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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 복음묵상] 세상의 죄=우리의 죄 l 이찬홍 야고보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29 조회수608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7년 1월 29일 연중 제4주간 월요일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르5,7-8)

 

"What do you want with me, Jesus,

son of the Most High God?

For God's sake I beg you, do not torment me."

He said this because Jesus had commanded,

"Come out of the man, evil spirit."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영에 사로잡혀 무덤과 산에서 살아온 불쌍한 사람을 치유하신다. 더러운 영들은 예수님의 권능을 알아보고 대적하지 못한 채 물러가고 만다


 ☆☆☆

 

                   세상의 죄=우리의 죄


   신앙생활을 하며 듣는 여러 단어 중 죄고백은 우리를 늘 부담스럽게 합니다.  교회는 특히, 사순 시기나, 대림 시기에 자주 이 단어를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가 죄와 죄의식을 너무 강조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부담과 거부감을 갖기 이전에 죄와 죄의식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먼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죄의식에는 건전한 죄의식과 불건전한 죄의식이 있습니다.


   건건한 죄의식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집중되어 하느님의 사랑을 저버린 것에 대한 죄송한 마음에, “하느님 잘못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허물입니다. 이제, 당신께 드리니, 다시금 새롭게 시작하도록 도와주소서.” 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죄와 허물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여러분께 권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올바른 양심성찰이요, 자신의 허물과 악습을 이겨내려는 노력입니다. 그런데, 불건전한 죄의식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보다는 자신의 죄 그 자체에 머뭅니다.


   ‘어떻게 내가 이런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가?’ 하고 자책하며 자신을 옭아매어 힘들게 합니다. 또한 자신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마치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자신에게 할 비난을 상대방에게 투영시켜 비난하고 단죄하며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여러 이유로 정당화합니다.


   이처럼 자기 스스로 자기 안에 갇혀 하느님의 사랑과 이웃의 화해를 거부하며 ‘남의 탓이다.’ ‘세상 탓’ 등의 이유를 대다가 결국 유다처럼 자신 안에 철저하게 갇혀, 심한 불안감과 자괴감에 하느님과 멀어지게 되고, 결국에는 하느님을 두 번 배신하는 행위를 하게 됩니다. 이것이 불건전한 죄의식입니다.


   건건한 죄의식은 예수님을 배신한 죄책감에서 극복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다의 마음이 아닌, 다시금 예수님께 돌아와 용서를 청한 베드로의 마음을 심어 줍니다. 죄 체험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깨닫게 되며 하느님 안에 더욱 굳세어지게 됩니다.


   죄 체험은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더욱 굳세게 하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받아들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디딤돌이 된다고 믿기에, 교회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죄와 죄의식에 대해 언급하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서두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오늘은 개인적인 죄가 아니라, 사회의 죄 곧 세상의 죄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복음에 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오신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역시 매 미사 때마다 성체를 모시기 전에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세상의 죄!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세상이 선하게 창조되었기에, 좋은 곳임을…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곳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종종 ‘세상이 악하다.’

‘세상에 죄가 많고 우리를 유혹하며 죄로 이끈다.’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세상 자체가 악하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세속, 곧 세속주의의 구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백하고, 요한이 알려주는 “세상의 죄”는 바로 세속주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속주의는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곧 세상을 하느님화 시켜 우상숭배하게 하는 주의 입니다. 이런 세속주의는 여러 모습으로… 환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달콤한 유혹의 손길을 뻗치지만, 그 중에서 우리 삶 안에 깊숙이 들어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영적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 무엇일까 묵상해 보았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에이, 이쯤이야! 나 하나쯤이야!’ 라는 안일한 생각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생각은 오늘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상 창조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쉽고도, 자연스럽게 사람의 마음에… 삶 안에 함께하여 사람의 그릇된 행동을…  잘못을 합리화시킨 것입니다.


   이 말이 또 다른 씨가 되어 온 세상에 퍼져 더욱 세상을 병들게 하고 죄의 증식을 초래했는지 모릅니다.


  ‘나 하나쯤이야!’ 라는 말은 자신이 힘이… 잘못이 이 세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또한 있으나마나한 존재이기에 한 말입니다. 실제 이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계의 모든 사람이 ‘에이 나 하나쯤이야!’ 라고 말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하나가 바로 60억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나 하나쯤이야!’ 라는 말에서 죄의 연대성을 찾을 수 있듯이, 세속주의는 바로 나의, 우리의 죄 안에서 기인합니다. 우리의 죄가 바로 세상의 죄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자신이 먼저 변해야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때문에, 세상의 죄를 없애달라고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께 청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죄, 우리의 죄를 먼저 없애 달라고 청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 외에도 세상의 죄는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죄들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사람의 욕심에 의한 것임을…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세상의 죄는 우리의 죄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분명, 세상이 있어 내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내가 있어서 세상 또한 존재하는 것입니다.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하고, 내가 죄를 피해야 세상 또한 적어도 나에게 해당 되는 그 만큼의 죄를 피하게 된다는 마음으로 우리 함께 생활해 봅시다. 그러한 모습 속에서 우리는 늘 우리에게 오시어 함께 살아가려는 예수님을 알아 뵙고 우리 역시 요한처럼 예수님을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죄, 곧 나의 죄와 우리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오십니다.” 아멘.


                 ♣ 제주교구 표선성당 이찬홍 야고보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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