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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월 29일 야곱의 우물- 마르 5, 1-20 묵상/ '귀신들린' 오늘의 현실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29 조회수547 추천수3 반대(0) 신고

`귀신들린` 오늘의 현실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둘 수가 없었다.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큰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 기르는 많은 돼지떼가 있었다.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주십사고 청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마르 5,1-­20)

◆‘어디에 사는지, 무엇을 하는지, 실제로 본 사람이 있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누구나 한두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마귀’ 또는 동양식 버전인 ‘귀신’이다. 우선 흥미로운 것은 성경에는 대부분 ‘귀신’보다는 ‘귀신들린 상태’ 또는 ‘더러운 영’ 등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자신의 의지대로 통제되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곧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악한 세력의 총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귀신을 우리는 가끔 세상에서 본다. 지난번 탄핵사태가 났을 때 나는 사람들이 ‘귀신에 홀리지 않고서야’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총선을 치르고 보니까 그런 생각은 나 혼자 한 것이 아니라 국민 대부분이 한 생각이었다. 그런데도 그 똑똑한 국회의원들이, 학자들이, 언론들이 입에 거품을 품고 달려들어 요절을 낼 것처럼 법석을 떨었다. 그리고 그 사태가 끝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조용해졌다. ‘미쳤다’는 말까지는 쓰지 못하겠지만 분명 제정신은 아니었다. 무엇에 홀렸을까? 지역주의·당리당략·개인의 이해관계? 하여간 무엇에 홀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 핵문제나 작전권 문제도 그렇고, 부동산 투기 문제도 그렇다. 지금도 방방곡곡에 나붙는 아무개 아들 고시합격이라는 현수막도 그렇다. 같은 물건이라도 백화점에 높은 가격을 매겨놓은 상품이 더 잘 팔린다는 세태도 그렇다. 우리는 혹시 있지도 않은 귀신에 홀려, 누군가 만들어 낸 귀신에 홀려 이렇게 광란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닐까?

 

몇백만 원 한다는 핸드백을 그대로 위조하여 만들어 낸 사람이 붙잡혔다. 그 사람은 한 개에 삼천 원씩 받고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품을 만든 회사도 그 모조품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다고 한다. 미안하지만 나는 조금 유쾌했다. 때로는 귀신에 홀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귀신이 곡할 노릇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있는 모양이다.

최연석 목사(전남 여수시 중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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