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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처음 심사에 참여한 신춘문예 시상식에 참석하고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31 조회수584 추천수4 반대(0) 신고
     처음 심사에 참여한 신춘문예 시상식에 참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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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일보 김종렬 사장으로부터 신춘문예 당선 상패와 상금 200만원을 받는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가 남 마리아씨  
ⓒ 지요하

내가 이른바 '등단'이라는 절차를 밟고 '작가'라는 명색을 얻게 된 데에는 네 분의 문인이 관여를 했다. 나는 그 네 분 모두를 '은인'으로 생각한다.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 예심을 하신 오찬식 선생님, 본심을 하신 유종호·최인훈 선생님, 그리고 1982년 <소설문학>지 제7회 신인상 심사를 하신 최일남 선생님이다.

나는 1982년 같은 해 중앙 일간지 신춘문예에 이어 문예지 신인상도 잡았는데, 위에 적은 네 분의 문인 중에서 최인훈 선생님은 동아일보 신춘문예와 소설문학지 신인상 모두 심사를 하셔서 나와는 이중의 인연을 가지신 분이다.

젊은 시절에는 그 분들을 종종 찾아뵙기도 했지만 지금은 가끔 소식을 드리는 것으로 인연을 되새기고 있다. 그 분들께 무슨 중요한 일이 있다는 소식이라도 듣게 되면 언제라도 달려가 뵐 마음을 갖고 산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내가 작가로서 출중한 면모를 드러내는 것임을 잘 안다. 그것이야말로 나를 작가로 뽑아준 그분들께 가장 큰 보람을 안겨드리는 일일 터이다. 하지만 나는 어느덧 이순의 나이에 이르도록 왜소한 작가로 머물고 있어 스스로 무안하고 죄송할 뿐이다.


▲ 대전일보 신춘문예 출신 작가들로 구성된 <대일문학회> 김천기 회장으로부터 축하 꽃다발을 받고...  
ⓒ 지요하


이런저런 이름 있고 규모 있는 문인단체들의 행사에도 잘 나타나시지 않는 유종호·최인훈·최일남 선생님과는 달리 오찬식 선생님은 <한국소설가협회> 행사에서 비교적 자주 뵙는다. 네 분의 '은인' 중에서 문인단체 행사를 기회로 지금도 종종 만나 뵈며 친숙하게 지내는 분이 한 분이라도 계신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어느덧 고희(古稀)에 접어드신 오 선생님은 오래 전에 부인과 사별하고 홀로 사시는 외로운 처지에다가 신장에 병을 얻어 복막투석을 하시며 사신다. 곁에서 돌봐주는 이 없는 외로움과 경제적 어려움, 거기에다가 병고까지 겹쳤으니, 오 선생님의 말년은 참으로 애처롭다.

2년 전에 소설가 황원갑 선배로부터 오 선생님 얘기를 자세히 전해 듣고 무심하게 살아온 것을 죄송스러워하며, 황 선배를 통해 오 선생님께 한 달 치료비 30만원을 드린 적이 있는데, 비록 넉넉지 못한 형편일망정 앞으로도 신경을 쓰며 살 생각이다.

<2>

1월이 기울어 가는 시점이다. 각 중앙·지방일간지들의 신춘문예 시상식 행사들이 모두 끝난 시점이기도 하다. 1월과 함께 신춘문예의 후반부 계절, 잔치 분위기도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지난 28일(일) 대전일보사의 신춘문예 시상식에 참석하고 왔다. 어쩌면 대전일보가 맨 마지막으로 신춘문예 시상식 행사를 치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대전일보사는 당선자 가족들의 참석 편의를 위해 굳이 일요일에 행사를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거기에서 신문사 경영진의 '배려'의 자세를 느낄 수 있었다.


▲ 신춘문예 시상식 자리에 앉아 있는 당선자들  
ⓒ 지요하


나는 동아일보 신춘문예 출신이라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에는 여러 번 참석한 경험이 있다.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상식 참석은 이번이 두 번째다. 몇 년 전에 인연지기 여성 시인 한 분이 시 부문에 당선을 하여 축하를 하러 간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소설 부문 심사위원 처지로 참석을 했다.

비록 예심을 했지만, 심사위원 처지로 신춘문예 시상식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니 그만큼 내게는 각별한 일일 터였다.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다. 내가 사는 충남 태안에서 대전은 서울보다 더 먼 곳이다. 하루 전 날 대전 태평동 성당에서 있은 내 대자 한 사람의 혼인 미사에 참석하고 온 처지라서, 다음날 다시 대전에 가는 일이 더욱 어렵게 느껴졌다.

내가 얼굴을 보이는 것이 도리인, 서울에서 오신 손님들도 몇 분 천리포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더욱 대전행을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대전을 가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신문사에서는 내게 초청장도 보내오고 전화로도 참석 요청을 했지만, 그것 때문에 내가 마음을 굳힌 것은 아니었다. 내가 심사에 관여하여 뽑힌 신인 작가에게 심사위원으로서 축하와 함께 격려를 해주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나는 시상식 참석을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당선 소감을 말하는 단편소설 부문 당선자 남 마리아씨  
ⓒ 지요하


나로서는 처음으로 해본 신춘문예 심사였다. 대학교의 문학상 심사를 비롯하여 이런저런 문예 행사의 심사에 참여해 본 경험은 꽤 많지만, 가장 화려한 문단 등용문인 신춘문예 심사는 이번이 처음이니 정말 각별한 일이었다. 내가 처음 관여하여 등단시킨(최초 인연을 나누어 가지게 된) 신인 작가와 대면하는 일이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 듯싶었다.

