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십자가 은총의 중개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30 조회수276 추천수2 반대(0) 신고

십자가 ... 고난과 섬김의 길.

믿음으로 사랑 안에서 - 하느님께 순종하는 길.

 

고난과 섬김의 희생하는 십자가의 길은 

우리의 낭만적인 인생의 여행이 아님에도 ...

 

많은 이들은 그 길을 신비스러운듯 - 마치 수학여행의 길처럼 가꾸고 있다.

 

십자가는 말하고 있다.

사소한 일에 대해서도 희생하고 인내하라고 가르친다.

 

많은 이들이 성모님을 따라야 한다고 말해도

성모님처럼 아드님의 십자가 아래엔 가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아마도 십자가의 길이 낭만적인 여행길인듯 싶어 보이나 보다.

 

십자가에 매달리면

원수에 대해 용서하게 된다.

저주 보다는 축복하는 기도를 하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십자가에 매달리기 까지는 자기 자아를 버리지 못한다.

아직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자가에 매달리면

세상의 것들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다.

 

자아를 버릴 수 있게 되어

원수에 대해 용서하고 도리어 축복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십자가에 매달리지 않으려 하고

또한 십자가에 매달리면 십자가에서 내려달라고 소리 지른다.

 

주님처럼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하고 온전한 믿음이 없다.

 

사소한 것까지 자신이 희생하고 인내하면서

원수를 사랑하고 축복(섬김)할 수 있는 때는

십자가에 매달리고(고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을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성모님을 따라야 한다고 온갖 말로써 성모님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이들에게서

나는 일찍이 그런 신심을 볼 수 있었던 적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영적투쟁이라며 - 사람을 죽이는 일을 더욱 자주 그들에게서 보았다.

 

거짓 은총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내려달라고 고함 지른다. 그리스도의 고통을 알지 못하느냐고 힐책하기에만 급급해 한다.

 

여러 성모영성 글에는 뛰어 나지만 쓸데없는 신심이다. (그들에게는)

평화와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그런 은총의 중개는 그들에 의해 거짓인 셈이 드러난다.

 

얼마나 오랜 사랑의 길에서

삶의 곤궁과 사람들로 부터 받는 상처, 자신의 죄뿐만 아니라 남의 죄까지도 가슴 안에 지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게세마네 고통(마음의 고통)이 먼저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마음 고통을 모르면서도

당신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고통을 먼저 알려고 하는게 측은하게 보인다.

 

자식의 고통을 알지 못하는 어머니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도 자식의 고통(게세마네 고통과 십자가 고통)은 저버린 체,

어머니의 고통을 알려고 하는게 얼마나 편안한 상상일까.

 

예수님을 모르면서도 성모님을 따르려고 하는게 속 보이는 세상에서 오는 지식이다.

머리로 하는 신심은 머지않아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징처럼 요란스럽기만 한다.

 

십자가의 길을 가지 못하고, 십자가에 매달리지 못하고, 십자가에서 내려달라고 소리 지르는게

안쓰럽게 보이기도 한다.  십자가의 길을 마치 수학여행 길인듯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