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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월 21일 야곱의 우물 -루카 1, 1-4. 4, 14-21 묵상/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21 조회수583 추천수3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우리 가운데에서 이루어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엮는 작업에 많은 이가 손을 대었습니다. 처음부터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것을 그대로 엮은 것입니다. 존귀하신 테오필로스님,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자세히 살펴본 저도 귀하께 순서대로 적어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는 귀하께서 배우신 것들이 진실임을 알게 해드리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시니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모든 지방에 퍼졌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모든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루카 1,1­4; 4,14-­21)

오늘부터 연중주일 복음은 루카 복음사가가 들려주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입니다. 저자는 복음서 첫머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목격한 사람들이 말씀의 종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데오필로스님이 이미 듣고 배운 것들이 진실임을 꼭 알게 해드리기 위해 이 글을 쓴다는 목적을 얘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처음부터 목격한 사람들은 말씀을 저자에게 전했고, 저자는 그 말씀을 우리에게 전합니다. 처음부터 목격한 사람들이 말씀의 종이 되었듯이 저자도 말씀의 종으로서 복음서를 집필하였습니다. 오늘의 복음을 대하는 우리도 예수님에 관해 이미 듣고 배운 것들이 많습니다. 저자는 우리에게도 그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확신을 가지고 믿으라고 합니다. 또한 우리도 말씀의 종이 되라고 초대합니다.

루카복음서에서 예수님의 공생활은 갈릴래아 전도로 시작합니다. 물론 그 이전에 예수께서는 세례를 받으셨고, 광야에서 사십일간 기도하며 준비를 하셨습니다. 두 사건 모두 성령께서 개입하셨지요. 세례 때는 비둘기 형상의 성령이 내리시어 ‘하느님의 사랑받는 아들임’을 체험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가득 찬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로 광야로 가셨습니다. 거기서 모든 유혹을 이겨낸 후 갈릴래아로 돌아가시는데, 이 또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가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모든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십니다. 역시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를 펼쳐 읽으십니다.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는 표현을 보면 의도적으로 이 부분을 읽으신 것 같습니다. 곧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시고 싶었던 거라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다’고 하십니다.

두루마리! 그것은 요한 묵시록에도 나옵니다.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 안팍으로 글이 적힌 두루마리 하나가 들려 있었는데, 그 두루마리는 일곱 번 봉인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루마리는 생명과 역사에 관한 하느님의 계획을 담고 있기에,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그것을 들여다보기에 합당하다고 인정된 자가 하나도 없어서 요한은 슬피 웁니다.

 

역사 속에 계시는 하느님의 계획을 알 수 없는 무력감 앞에서 공동체 또한 크게 상심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다 지파에서 난 사자요 승리한 다윗의 뿌리, 부활하신 예수인 어린양이 나오시어 어좌에 앉으신 분의 오른손에서 그 두루마리를 받으셨습니다. 그러자 하느님 백성과 천사와 모든 피조물들이 우렁찬 찬미가를 부릅니다.

 

그분이야말로 당신 죽음과 부활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실현하셨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손에 달려 있으며 만민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 이루어져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야말로 모든 자격을 지닌 역사의 주님이며 하느님과 같은 위치에 계시니 봉인을 뜯기에 합당한 분이라고 찬양합니다.

이사야서의 두루마리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과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는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은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현되는 곳이 하느님 나라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공생활 전부를 담은 말씀입니다.

그분은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억압받고 묶인 사람들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불치의 병에 묶여 허덕이는 자들을 고쳐주십니다. 오그라든 손을 펴주시고, 하혈병을 낫게 하시고, 중풍병자가 그의 침상을 들고 가게 하시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졌습니다.

 

그리고 죄와 죽음에 묶인 사람들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하시며 해방해 주시고 “라자로야, 일어나라” 하시면서 죽음의 그늘 밑 어두운 곳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셨습니다. 또한 뭇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던 창녀와 세리들이 기를 펴고 살도록, 사람 대접을 받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간음한 여인이 그렇고, 자캐오가 그렇고, 세리 마태오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가 되지 않았습니까?

 

눈은 몸의 등불이기에 “주님, 보게 하여주십시오!”라고 외치던 소경의 눈을 뜨게도 해주셨습니다. 결국 그분은 우는 사람들을 웃게 하셨습니다. 굶주린 자들을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셨습니다. 나아가 당신의 살과 피로 배불리십니다. 영육으로 먹여주십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영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메시아였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계신 곳은 주님의 은총의 날이요, 하느님의 나라가 그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빌론의 귀양살이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모여 말씀의 전례를 거행합니다. 아이들까지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모여 해뜰녘부터 해가 중천에 이르기까지 사제 에즈라가 하느님의 법전을 조목조목 들려주면서 깨칠 수 있도록 풀이하여 주면 무릎을 꿇은 채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면서 울었습니다. 사제 에즈라는 백성에게 이날은 거룩한 날이니 “울며 애통해하지 말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단술을 마시라”고 합니다. 말씀을 받아들인 그날은 잔칫날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께서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다”고 한 날은 얼마나 큰 잔칫날이 되어야 했겠습니까? 그러나 불행히도 예수님을 벼랑에 떨어뜨리려고 한 폭력의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교리나 성경을 통해 예수께서 구세주이심은 물론 그분만이 봉인된 두루마리를 펼쳐 읽을 수 있는 유일한 분임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서두의 말씀처럼 이미 알고 있는 이것을 확신있게 믿고 있는지, 또 믿고 있는 것을 선포하는 말씀의 종인지를 바로 오늘,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정 세라피아 수녀(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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