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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의 말씀가게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24 조회수644 추천수8 반대(0) 신고

 

 

<예수님의 말씀가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가르치셨다. 그렇게 가르치시면서 말씀하셨다.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씨 뿌리는 사람은 실상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어떤 이는 서른 배, 어떤 이는 예순 배, 어떤 이는 백배의 열매를 맺는다.”  (마르 4,1-20)



  요사이 가끔씩 제가 주크박스가 되어 버린 듯이 느낄 때가 있습니다. 동전만 넣으면 신청하는 노래가 흘러나오죠. 어떤 때는 가끔 고장이 나서 주먹으로 꽝하고 한 대 내려치기도 하지만 음반이 들어 있다면 거절하지 않고 다 토해 냅니다. 거기다가 각종 다양한 레퍼토리가 다 담겨 있어 처음 듣는 사람들은 그 기계 곁을 떠나지 않고 이 단추 저 단추 눌러 댑니다. 그러다가 곧 진짜 듣고 싶은 곡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발걸음을 돌립니다. 새 음반을 보충시켜주어야 하는데 주인이 바쁘고 게을러져서 새 음반을 갈아 주지 못했습니다. 또 저장용량에 한계가 있어서 찾지 않는 레퍼토리는 빼내 주어야 하는데 주인이 제가 좋아 한다고 미련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철지난 주크박스는 예수님의 가게에서 쫓겨나야 할 판입니다.


  그동안 성서 봉사를 하면서 어느 때 기쁨이 컸던가 하고 되 돌이켜보면 오히려 준비를 철저히 해갔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욕심이 많은 편이기 때문에 그날  공부할 내용보다 두 배 정도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도 어느 팀은 힘만 들고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저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다음 시간에 꼭 결석 인원이 생깁니다. 그러나 어느 팀은 재미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진행 됩니다. 아쉬움 속에서 시간을 마치면 다음 주에 결석하는 분들도 없습니다. 그런 팀원은 늦게라도 꼭 참석하십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차이가 묵상나누기에 있었습니다. 얼마나 빨리 서로 속마음을 터놓고 묵상을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봉사자가 성서 내용을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 보다 그룹원 끼리 친해지고 이해하려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요청 되었습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어느 해엔가는 시작한지 두 달도 안 되어 그룹이 해체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때는 정말 안타깝고 분했습니다. 내가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준비하고 봉사하는 데 몰라 주다니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는 한동안 저도 냉담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 신앙이 그만큼 약했다는 증거이었죠. 그러던 차에 주님께서 저를 부르시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흔히 한대 맞았다고 표현하듯이 저도 그랬습니다. 이제와서 되돌아보면 그 사건은 주님의 은총이었습니다.


  성서 공부를 시작하는 대부분 교우들이 ‘묵상 나누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고백성사를 떠올립니다. 묵상을 어려워하는 것이 무슨 큰 죄를 드러내야 하는 줄로 오해해서입니다. 그냥 성서를 읽고 문득 떠오른 것을 이야기 하면 되는데 그렇게들 어려워합니다. 경험이 없어서입니다. 심지어 성경을 깊이 읽어본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읽더라도 자기 생활과 비추어 읽는 연습을 해보지 않아서입니다.

  묵상은 먼저 성서 내용 속에 자신을 대입시켜 보는 것으로 시작 됩니다. 이야기 속 한 장면에 들어가 상상을 하는 것입니다. 환자가 되어 보고, 마귀 들린 사람이 되어보고, 율법학자 바리사이가 되어 보는 것입니다. 사도가 되기도 구경꾼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과 인물을 상상하여 본문 속으로 들어가 자문자답하는 것입니다.


  묵상나누기를 위해서는 술자리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술을 거의 못해서 술자리를 피했는데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이제는 적은 양이지만 술을 마십니다. 저부터 이런 저런 이야기를 꺼내고 또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묵상나누기를 잘 실천해보면 서로 고민하는 것들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가족들 간의 고민, 경제적 어려움, 버릇이 된 습관들 등등이 그렇습니다. 꼭 자기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간접경험으로 느낀 것을 말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 묵상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서로 얼마나 비슷하게 고민하고 고통 받는지 알게 되고, 그런 공감을 통해서 묘한 위로를 받게 됩니다. 그때 커다란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그야말로 기쁨과 슬픔이 나눌수록 더 기뻐지고 위로 받는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이 두 대목은 정말 잘 삭여 들어야할 구절입니다.


  성서학자들은 이 구절을 “무디게 만듦”이라는 명칭으로 설명합니다. 원래 독립된 말씀구절로 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전체 삶과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탄식하시는 말씀입니다. 굳이 이 대목에 국한하여 이해하면 그 의미가 축소됩니다. 이 ‘씨앗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설교 전체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선포가 오직 믿는 이들에게만 이해될 수 있고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수수께끼인 채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말씀을 지금 우리들도 깊이 새겨들어야 합니다. 세례를 받고 입교했지만, 바로 냉담하는 교우들이 나오는 현실은 위 말씀의 실질적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도래한 기쁨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가 성서를 읽고 나누는 묵상입니다. 혼자서 하는 것보다 작은 그룹에서 경험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듣는 귀를 만드는 것입니다. 묵상 내용이 비슷하기도 하지만 또 나름대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극도 되고 힘도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천년 전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 말씀 가게에서는 열매는 팔지 않고 씨앗만 판다.”는 멋진 말이 있습니다. 그 의미는 씨앗처럼 새로운 가능성을 담고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열매를 맺을지 모른다는 뜻입니다. 또 싹을 틔우도록 밭에 심고, 물 주어 가꾸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작으나마 우리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 일이 바로 묵상 나누기를 통해서 온다는 것을 저는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교우 여러분도 시간이 부족하고 어려우시더라도 이런 경험을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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