서울에서 사는, 본심을 한 박범신 선배와 윤후명 선배 모두 참석이 어려울 것 같았다. 강원도에서 사는 또 한 분 예심위원인 혜범스님(김영웅) 후배 작가도 참석이 어려울 것 같다는 전언이었다. 나까지 참석을 하지 않아서 소설 부문 심사위원 전원이 불참을 한다면 당선 작가로서는 매우 섭섭한 일일 터였다.

나는 예심을 해서 여섯 편을 본심에 올렸는데, 그 중에서 세 편이 당선작으로 거론된 최종심 4편 안에 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본심으로 올리면서 '이 작품이 당선될 것 같다'고 예상했던 작품이 당선되었다. 두 가지 사항 모두 나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었다.

별로 중요한 얘기는 아니지만, "내가 본심으로 올리면서 당선 예상을 했던 작품이 당선되어서 나도 당선 작가 못지 않게 기뻐요"라는 말을 당선 작가에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최초로 문단 등단에 관여한 사람인 당선 작가 남 마리아(본명 남현희)씨는 30대 후반의 여성으로 성신여대 교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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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보 신춘문예는 23년의 연륜을 가지고 있다. 역사도 짧지 않을 뿐더러, 지방지 대전일보 신춘문예의 권위는 중앙일간지와 맞먹는다. 대전일보가 배출한 문인들 중에는 눈부시게 활동하는 한국 문단의 기라성들이 많다.

소설가로는 윤대녕·한창훈·혜범스님 등을 꼽을 수 있고, 시인으로는 이정록·박미라·이정하 등이 있고, 아동문학가로는 신천희·최정심씨 등이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지역문단은 물론이고 한국문단에서 대전일보 신춘문예는 중부권 최고의 신인등용문으로 통한다. 어쩌면 정상급 유명 문인들로 심사위원을 구성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을 듯싶다.


▲ 대전일보 김종렬 사장, 동시 부문 심사위원 권영상 아동문학가와 함께 한 당선자들  
ⓒ 지요하

2007년도 신춘문예 소설 심사에 참여하면서 직접 확인한 것인데 응모자들의 거주지는 서울과 부산 등 전국에 분포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4개 부문(시·소설·동시·동화) 당선자 모두 대전·충청권 밖에 거주지를 두고 있는 이들이어서 신문사 측과 지역문단 인사들에게는 다소의 아쉬움을 안겨주었다.

또 지난해에 있어 올해도 4개 부문 당선자 모두 여성이어서 우먼파워를 실감시켜주는 듯했다. 그리고 동화 부문 당선자 조영희씨는 다른 작품으로 서울신문 신춘문예도 잡아서 '2관왕'의 영예를 안았다고 한다. 지난해의 경우 소설 부문 당선자는 같은 작품으로 중앙일보에도 동시 당선이 되었고….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은 남다른 면이 하나 있었다. 마지막 순서로 '당선작 낭송'이라는 행사를 했다. <한국시낭송협회>의 한수정 회장과 회원들인 이지현·김양미·우희순씨가 나와서 시와 동시를 낭송하고, 소설과 동화의 주요 부분을 낭독하는 일이었다.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눈을 감고 작품을 귀로 감상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전일보 신춘문예는 또 한가지 색다른 점이 있다. 대전일보 신춘문예 출신 작가들로 구성된 <대일문학회>를 착실하게 운영하는 점이다. 대전일보는 일년에 한 번씩 <대일문학>을 발간하여 신춘문예 시상식과 함께 출판기념회를 갖는데, 올해가 열 번째라고 한다. 대전일보에서 발간해주는 <대일문학>은 중부권 문학지들 중에서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 지역문인들의 공통된 견해다.


▲ 나로서는 문단 등단에 최초로 관여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소설 부문 당선자 남 마리아씨와 기념 촬영을 했다. 남 마리아(본명 남현희)씨는 10년 전에 천주교 신자가 되었고, 세례명을 필명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 지요하

<한국문인협회 대전시지회> 이헌석 회장(시인·문학평론가)은 축사를 하면서 "문학 환경뿐만 아니라 언론 환경도 날로 어려워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지방지 대전일보가 신춘문예를 계속 유지해 주는 것에 대해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아울러 매년 <대일문학>을 발간하여 대전일보 신춘문예 출신 문인들을 계속적으로 성원하고 고무해주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말했다. 나로서도 깊이 공감하는 사항이었다.

<대일문학회>의 현 회장은 소설가 김천기씨다. 그는 정림동에 소재하는 대전의 유명한 음식점 '정림가든'의 사장이기도 하다. 그는 올해도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상식 후의 축하연을 자신의 음식점에서 무료로 열었다. 신춘문예 당선자들과 가족 친지들, 그리고 회원들 수십 명이 모여 음식을 즐기고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더없이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의 그런 표정에서 문학에 대한 애정을 담뿍 느낄 수 있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문학이 꿋꿋하게 버텨 나갈 수 있는 기반이 그런 '애정'에 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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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1-31 11:07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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