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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보시니 참 좋았다!
작성자황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29 조회수1,026 추천수15 반대(0) 신고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들짐승을 제 종류대로,
집짐승을 제 종류대로,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온갖 것을
제 종류대로 만드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 창세기 1, 25 >

 

 

가난한 화가였던 월트 디즈니를

일약 억만장자의 부자로 만들어 준 미키 마우스 캐릭터!
어른인 제게 아직도 꿈과 사랑 그리고 유머를 안겨주는
볼수록 깜찍하고 귀여운 친구지요.
그런데 미키 마우스의 원형인 "생쥐"는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호감을 느끼기엔

'너무 머언 그대'네요.*^^*

 

 

쥐나 뱀 그리고 박쥐 등은 우리 인간들에게

비호감형 동물들인데, 박쥐를 연구하시는

박쥐 박사 말에 의하면, 박쥐에 대한 나쁜 이미지는

인간들이 마음대로 만들어낸 이미지이지
박쥐 자체가 혐오스럽지는 않다고 하시더군요.
즉 인간들이 만들어낸 상상에 의해

오히려 박쥐가 피해를 보았다고나 할까요?

 

 

어릴 때 전 한옥에서 자랐기 때문에 집쥐들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어린 저에게도

사람 눈을 피해 도망 다니고, 음식물이 있는 곳엔

어디든지 마구 뒤지고 다니는 쥐들의 속성이
별로 예뻐 보이지는 않았지만
결정적으로 제가 쥐를 싫어하게 된 이유가 있었지요.

 

 

제가 중학교 때 친척이 데려다 준 누렁이(똥개)를

키운 적이 있었답니다.
마당과의 높이가 그리 높지 않은 마루에

끈을 매달아 키웠는데,
제가 무지 귀여워하고 사랑했었지요.

 

 

겨울날 아침에 마루에 나와보면,
누렁이가 추운지 마루 위에 올라와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무척 가여워 보이더군요.

 

 

'겨울인데 개도 얼마나 추울까?' 안쓰러운 마음에,
언니가 물려준 제 헌 코트를 가져다 따뜻하게 덮어주며

다독거려주곤 했지요.
그럼 어쩜 갑자기 누렁이의 눈빛이 애처롭고도

아양스럽게 변하면서 참 능청스럽게도(*^^*)

제가 덮어준 이불 코트를 뒤집어쓰고
사람처럼 엎드려 있는데....

 

 

잠시 후, 제 어머니께서 하이 소프라노 비명과 함께

글쎄, 제가 덮어준 누렁이의 이불을 매몰스럽게(?)

걷어버리시는 거예요.
그럼 그때야 누렁이는 겸연쩍다는 표정으로

슬그머니 일어나 마루 아래로 내려가더군요.

 

 

전 누렁이가 추울 것 같아 덮어 주었던 제 헌 코트를

벗겨 버리시는 엄마가 그리도 야속하고 섭섭했었는데,

개는 털이 있어 추위를 견딜 수 있다 하시며
개에게 이불(*^^*) 덮어주는 제 행위를 오히려

못마땅해 하시더군요.

 

 

누렁이가 청승맞아지고 이불 쓰고 엎드려 있는 개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고, 또 누렁이에게 좋지 않은 습관이

될 수 있다고 하셨지만 저는 틈만 나면 누렁이에게

이불을 덮어주곤 했었지요.

 

 

그런데 누렁이를 마루에 끈을 달아 키우다 보니,
개 밥그릇이 있어 약삭빠른 쥐들이 마당과 마루 주위를

들락거리다 어느 여름날 문이 열린 제 방에 들어오는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답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귀가 후,
저만의 동굴(*^^*)에 들어와 저만의 보물 서랍을

터억 여는 순간,
새까맣고 큰 어른 쥐가 징그러운 꼬리를 늘어뜨리고

그 속에 들어있는거예요!!!

 

 

외상 후 스트레스라고 하나요?
그 뒤로 거의 한 두 달 정도 제 방에 들어가고
서랍을 여는 것에 대한 공포심과 두려움에 무척 힘들고
정말 두려운 날들을 보내게 되었지요.
제겐 유령보다 더 무서운 쥐!

 

 

얼마 동안은 제 방에서 잠도 자지 못했고
제 방에서 공부를 한다거나 책상 서랍을

감히 열지도 못했답니다.
늘 제 서랍을 언니나 오빠가 열어서 안전성을 확인한 후에야
제 방에 들어가거나 간신히 책상에 앉을 수 있었지요...

 

 

책상 서랍 속에 웅크리고 들어앉아 있는 쥐에 대해 놀란 뒤로
별로 호감을 느끼지 못했던 쥐에 대한 제 미움과 저주는

상당히 깊어졌지요.
예를 들어, 지구에서 영원히 박멸되어야 할 불필요한 존재,
가장 못생기고 미운 짓만 하는 짐승,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 등등으로요.

