 않았다! 하는 말에 킥킥대며 우와! 오버가 심하네! 하고......

그래서 나이 먹은 사람은 나이 먹은 사람끼리 있을 때 덕(?)을 본다.

너 젊다, 너 곱다, 하는 말이 결코 거짓말이 아니고 본대로 느낀대로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세상 일도 그렇지 않을까.

돋보기를 쓰고 보았을때의 온갖 잡티 머리카락 먼지들처럼, 더럽고 지저분한 일들이 낱낱히 보여지는 세상이라면 정말 살 맛이 없어지지 않을까.

 

더러는 눈에 안 띄는것도 있고, 더러는  못보고 지나가는 것도 있어야 덜 실망하고 덜 열받을 것이 아닌가. 그러다 가끔은 돋보기 너머로 보이듯 환한 것도 보면서....

이래서 세상을 보는 돋보기는 너무 오래 쓰면 안되고 잠깐잠깐 써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어떤 부부가 자동차에 기름을 넣었는데 종업원이 서비스로 유리문을 닦아주었다. 그런데 남편이 종업원을 불러 유리가 지저분하다고 말했다. 종업원이 다시 닦아주었는데 여전히 남편은 화를 내며 닦아주려면 깨끗이 닦아주지 이게 뭐냐고 불평을 했다. 부인이 옆에서 당신 안경이 더러운게 아니냐고 했다. 남편이 안경을 닦았더니 차창 유리는 깨끗했더라는 얘기를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그 기억을 떠올리면서 보이는 것도 깨끗해야 좋겠지만, 보는 자신의 눈도 깨끗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혹시 나는 자신의 보는 눈은 깨끗하지 않으면서 보이는 것마다 깨끗하지 않다고 탓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았다.

 

아무튼 글자를 보는 돋보기든 세상을 보는 돋보기든  너무 오래 써서는 안되고 잠깐잠깐 써야한다.

그래야 육체의 눈도 마음의 눈도 적당히 건강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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