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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29 조회수622 추천수2 반대(0) 신고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 마르 5,1-20.


  세 공관 복음서에 모두 나오는 ‘게라사의 악령 들린 사람 이야기’ 대목입니다. 이 부분의 말씀을 그저 단순히 구마 사화로 여기기엔 부족합니다. 뒷부분에 따라오는 이야기 안에 깊이 묵상할 내용이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악령에게 이름을 묻습니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상대를 다스린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러기에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했습니다. 이에 악령이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여기서 군대는 ‘legion’의 번역인데 ‘군대, 집단 세력’을 뜻합니다. 로마 일 개 군단이 6826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보통 사람보다 힘이 세어 족쇄와 쇠사슬도 끊고 몹쓸 짓을 많이 했습니다. 사람들이 마음 놓고 그 앞을 지나다니지 못했습니다.

  악의 세력은 본시 개별적으로는 힘이 약해 집단으로 우르르 몰려다닙니다. 그래서 시편 1편에서도 악인들과 죄인들이라고 복수형으로 썼고 의인은 단수형으로 썼습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집단 이기주의를 말하는 것 아닌가 합니다. 이 집단 이기주의는 법과 도덕이라는 사슬을 아무렇게나 끊고 제 멋대로 행동합니다. 그리고 조그만 충격에도 불과 같이 일어나 걷잡을 수 없이 변하고 맙니다. 어떤 때는 사람의 생명까지도 앗아가게 합니다. 그리고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익명성이라는 덫을 이용합니다.


  그런데 복음서에서 말하는 악령은 두 가지 점에서 더 교묘합니다. 그놈은 한 사람에게 들어가 숨어서 활동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괴롭혀 왔습니다. 무언가 示唆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드러나지 않은 집단 이기주의가 더 무섭습니다. 지도층의 이기주의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정치 세력의 집단 이기주의는 그 폐해가 큽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맡기시어 백성을 잘 다스리라는 사명을 제 식구들의 이익을 위하여 묵살하곤 합니다. 본말이 전도되어 조직을 위하여 일하지,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습니다. 거기에다가 사람들을 괴롭히기까지 합니다. 이런 집단일수록 제 식구 챙기기에 열심입니다. 집단에 속한 사람들끼리만 이익을 나눕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새겨야 하겠습니다.


  노자 58편에  “기정민민 기민순순(其政悶悶 其民淳淳)” 이라는 말이 꼭 여기에 들어맞습니다. “다스리는 사람은 하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듯 조심하고 쩔쩔 매야 그 백성이 밝아진다.”는 말입니다. 매사에 하느님의 뜻을 잃을까 전전긍긍 하는 모습을 ‘悶悶’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두 번째로 이 악령은 하느님의 이름을 들먹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하니.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런 집단은 자기들이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할 권한이 있다고 우깁니다. 하느님의 뜻을 자신들이 알고 있다고 자랑합니다. 그리고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다른 이들을 단죄하려 듭니다.

  구약의 역사를 살펴보면 집단들이 하느님의 뜻을 독점하려 할 때 백성들에게 어려움이 닥쳐왔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뜻이 제 집단을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못합니다. 물론 처음엔 하느님의 뜻대로 잘 따랐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 하느님의 뜻을 살피는 노력을 게을리 하고 말았습니다. 예언자의 목소리를 듣기 귀찮아하고 묵살했습니다.

  그 집단 세력의 오만을 깨부수시는 것은 단 한분 예수님의 성령뿐입니다. 거룩한 성령만이 집단 이기주의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을 이 부분이 강조하는 점입니다.

  

  또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그 악령들이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아 주십니다. 더러움의 상징인 돼지 속으로 제 갈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령들은 호수에 빠져 죽습니다.

  눈앞의 이익만을 쫒던 돼지 키우는 사람들도 그와 동시에 큰 손해를 보고 맙니다. 

  그들은 성령으로 거듭 날 기회를 알아보지 못하고 예수님을 자기네 땅에서 떠나시게 합니다. 악령을 이기는 성령을 깨닫지 못하고 눈앞의 손해를 더 크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더러운 것과 타협해 살아가는 자신들의 죄까지도 들통 날까 두려워했겠지요.


  우리도 항상 종교 세력화 하려는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종교 개혁 시기에 나온 칼빈주의자들은 처음의 숭고한 이상을 가지고 출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정신을 곧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평의회’의 결정이라 하여 많은 사람들을 처형하는 누를 범 했습니다.

  염소가 우는 모습을 보고 “염소가 아름다운 시편을 읊는다.”고 시적으로 표현한 것을 가지고 거룩한 성경을 더렵혔다고 3 개월 추방령을 당했습니다. 목사의 설교를 듣다가 웃었다고 3 개월 간 감옥살이 당했습니다. 춤을 추었다고 처벌당했고, 부모를 때린 소녀가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교회의 이름으로 거리낌 없이 행했던 참담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 외에도 과거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마녀사냥과 같이 하느님의 뜻이라 하여 집단 폭력을 휘두른 경우가 비일비재 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사악함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집단 세력이 저지르는 악마성을 고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 부분이 말하는 본래의 의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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