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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혈하는 여인이 보인 용기 있는 행동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30 조회수578 추천수6 반대(0) 신고

 

 

<하혈하는 여인이 보인 용기 있는 행동>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 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다. 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마르 5,21-43)   

 

 

  마르코복음 저자는 아주 독특한 문장 기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중요한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서 앞뒤로 다른 내용의 이야기를 둘로 나누어 둘러쌓는 기법입니다. ‘하혈하는 여인의 치유’를 가운데 두고 ‘야이로의 딸을 살리다’라는 이야기를 둘로 나누어 봉투처럼 감쌌습니다. 그 이야기를 특별히 강조 하고 싶어 했습니다. 학자들은 이를 두고 “봉투 기법” 또는 “샌드위치 기법”이라고 설명합니다. 마르코 저자가 보여주는 문장 작법입니다. 복음서 전체에서 여기 외에도 예닐곱 개 정도가 더 나타납니다.  

 

  유대 율법에 의하면 월경하는 여인은 부정하다고 여겼습니다. 그 기간이 끝나도록 잠자리는 물론 가족들과 접촉을 하면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혈을 12년간 하였다면 그녀의 상황은 최악이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종교적으로 가장 부정한 인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아무런 접촉도 못하였습니다. 그녀가 만졌던 모든 물건들, 심지어 문고리도 만지면 안 되었습니다. 이웃 사람들과도 교류를 못했을 것입니다. 그저 얼굴만 바라 볼뿐 철저히 고립된 생활을 하였을 겁니다.   

  본문 글 내용을 보면 그녀는 병을 치료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다행히 남편이 어진 사람이었겠죠. 용하다는 여러 의사에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병은 낫지 않았고 쓸데없이 재산만 축내었습니다. 그러니 그녀가 겪는 고통이 매우 컸을 겁니다. 그녀는 사는 게 죽는 것만도 못한 상태였습니다. 저주받은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가 병 때문에 겪는 고통보다 사회적인 사망선고가 더 가슴 아프게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에이즈 환자 쯤 되었습니다.  ‘에이즈’하면 떠 올리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그들은 지금도 신분을 감추며 사회에서 격리된 채 살고 있습니다. 제대로 치료조차 못하고 지내고 있답니다. 오염된 수혈로 인한 감염 환자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그녀는 율법에서 말하는 죄를 두 가지나 저지르고 있습니다. 하나는 군중들이 모이는 곳에 나다닌 죄이고, 또 하나는 누군가와 접촉했다는 죄입니다. 그것도 실수가 아니라 고의적으로 율법을 범했습니다. 누구를 만진다는 것은 그를 오염시키는 행동입니다.

  그녀는 예수께서 부정한 사람들을 거리낌 없이 만지고 보듬어서 치료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오염시키는 행위이었습니다. 자신을 오염시켜서 병든 사람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였기 때문에 믿고 그를 만질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행동은 마지막 수단인 셈이었습니다. 시쳇말로 죽지 않으면 까무러치기 같은 행동입니다. 그만큼 절박했고 믿음이 확고했습니다. 그저 ‘아니면 말고’식의 행동이 아닙니다.

 

  그녀는 지금 율법에 정면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폭력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과 예언자들의 시대는 요한까지다. 그 뒤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데, 모두 이 나라에 들어가려고 힘을 쓴다.”(루카 16,16)의 말씀대로 그녀는 지금 힘(그리스어;폭력)을 쓰고 있습니다. 용을 쓰고 있습니다.

 

  마치 인도의 간디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보인 행동과 같습니다. 비폭력을 기치로 내세우면서도 사회적 불의에 분연히 항거하는 모습입니다. 일본 식민주의자들에게 항거한 우리민족의  독립운동도 이와 같습니다. 3.1 독립정신, 안중근 의사가 보인 자세가 그렇습니다. 천주교 신앙을 지닌 분으로써 용단을 내린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을 묵상하며 그녀가 누구인지 다 아셨을 예수께서 왜 비밀에 붙이지 않고 캐어 물으셨나하는 점이 궁금했습니다. 공치사가 아닐 텐데 생각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자신을 죄인시하는 율법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율법에 정면 도전하는 용기와 믿음을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의 자유를 위하여 발각되면 돌로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과감한 행동을 취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녀가 사회적 편견을 무너뜨리려고 용기 있게 시도한 점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녀는 예수님과 뜻이 맞는 동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녀를 뜻밖에도 딸이라 부르십니다. 그것은 하느님나라의 새 백성으로 받아드려졌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힘이 흘러나간 것은 그녀가 예수님과 비슷한 힘의 물꼬(채널)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의 힘이 나갔을 리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 내내 질병치료뿐만 아니라 사회적 구조악과 편견을 없애려고 노력하셨습니다. 가난하고 죄 없는 이들을 쓸데없이 억압하고 죄의식에 눌려 지내게 만드는 율법을 없애고, 사랑의 정신을 가르쳐 주시려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생명과 구원이 재산이나 율법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보여주시려고 하셨습니다.

 

  아직도 우리에겐 많은 구조악과 사회적 편견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많은 외국인 노동자 문제,  성차별, 지역 간 갈등, 에이즈 환자, 아파트 값 폭등, 빈부격차와 양극화, 물신주의 등등입니다. 이런 문제에 열린 마음을 갖고 접근하여야 합니다. 힘없어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우리의 사명일 것입니다.


 

- Sailing / Rod Stewa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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