 

 

더구나 어쩌다 도로에서 무단 횡단을 하다 즉사 당해
적나라하게 참사를 당한 쥐 시체를 보는 날은
일진이 좋지 않은 하루, 운 나쁜 하루라고 생각했었지요.
며칠 지난 후엔

도로에 눌어붙은 납작한 쥐포가 되어 있지만요. 

 

 

그런데 월트 디즈니의 미키 마우스 캐릭터나

만화 영화 등은 아주 좋아하면서

그토록 쥐를 싫어했던 저 자신과 상반된 모습을 보게 되니,

한 대상을 두고 이토록 모순된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쥐에 대한 부정적인 체험과 좋지 않은 이미지로 말미암아

저는 쥐를 단죄했지만,
하느님께서 만드신 창조물의 본성 그 자체는 변하지 않고

쥐 속에 살아 있었겠지요.

 

 

제가 쥐에 대해 나쁜 이미지를 보고,

쥐를 밉고 혐오스러운 존재로 전락시킨 반면,
월트 디즈니는
쥐 속에 있는 가장 깜찍하고도

사랑스러운 본성을 발견하고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꿈과 사랑을 주는 예쁜 미키 마우스 캐릭터를

창조해 냈으니까요.

 

 

마찬가지로 모든 사물과 대상엔

동전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듯이,

어느 면을 보느냐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쥐나 뱀도 생태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이고,
또 있어할 존재 이기에 하느님께서 창조해 주셨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우리 인간은

얼마나 소중하고 거룩한 존재들인지요?

 

 

케이블 TV 내쇼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킹 코브라가 자기와 비슷한 길이와 몸집을 지닌

커다란 뱀을 독으로 죽인 후

머리에서부터 서서히 삼키는 식사 장면을 지켜 보았는데,
제겐 징그럽고 무섭기까지 했지만
킹 코브라의 생존 방식이고 자연스러운 자연의 법칙이지요.

 

 

뱀을 잡아먹고 있는 킹 코브라의 모습도
하느님 눈엔 그저 예쁘고 사랑스러우실 텐데요..*^^*

 

 

참, 제가 덮어준 이불을 쓰고 능청스럽게 엎드려 있던

그 누렁이도 얼마 후,
강아지 때 키우라고 데려다 주신 분께서 다시 데려갔는데

그 후 소식은~ (상상에 맡겨드립니다.-.-)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모든 창조물의 가장 순수한 본성은
사랑 그 자체가 아닐까 합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에 존재하게 만드셨겠죠.
제겐 전혀 호감을 주지 않는 쥐나 뱀도 하느님의 사랑으로

창조되었고, 그 본성 안에 하느님의 사랑이 부여돼있으니까요.

 

 

사회적인 편견이나 고정된 선입관 혹은 부정적인 체험 때문에
모든 창조물 속에 있는 하느님의 본성인 사랑을 외면하거나
보지 못하는 눈뜬장님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또한, 하느님의 모상인 우리 인간들도,
각자가 속한 공동체에서 관계를 맺고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상황들과 행위들에 의해 단죄되거나

비판되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잘못된 행위들보다
더 위대하고 거룩한 하느님의 사랑이
그 영혼 안에 숨겨져 있음을 늘 잊지 않아야겠다고

묵상해봅니다.

 

 

지난 연말에 교수형을 당하는 후세인을 보면서
그 순간이 현실이 아닌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이기를

진실로 바라며, 제겐 그저 "후세인"이라는 이름이 던지는

많은 이미지보다는 그저 한 평범한 70대 노인,
나와 똑같이 죽음이 두려운 사람...사람...으로 보이더군요...

 

 

본질을 볼 수 있는 눈,
모든 창조물의 본질은 사랑 자체이고,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도달하고자 하는 갈망 역시
궁극적으로는 사랑 안에 잠기고
사랑 그 자체가 되고자 하는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갈망이 아닌가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존재는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왔으니까요.
사랑으로 시작된 존재이기에,
사랑을 갈망하고
사랑을 추구하다
사랑으로 되돌아가는 존재...!

 

 

누군가에 의해, 지금 이 순간도

제겐 얄미운(*^^*) 쥐를 비롯해 모든 창조물 속에 숨어있는

"사랑의 본성"을 끊임없이 개발해 내고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선하신 하느님을 드러내 보여주시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겠지요.

 

 

알파요 오메가이신 주님께서는

지금도 쉼 없이 활동하시고 계시며
어둠이 결코 빛을 이길 수 없음을

우리의 모든 역사와 삶을 통해
증거해 주시고 계십니다.
오늘도
본질을 볼 수 있는, 사랑의 눈을 주십사 청해봅니다.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 1코린 12, 6-7 >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며,희망찬 2월 열어가시길 바랍니다.

       Dreaming, Ernesto Cortaz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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