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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01) 우울한 결혼식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29 조회수802 추천수5 반대(0) 신고

 

 

지난 토요일에 친정 고모님의 딸 결혼식이 있어 참석하였다.

암 투병 중인 고모님은 병원에 입원 중이어서 아마 참석 못할 거라고 했는데, 가보니 손님맞이는 못하고 한쪽 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자주색 치마에 연분홍 저고리를 입고 머리엔 모자를 쓰고 있었다.

골격이 크고 다부진 체격을 가졌던 고모는 힘든 항암치료 때문인지 반쪽이 되어 있었다.

두 손을 잡는 순간 어린애처럼 가냘퍼진 손이 명주고름처럼 힘이 없고 쉴새없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 먹지를 못해 기력이 너무 쇠진해진 탓이라고 하는데, 너무나 안쓰러워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어려서부터 나는 고모를 참 어려워 했다.

다섯 살 위였지만 서열이 고모였고 또한 성품이 괄괄하여 단 한번도 고모에게 대거리해 본 적도 없고 감히 그럴 생각조차 못하며 자랐다.

그런데 병고에 너무나 나약해져 어린애처럼 아무 힘도 없이 돼버린 모습에 처음으로 내가 손윗 사람이 된 것 같은 보호본능이 솟는 것이었다.

두 손을 꼭 잡고서 눈물을 글썽이며 힘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혼자서는 일어설 기력조차 없어 아들이 업고 예식장에도 들어가고 식당에도 들어갈 정도로 거동을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여동생도 똑같이 암투병을 하면서도 아직은 멀쩡히 일하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참 대조적이었다. 동생은 항암주사 맞는지가 1년 반이나 되었고, 고모는 서너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 주사를 맞아도 동생이 훨씬 더 많이 맞았는데, 왜 그렇게 다를까 싶었다.

 

나이탓일까?

고모가 아홉살이 많으니까 아마 그것도 무시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고모는 육십대고 동생은 아직 오십대이니까.....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신적인 것도 있는 것 같았다.

고모는 능력있는 남편을 만나 결혼초에만 좀 힘들었을까 평생을 고생 안하고 잘 살아왔다.

먹지 못하고 기운이 없다고 수시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다.

고모부는 온갖 수발을 다 들며 꼭 병을 고쳐주고 말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그에 비하면 동생은 늘 비싼 치료비를 걱정해야 하고 살림살이도 여전히 하면서 투병을 한다. 결혼 후에 처음 몇 년을 제하고는 늘 생활전선에서 뛰어야 했고 제부는 돈벌러 나가야 하니 병중인 아내 수발을 들어줄 수가 없다.

동생은 그래서인지 의지력이 대단하다.

깡다구가 보통이 아니다.

뼈주사, 항암주사 등을 줄기차게 맞으면서도 얼마나  말못할 고통이 있으련만 잘 견뎌내고 있다.

 

고모는 20Kg이 빠졌다고 하는데 훅 불면 날아가 버릴듯 검불같은 모습이다.

동생은 희던 얼굴이 검으스레하게 되긴 했어도 씩씩하게 돌아다닌다.

참 병도 사람 보아가며 심술을 부리는 가 싶다.

병으로 말하면 오히려 동생이 더 중증인데........

 

치료비 걱정 같은 거 안해도 되고 극진히 보살피는 남편의 보호속에서 고모는 투병을 하고, 늘 비싼 치료비 걱정에 보살핌 없이 혼자 극복해야 하는 동생은 악착같은 자기의지로 버티는 모습을 보면서 요즘 내가 몸이 좀 안좋다고 이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다고 하면서 죽는 시늉을 하는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난 고모같은 재력도 없고 동생같은 의지력도 없는데 뭘 믿고 이렇게 엄살인가 싶다.

다만 나에겐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는 마음 밖엔 없는데!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고모에게 먹기 싫으면 마시는 거라도 자꾸 마셔야 한다고, 과일이라도 갈아 자꾸 마시라고, 영양주사 아무리 맞아야 소용없고 음식을 먹어야 기운 차린다고, 신신당부 하는 나에게 말 잘 듣는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끄덕끄덕 하는 고모를 뒤로 하고 돌아오는 마음이 참으로 스산하고 서글퍼졌다.

 

그토록 당당하고 보름달처럼 훤하던 고모가 이제 병든 병아리처럼 가엾은 마음만 들었다.

억척으로 이기고는 있지만 얼굴에 감출 수 없는 병색이 드리워진 동생의 모습을 보는 것도 마음이 아팠다.

서로 바쁘게 사는 생활에서 오랜만에 고향 사람도 만나게 되고 멀리 사는 친척들, 사촌 육촌 당고모도 보게 되는 즐거운 결혼식이 그날은 참으로 기분이 가라앉는 우울한 결혼식이 되었다.

그래도  막내 결혼식을 보려는 일념으로 업혀서까지 식에 참석한 고모의 엄마로서의 처절한 모정과 안간힘이 느껴지는 결혼식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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