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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서에 나오는 기적 이야기를 어떻게 읽을까?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27 조회수572 추천수1 반대(0) 신고

 

 

<복음서에 나오는 기적 이야기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마르 35-41)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기적들을 크게 나누면 ‘치유구마기적’과 ‘자연기적’이 있습니다. 이 중에 ‘치유구마기적’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분명하다고 인정됩니다. 생전에 예수님이 ‘귀신 쫓는 사람’으로 알려졌고 예수님의 적대자들도 그 사실을 인정하였습니다.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루카 11,15 마르 3,22)


  그런데 일부 신약학자들은 ‘자연기적’ 이야기를 그 사실성 보다 의미에 주안점을 두고 해석해야한다고 설명합니다. 기적 이야기들이 구약에 나오는 내용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을 들어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구약에 나오는 예언자들이 이룬 것을 모두 실행하시고 그들보다 더 뛰어난 분이시라고 강조하기 위해서 적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하느님과 같으신 분이며, 요나, 모세, 엘리야, 엘리사 등등 예언자들보다 월등하시다고 밝히려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루카 11,29-30)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마태 12,41. 루카 11,32)


  오늘 복음부분도 요나서 1장의 내용을 비슷하게 따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슷한 점은 배가 바람에 위험하게 되었다는 것과 요나가 배 밑창에서 잠들었다는 것, 배의 선장이 하느님께 빌어달라고 요청한 점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차이가 나는 점은 요나는 주님의 말씀을 피하여 타르시스로 가는 배에 오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바다위에 큰바람을 일으키셨습니다. 뱃사람들이 제비를 뽑아 누구 때문에 재앙이 닥쳤는지 알고자 하였고, 요나가 뽑혔습니다. 그리고 요나가 주님으로부터 도망친다는 자초지종을 알게 된 뱃사람들이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당신은 어째서 이런 일을 하였소?”하고 꾸짖습니다. 요나는 자신을 희생하여 바다에 던지라고 하나 뱃사람들은 죄를 짓기 싫어 배를 저어 빠져나오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불가능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요나를 들어 던지자 바다가 잔잔해 졌습니다. 뱃사람들은 주님을 두려워하여 희생제물을 바치고 서원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자연기적 이야기는 많이 있습니다. ‘빵을 많게 하는 기적’, ‘죽은 라자로를 살리는 기적’, ‘물로 술을 만드는 기적’, ‘물위를 걸으시는 기적’ 등등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기적을 단순히 사실적의미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복음서에서 특히 이런 자연기적 이야기를 여러 개 실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실을 의미 있게 받아들여야합니다. 요한복음서 6장 “생명의 빵”에 관한 담화에서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 이 말씀에 군중들은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라고 하였고,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요한저자는 아주 확실하게 이점을 강조합니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요한 6,65-69)


  즉 요한복음서에서 저자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베푸신 자연기적들을 “성사”적 의미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자세는 이렇습니다. 일부 성서학자들이 학문적 수준에서 말한 것은 학문적 의미로 배우면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며 사는 신앙인의 자세로는 복음서에 나오는 내용을 성사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부 개신교학자들이 주장하는 근본주의적인 해석과 자유주의적 해석으로부터 벗어나 우리의 신앙을 지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성사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시고 교회에 맡긴 ‘은총의 표징’들로, 감각적인 상징을 통해 효율적인 은총을 낳게 한다. 일생에는 여러 중대한 계기가 있듯이, 신앙생활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그때마다 거룩하게 되고, 하느님의 은총을 풍부히 받는 의식이 거행되는데, 이 의식들을 성사(聖事)라고 한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행위이며, 우리 안에 그리스도로 하여금 살게 하고 활동하게 하는 거룩한 은총의 표시(表示)이다. 성 토마스에 의하면 그 표시는 은총의 샘이신 그리스도의 수난을 나타내고, 우리를 십자가와 연결시키며, 십자가의 공로를 받게 한다. 이 성사에는 일곱 가지가 있다. 즉 세례, 견진, 성체, 고백, 혼인, 신품, 병자 성사가 그것이다.  - 가톨릭 사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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