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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비역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20 조회수570 추천수7 반대(0) 신고

 


 

 

새집으로 이사 온 다음날,

 

예비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려 가는 자동차 속이다.

 

 

늘 틀어놓고 듣는 방송에서 흘러나온 멘트에 마음이 멈춰 섰다.

  

하이타니 겐지로의 소설, '제비역'의 한 구절.

 

"제비가 머무는 곳은 어디나 제비역이다".

 

 

제비가 앉아 잠시 쉬는 모든 곳이 바로 그들의 역이란다.

 

전깃줄이든, 나무 가지든, 어느 집의 처마 끝이든, 건물의 지붕 위든

 

제비가 잠시 머문 곳은 모두 역이 된다(?).

 

 

역이라는 곳은 곧 떠날 기차들이 모여들어 잠시 쉬는 곳.

 

그곳에서 기차들은 또 다른 목적지를 향해 출발할 것이다.

 

그래, 날다 지친 제비가 잠시 머문 모든 곳이 제비에겐 역이 될테지.

 

그곳에서 제비들은 또 다른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겠지.

  

...........

 

그날은 마침 교리 제2과, "우리가 내려야 할 결단"을 공부하는 날.

 

무엇인가를 결단한다는 것은 어떤 한 방향을 선택한다는 것.

 

신자가 되기 위한 결단을 내리고 벌써 인생의 한 방향,

 

새로운 목적지를 선택한 예비 신자들이 머물고 있는 교리반.

 

교리반도 말하자면 한 간이역일 것이다.

 

나는 교리반이라는 간이역이야말로 이제까지의 간이역들보다 얼마나 소중한 역인지,

 

이제부터의 방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해야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

 

더불어 나 자신이 머물러 있는  "지금, 여기"라는  이 간이역이

 

이제까지의 역들과는 얼마나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가늠해보았다.

 

 

이사를 마치고 새 집에서 하루를 자고 난 후의  첫 나들이 길.

  

하룻밤을 잔 그 집은,  앞으로 일년, 아니 어쩜 몇 년간은 살아야 할지도 모를 곳이다.

 

아직은 낯선 그 곳 역시 잠시 쉬고 있는 역이다.

 

지금까지 신세를 지고 의지해온 역들이 눈 앞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신혼시절에는 너무나 과분했던 72평 짜리 역사(驛舍)에서 출발했다.

 

그리곤 34평, 26평, 23평...점점 驛舍는 줄어들어갔다.

 

마침내 영원히 머물 한평의 驛舍를 향해가는 나의 여정도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다.

 

아니, 무덤 한평도 안되는,  도자기 한 뼘의 공간을 마지막 거처로 삼게 될 것이다.

 

아니, 아니, 그 한뼘의 공간도 그곳을 넘은 또 다른 목적지,

 

그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잠정적인 대기소일지 모른다.

 

 

 

때론 오래, 때론 짧게 머물렀던 수많은 간이역들.

 

집, 학교, 직장, 교회...

 

나는 잠시 머물렀던 공간, 그 역사(驛舍) 자체에 집착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 역 안에서 일어났던 사건들과 거기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단언하건대, 단연코 후자이다.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깊은 인연과 소중한 추억.

 

이것이 지금까지의 나를 지탱하게 해 주었고,

 

앞으로의 희망과 용기와 감사를 갖게 해주고 있다.

 

 

언제나 좋은 추억, 좋은 사람들만 만났던 것은 아니었지만

 

반대하고 괴롭히는 사람들 때문에 내 좁은 이해의 한계는 넓어져 갔다.

 

 

언제나 즐겁고 신나는 사건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도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로 인해 내 나약한 인내와 의지는 굳어지곤 했다.

 

 

 

앞으로 또 어떤 역을 향해 출발하게 될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이 역들을 통과하여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동안,

 

만나게 될 모든 길동무들과 아름다운 만남을 이루기를.

 

맞부닥치게 될 모든 사건들 안에서 합당한 의미를 발견하게 되기를.

 

그리고 그 의미로 인해 모든 어려움과 시련을 기쁨으로 승화할 수 있기를.

 

마침내, 최종 정착역에 도달하여 미소짓게 되기를.

 

바 랄 뿐 이 다.

 

 

 

 

제비가 따듯한 남쪽 나라를 찾아 그 먼 길을 지지치도 않고 가듯

 

나도 따듯한 최종 안식처를 찾아 이 긴 여정을 힘차게 가고 있다.

 


Beetoven Moonlight sonata o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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