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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무덤에서 나와'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28 조회수608 추천수5 반대(0) 신고

<무덤에서 나와>(5, 1- 20)

 

 "그들은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호수 게라사 지방으로 가셨다. 그곳은 이방인의 지역으로서 예수님과는 아무 상관없이 생활하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다. 예수님과 아무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이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가를 오늘 복음에서는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의 모습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보여 주신다. 오늘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통해서 지금 우리의 삶이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를 깨우쳐 주신다.
 
 오늘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살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살았던 무덤의 의미를 묵상하자.

 

그리스어로 무덤을 "므네메이온"(munemeion)이라 하고 라틴어로는 "모뉴멘뚬"(monumentum)이라고 하는데 "기념비, 기념관, 무덤, 묘비, 유적"이라는 뜻으로서 죽음과 같은 어원을 갖고 있다. 한 마디로 무덤은 산 사람이 거처하는 곳이 아닌 죽은 이의 시체를 모셔 두거나 죽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건물이다. 공동묘지에 가면 적막과 스산함, 고독과 쓸쓸함이 무겁게 짓누르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어디에선가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올 것 같은 공포감이 맴돈다. 생명의 상징인 활동력과 싱싱함 그리고 기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죽음의 그늘만이 지배하는 곳이다. 무덤에서 살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공동묘지의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 마음에 생명이신 주님을 모시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면 아무리 겉은 번지르하고 기름기가 흐르고 건강미가 넘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무덤에서 사는 것과 같다.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을  "회칠한 무덤 같다."(마태 23,27-28)라고 말씀하셨다. 아무리 넓고 좋은 집에서 온갖 비싼 고급 가구로 장식해 놓았다 하더라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성령의 열매인 사랑, 용서, 기쁨, 친절, 웃음이 없고 대신 더러운 영인 더럽고 불순하고 음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고, 그래서 매일 미움, 싸움, 질투, 분노, 시기, 무관심 등으로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다면 그곳은 무덤에서 사는 것과 같다. 살아 있지만 살아 있다고 할 수 없고 이미 죽어서 들어가는 무덤의 삶을 미리 앞당겨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죽지 못해 산다."라는 말을 듣는다. 살아있지만 산다고 말할 수 없는 무덤의 삶이다. 폭력이 난무하여 늘 공포 속에 살아야 하는 가정, 알콜 중독으로 가족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가정, 아이들이 학교에서 집에 돌아와도 아무도 반겨 줄 사람이 없는 쓸쓸함과 외로움이 가득 찬 가정, 서로의 미움 때문에 찬 바람이 쌩쌩 도는 공동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공동체, 그래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공동체에서의 삶은 무덤에서의 삶이다. 그것은 가정일 수도 있고, 수도 공동체 일 수도 있고, 직장일 수도 있다. 우리 주위에는 이런 무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의 삶, 무덤의 삶을 사는 사람의 행동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그리고 하느님을 떠난 인간,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인간의 추악한 모습은 어떤 모습으로까지 타락할 수 있는가를 오늘 복음에서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런 삶을 사는 이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알콜 중독자, 마약 복용자, 음란 쾌락에 빠져있는 자, 중독성 도박, 음주 운전, 광란의 질주, 사기, 성 매매, 폭력 등 우리 사회를 불안에 떨게 하고 주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과 같은 삶을 사는 이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우리 사회는 어쩌면 거대한 무덤과도 같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가고 있는 음란성 영화와 잡지, 비디오, 성인용 영화, 도박, 오락성 컴퓨터 등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확산되고 있는 현실이다. 더군다나 오늘날 3 명 중 한 명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신문 보도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가를 말해 준다.

 

 거대한 무덤과도 같은 이 사회를 다시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겨자씨와 같은 예수님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런 어지러운 사회에서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이미 많은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아마도 더러운 영에 사로잡혀 살았던 우리들이 그런 것들을 버리고 말씀으로 거듭 태어난 삶을 살려면 오늘 복음에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한 바탕 소란을 피웠던 것처럼 우리 안에서도 엄청난 요동이 일어날 것이고 그로 인해 한 동안은 몸살을 앓아야 할 것이다.

 

 그 동안 신바람 나게 다니던 사람이 제정신으로 조용히 앉아서 말씀을 묵상하려면 온몸이 쑤시고 근질근질 할 것이고 정신은 계속 산만하고 이 사람 저 사람이 생각나고 괜한 걱정이 들기 시작할 것이다. 어떻든 더러운 영들은 조용히 앉아서 복음을 묵상하도록 우리를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자기만 손해 보는 것 같고 바보가 되어 가는 것 같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 같고, 친하게 지냈던 모든 사람들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것이다. 아무튼 무덤의 삶을 버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리라.

 

누가 무덤에서 죽은 이의 삶을 사는 이들을 생명의 삶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오늘 복음에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치유되었듯이 나도 그리고 우리 가족들도 모두 더러운 영에서 해방되어 제 정신으로 돌아와 주님 앞에 앉아서 말씀을 묵상하고 주님께서 나에게 해주신 일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을까? 

 

오늘 아침 성무일도의 기도 중에 "나는 낮선 길 가는 소경의 손을 잡아 주고, 가본 적 없는 오솔길을 살펴 주어, 캄캄하던 앞길을 환히 트이게 하리라. 험한 길은 탄탄대로가 되게 하리라. 나는 이 일을 이루고야 말리라. 결코 중단하지 아니하리라." 우상들을 의지하는 자들은 꼬리를 감추고, 부어 만든 형상을 보고 "당신들이 우리의 신이다."하는 자들은 크게 부끄러움을 당하리라.(이사42, 16-17)는 말씀이 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치유시켜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을 만나는 것 뿐이며 그분을 만날 수 있는 곳은 복음 뿐이다. 복음을 따라 가노라면 나도 모르게 무덤에서 나와 생명의 길을 거닐게 되리라. 

 

                                                   -유광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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