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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94) 생명의 수로(水路) / 전요한 신부님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18 조회수679 추천수7 반대(0) 신고

 

 

 

 

 

                                                               글쓴이 : 전요한 신부님

 

 

                                          ㅡ전요한 신부님은 외국인 신부님이십니다.ㅡ

 

 

어느 정원에 당당하게 뻗어있는 튼튼한 대나무가 있었다.

주인은 매일 나무를 보며 자랑스러워했다.

나무는 행복했고 이 행복이 계속되길 바랐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이 나무에게

 

"이제 네가 중요한 일에 필요해서 너를 잘라야겠구나."

 

하는 거였다.

대나무는 한참 동안 울었다.

그러나 대나무는 주인을 믿었기에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주인님, 저를 잘라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쓰십시오."

 

주인은 대나무의 아름다운 가지와 잎을 쳐내버리고, 반으로 자른 다음 속을 훑어냈다.

그리고는 대나무를 시냇물과 연결하여 땅에 고정시키고 맑은 물이 흐르도록 했다.

대나무 수로를 따라 맑은 물이 빠르게 논으로 흘러들어갔다.

 

가을이 되자 누런 벼이삭으로 물결치는 들판은 장관이었다.

벼이삭의 기름진 알곡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이 되었다.

대나무는 다시 행복해졌다.

 

대나무가 보기좋게 뻗어있을 때는 아름답고 멋졌지만,

잘리어 바닥에 겸손히 놓여져 생명의 수로가 되자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영광스러웠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부유하고, 명예롭고,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찬양해왔다. 나도 건강과 강인함을 무엇보다 가치 있게 여겨왔다.

 

아일랜드의 시골에서 자란 나는 어릴 때부터 육체노동을 해야 했다.

나는 그 일을 즐겁게 했고 해낸 일들이 자랑스러웠다.

운동도 좋아해서 1969년 한국에 오기까지 매일 운동을 했다.

나는 스포츠맨으로서의 명성과 체력에 자부심을 느꼈다.

 

 

한국에 와서 전라도 함평과 흑산도에 파견되었는데, 그때도 사람들과 농구와 달리기를 했다. 나는 묵상보다는 적극적인 활동을 선호하는 선교사였다.

그래서 스포츠를 통해 사람들과 친분을 맺었고 그럴 때 젊고 가치 있는 삶을 산다고 믿었다.

 

그런데 사람들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고 운동을 선호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의사소통이 불편한 타국생활은 외롭고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낯선 문화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활동하고 싶은 감정적 욕구는 더 컸다.

 

흑산도 본당에 있던 어느 날 한국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바로 술자리에서 소주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전에 술을 마셔본 적이 없어서 이 방법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아무도 농구나 조깅을 함께 하지 않았다.

 

현지문화에 빨리 적응해서 한국사람들과 하나가 되기 위해 나는 자연스럽게 술을 배워갔다. 이 방법은 한국말을 배우는 데도 참 좋았다.

말에 자신감이 생기자 나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결국 술을 즐기게 되었다.

 

1975년에 나는 서울로 발령을 받아 대학생들을 지도하고, 야학과 선택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신학생을 양성했다.

그런데 광주사태 이후 시위가 일상화되었고, 학생회관 사무실을 드나들때마다 형사들과 말다툼을 벌여야했다.

 

정치집회나 공안사건에 연루되어 한국에서 추방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도 꽤 커갔다. 그런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고 매일 밤 야학 선생들과 포장마차에 가거나 사제관에서 밤새 소주를 들이키며 시국 걱정을 했다.

 

1980년대에 나는 밤낮없이 일하고, 술 마시고, 기도했다.

내적인 긴장감과 정치적인 소란이 있었지만 나는 모든 일을 열심히 했다.

사람들은 일에도, 술에도 끄떡없는 나의 강인함과 열정을 칭찬하고 존경해주었다.

스스로도 이 점이 자랑스러웠으며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건강과 열정은 젊은이들을 위해 봉사하라는 뜻이라 굳게 믿었다.

 

그러나 술은 내 몸과 마음을 걷잡을 수 없이 갉아먹었고, 1992년에 내가 알코올 중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느님께 내 병을 고쳐달라고 밤새 울면서 기도했지만 기적은 당연히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술을 마시고 있었느니.......

 

나는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가야했다.

치료를 받고도 알코올 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미국에서 일하라는 명을 받았을 때는 마치 내가 ***잘려져 나간 대나무*** 처럼 느껴졌다.

 

ㅡ아름다운 가지도 없고 반으로 쪼개진 대나무처럼 내 안에 정성스럽게 간직해 온

   한국인으로서의 심장이 제거된 것 같았다.ㅡ 

 

 

나는 성직활동에서 멀어졌고 한동안 매일 울었다.

하루 빨리 다시 일어서서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성직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주인' 하느님은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으니........

 

오랜 고민과 방황 끝에 내가 중독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무너진 나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나를 ***생명의 수로 ***로 사용하셨다.

 

나는 그 일을 통해 나의 알코올 중독이 저주가 아니라 오히려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하느님의 섭리에 대해 새롭게 배울 기회였음을 알았다.

 

A.A.(단주모임) 회원들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알코올뿐만 아니라 많은 일에 제 스스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들을 위해 알코올 중독 상담법을 배우기로 했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람 한 사람과 우정을 나누고 그들을 전문적으로 도왔다.

 

ㅡ나는 그제서야 내가 다른 이를 돕는 수로가 된 것이 기뻤다.ㅡ

 

나는 결혼생활의 문제로 상처가 깊은 부부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레뚜르바이유(회복)' 프로그램에서는 사제 한 명과 세 부부가 한 팀이 되어 부부생활의 문제점을 털어놓고 그 치유의 기쁨을 함께 나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부부들은 희망과 자신감을 되찾고 무너진 가정도 회복시킨다.

 

ㅡ이런 일을 하면서 나는 하느님께서 병든 생명에 자양분을 대주기 위해 우리의 상

   처와  찢어진 몸을 수로로 쓰신다는 것을 알았다.ㅡ

 

 

2005년, 나는 한국에 돌아올 만큼 건강을 회복했다.

하지만 내 몸은 예전처럼 건강하지도 강인하지도 않았다.

더 이상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설악산, 북한산 꼭대기까지 오를 수도 없고 마라톤, 축구도 할 수 없으며, 젊은이들과 밤샘도 못한다.

 

그러나 나의 늙고 허약한 몸과 마음속에서는 하느님을 더 잘 알고 더 가까이 가기를 바라는 소망이 샘솟고 있다.

 

ㅡ젊은 날에는 나에게 생명과 튼튼한 체력을 주셨던 하느님을 만났고,

   지금은 나를 치유해주시고 용서하시는 하느님을 만난다.ㅡ

 

내가 알코올중독자였던 것은 은총이었다.

사람들과 관계 맺는 새로운 방법을 체험하게 되었고,

무언가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영성적으로 접근해야한다는 소명을 받았다.

 

나는 내 가슴 깊숙이 대나무의 교훈을 간직하며 살려고 한다.

 

건강할 때에는 그 건강을 다른 사람을 돕고 하느님께 감사하는 데 사용할 때

멋있고 자랑스럽고 영광스럽다.

 

그러나 부숴지고 낮아져도 우리는 하느님을 향해 가는 풍요로운 삶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신비한 통로가 될 수 있다.

 

 

      < 原題 : 쳐내고 자르고 훑어 버렸다 >

 

                  ㅡ출처: 가톨릭 다이제스트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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