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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미사 지내줄 영혼이 또 한 명 늘었네"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26 조회수881 추천수11 반대(0) 신고
                     "연미사 지내줄 영혼이 또 한 명 늘었네" 
                      천주교 신자인 나, 발인예배 내내 ‘연옥’을 생각하다
     



큰처남 댁 54세 나이로 세상을 뜨다

근래 들어 '범(範)가족' 중에 세상을 떠난 이들이 벌써 여럿이다. 친족 중에서는 2003년에 당질 한 사람이 서른여섯 젊은 나이에 병을 얻어 세상을 뜨더니, 2004년에는 숙부께서 노환으로 별세하셨고, 2005년에는 가운데 제수씨가 서른아홉 나이에 뇌혈관 기형 뇌출혈로 인해 세상을 떴다.(그리고 50대 후반인 사촌동생 한 명은 고혈압 뇌출혈로 쓰러져서 지금 두 달이 지나도록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처가 쪽을 보면 2003년에 장모님이, 2005년에는 처조모께서, 2006년에는 처고모부 한 분이 별세하셨는데, 최근에는 큰처남 댁이 54세 한창 나이로 병고를 겪다가 세상을 떴다.

숙부님과 장모님, 처조모와 처고모부 별세는 세월 탓으로 돌릴 수 있는 경우지만, 그 외는 모두 세월과 상관없는 너무도 이른 죽음이어서 안타까운 마음 한량없다. 그것을 보면 태어나는 것이야 순서가 있지만 세상 떠나는 것은 차례가 없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주변의 애사(哀事)에 문상을 갈 적마다 호상(好喪)인지, 애상(哀喪)인지에 관심을 갖는다. 세상 떠난 이가 노인일 경우엔 상주에게 망인의 연세를 묻기도 한다. 망인의 연세가 높을수록 호상의 범주에 들 가능성은 커지지만, 망인의 연세와 상관없이 이런저런 이유로 결코 호상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내 삶 안에도 죽음은 늘 존재한다. 문상을 가는 일은 '항다반사(恒茶飯事)'이니, 사실은 죽음과 더불어 사는 셈이다. 문상을 가서는 호상이든 애상이든 '잔치'에도 기꺼이 참여하여, 산 이들이 잔치를 하며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우리 문화의 묘미를 새삼스럽게 되새겨보기도 한다. 그러며 내 차례는 언제일까, 나는 과연 호상의 잔치를 벌이게 될까 애상의 잔치를 벌이게 될까, 이런저런 생각에 절로 숙연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더 깊이 생각하는 것은 내 영혼의 '행처(行處)'다. 호상과 애상의 의미는 죽은 이에게 더 중요한 문제임을 깨닫곤 한다. 산 이들에게는 호상이 죽은 이의 영혼에게는 애상이 될 수도 있고, 산 이들에게는 애상이 죽은 이의 영혼에게는 호상이 될 수도 있음을 늘 생각한다. 산 이들에게도 호상이요 죽은 이에게도 호상이라면, 그것이야말로 금상첨화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감히 그것을 소망하는 기도를 한다.


개신교와 천주교 장례의 차이 속 '죽음'을 생각하다

지난 23-24일 대전에 가서 큰처남 댁의 장례를 치르고 왔다. 우리 부부는 큰처남 댁의 부음을 듣는 순간 지난 10일 큰처남 댁을 문병하고 온 사실을 상기하며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20주년 결혼기념일에 우리 부부는 인근 선친의 묘소와 보령시 청라면의 장모님 묘소를 들른 다음 대전으로 가서 큰처남 집을 방문했던 것이다.

우리 부부가 문병을 할 때 큰처남 댁은 얼굴이 전체적으로 크게 부어올라 말은 하지 못했지만 청각은 온전한 듯했고 어느 정도 의사 표시를 할 수 있었다. 그때로부터 열흘 후에 혼수상태에 빠져들어 뇌사 상태로 있다가 운명을 했다는 것이다.

아들만 셋을 두었고(지난해 가을 막내아들을 서둘러 결혼시켰지만) 딸이 없으니, 거의 곡이 없는 장례였다. 또 큰처남 가족 모두 개신교 신자이므로 문상객들 상당수는 고인에게 절을 하지 않는 이들이었다.

