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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4주일] 마땅히 지켜야할 변치않는 권위(이기양 신부님)
작성자전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27 조회수659 추천수1 반대(0) 신고

   교구 사제의 인사에는 지켜지는 원칙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출신지 본당으로는 보내지 않는 것입니다. 성당 사정도 잘 알고 많은 신자들과도 친분이 있어서 출신지 성당이 사목을 하기에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반대이지요.
   좋은 시절에는 누구나 잘합니다. 그런데 신자들과 사목자간에 의견이 대립되고 갈등이 빚어질 때 인간적으로 너무나 잘 아는 바로 그 점이 장애요소로 작용합니다. 사목자로서의 전문적인 안목과 고민을 거듭한 숙고에 의해 결정된 사항도 인간적인 경험과 친분이 걸림돌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출신지 본당으로는 사제를 발령하지 않는 원칙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부들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겪었던 일 같습니다.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디에서나 환영을 받았고 그 권위에 사람들은 감탄하여 마지않았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금의환향하듯이 오랜만에 고향 나자렛을 찾으셨습니다. 회당에서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4,21)하고 말씀하시자 사람들은 예수님의 그 권위 있는 말씀에 탄복을 하면서도 수군거리기 시작합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루카4,22)
   나자렛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보고자란 목수의 아들 예수라는 청년의 가르침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무학대사의 말처럼 속된 사람들의 눈엔 구원자 예수님에게서도 그저 인간 예수만이 보일 뿐입니다. 고향 사람들의 이런 배타적인 행동을 보시고“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루카4,24)고 말씀하시며 예수님께서는 고향에서 발길을 돌리시지요.


   그런데 이러한 일들은 예수님 시대나 사제의 출신지 본당에만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많은 성당에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제와 수녀는 인간적인 능력에 의해서 그 직분을 얻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르심이 계셨기에 지금의 그 자리에 있게 된 것인데도 말입니다.

   오늘 제 1독서 예레미야서는“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예레1,5)고 말씀합니다. 하느님께서 예레미야 예언자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뽑아 세우셨다는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성직자와 수도자는 스스로 되고 싶다고 해서 또 출중하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르심이 있고, 또 그 부르심에 모든 것을 다 놓고 응답했을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제는 개인의 능력이나 판단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과 은총으로 살아갑니다. 인간이면서 하느님의 사람으로서의 삶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성직자와 수도자인 것이지요.
  
   흔히 우리시대를 권위부재의 시대라고 이야기합니다. 오랜 독재 정권 시절을 겪은 사람들은 그 후유증으로 권위 자체에 거부감을 표시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권위는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장의 권위가 없으면 그 가정은 흔들리고 집안이 무너집니다. 선생님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면 교육이 바로 될 수가 없습니다. 의사선생님의 권위를 환자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병의 치료는 어렵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권위를 국민들이 우습게 안다면 나라는 혼란에 빠지고 맙니다. 권위는 반드시 지켜지고 존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켜지고 존중되어야 할 권위를 마땅히 보여주어야 할 사람이 권위자 자신임은 물론입니다.


   성당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직자와 수도자의 권위가 없는 성당은 신자들이 불행합니다. 물론 성직자의 권위는 복음적인 삶에서 비롯되어야 하지요. 참으로 좋은 공동체는 신자들이 성직자와 수도자를 하느님의 사람으로 알고 믿으며 그 이야기 한 마디 한 마디를 깊은 뜻으로 마음에 담아 실천하려고 노력할 때 이루어집니다. 그 때 신자들은 행복하고 성직자와 수도자들 또한 그런 신자들의 기도와 믿음 속에 성화되어 더욱 신자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이런 공동체를 우리는 복음적인 공동체라고 이야기하고 바로 이런 공동체 안에서 기적은 이루어집니다. 인간적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볼 수 있는 지혜로운 눈이 그들에게 있었다면 나자렛에는 하느님의 은총이 흘러 넘쳤을 것입니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사셨던 축복된 나자렛이었지만 속된 경험과 편견 때문에 길이 지속될 은총을 잃고 말았습니다. 세상 어떤 것 안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읽을 줄 아는 믿음과 혜안을 잃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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