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2년 임술년 10월 17일, 강진의 한 주막에서 서로 대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증산석’(贈山石)은 다산이 15세의 황상을 처음 만난 1802년 10월,
어린 제자에게 학문을 권하며 쓴 글이다. “내가 산석(山石:황상의 아명)에게
문사(文史)를 닦도록 권하니 그는 머뭇머뭇 부끄러운 표정을 짓더니
‘저는 세가지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둔하고, 둘째 막혀있고,
셋째 미욱합니다’라고 대답한다. 내가 말하기를 ‘공부하는 자는 세가지
큰 병통이 있는데 너에게는 해당되는 게 하나도 없구나’….”
“공부하는 자들이 갖고 있는 세 가지 병통을 너는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첫째 기억력이 뛰어난 병통은 공부를 소홀히 하는 폐단을 낳고,
둘째 글 짓는 재주가 좋은 병통은 허황한 데 흐르는 폐단을 낳으며,
셋째 이해력이 빠른 병통은 거친 데 흐르는 폐단을 낳는다.
둔하지만 공부에 파고드는 자는 식견이 넓어지고,
막혔지만 잘 뚫는 자는 흐름이 거세지며,
미욱하지만 잘 닦는 자는 빛이 난다.
파고드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뚫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닦는 방법은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그렇다면 근면함을 어떻게 지속하느냐. 마음가짐을 확고히 갖는 데 있다.”
황상은 이 글을 ‘삼근계’(三勤戒)로 마음에 새겨 평생 간직한다. 황상이 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게 된 것은 순전히 스승의 가르침 덕분이다. 황상은
스승이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긴 뒤에도 시를 주고 받으며
사제관계를 이어간다.
이강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