나는 곡도 없고 고인에게 절을 하지 않는 문상객들이 태반인 빈소가 너무 쓸쓸하게 보여서 우리 부부만이라도 천주교의 연도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으나, 생전에 천주교에 대한 '적의'도 꽤 많이 지니고 살았던 고인을 생각하니 쉽게 실행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24일 오전의 '발인예배'에는 기꺼이 참례했다. 가족들의 맨 앞에 서서 우리 부부는 발인예배의 시작기도 전과 끝 기도 후에 성호를 그었다. 우리 부부의 성호 긋는 모습을 목사님과 여러 교인들이 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오랜 시간 줄곧 큰처남 댁의 영혼을 위해 묵주기도를 했기 때문에 손에는 묵주도 들고 있어서, 교인들이 내 손의 묵주를 보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개신교의 발인예배에 기꺼이 참례하여 함께 기도하는 천주교 신자 부부의 모습을 모든 교인들이 좋게 보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과거 개신교 신자였던 아내는 목사님의 기도 사이사이에 교인들과 함께 "아멘"이라는 응답을 잘하고 찬송가도 능숙하게 불렀지만, 나는 찬송가의 1절을 잘 귀담아 들었다가 2절부터 조심스럽게 따라 부르곤 했다.

그러며 나는 연옥 교리가 없는 개신교 신앙의 속내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목사님의 모든 기도도, 설교도, 찬송가들도 한가지로 내 큰처남 댁이 하나님을 믿어 천국에 들었음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내용이었다.

큰처남 댁은 참으로 열심히 교회를 섬겨온 사람이었다. 1986년에 등록을 하고 92년에 집사가 되고 98년에 권사가 되었다고 했다. 권사가 된 후로 '기도은사'를 받아 무시로 수없이 기도 봉사를 다녔다.

그런 신앙생활만을 놓고 보면 큰처남 댁은 당연히 천국에 가고도 남을 터였다. 그리고 목사님과 교인들은 고인의 그런 신앙생활만을 보고 고인이 천국에 들었음을 믿으며 하나님께 감사할 터였다.

목사님과 교인들은 고인의 신앙생활만을 볼 수 있을 뿐이지 집안 가족들 사이 얽히고설킨 문제들, 이런저런 사연과 곡절들은 전혀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은 알지 못해도 하느님은 다 아신다는 것에 이 세상 사람 모두가 해당된다.

천주교 신자인 나로서는 발인예배 내내 '연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국에 가기가 그렇게 쉬울까? 믿음만으로 천국에 간다면 그 믿음 자체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천국에 가기가 그렇게 쉽다면 순교자들은 왜 참혹한 고통 속에서 순교를 하며, 예수님을 닮으려는 공덕들이 무슨 필요가 있는 것일까?

발인예배 후에 우리 부부는 화장터까지는 따라가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감기를 앓으시는 노친네를 생각하니 한시가 급한 탓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큰처남 댁의 영혼이 연옥에서 오래 '정화'를 겪어야 할 것 같은데, 큰처남 댁의 영혼을 위해 미사를 지내고 기도를 해줄 사람은 우리밖에 없군. 우리가 위령미사를 지내주고 기도해 줄 연옥 영혼이 또 하나 늘었어."

"그런데 왜 한숨을 쉬세요?"
"내가 큰처남 댁을 위해 위령미사를 지내주고 기도해주는 일이 부담스러워서는 아니야. 그런 일을 함께 할 천주교 신자가 우리 처가 쪽에는 하나도 없는 것이 섭섭해서, 괜히 한숨이 나오는군. 어떻게 살든 그저 하나님만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뿐이고, 도대체 하나님을 왜 믿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으니…."

아내도 한숨을 내쉬었다. 지혜롭지 못한 처사로 딸들과는 상의 한마디 없이 적지 않은 재산을 두 아들에게만 몽땅 나누어주고서는 별로 행복하지 못하게 말년을 사시는 홀로 되신 노친 생각이며, 시동생 내외와 끝내 화해하지 못하고 세상을 뜬 올케 생각이며, 난분분한 친정 사정으로 말미암아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을 터였다.  


 2007-01-2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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