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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02 조회수783 추천수6 반대(0) 신고
2007년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
 

 

When the days were completed for their purification

according to the law of Moses,

Mary and Joseph took Jesus up to Jerusale

 to present him to the Lord,

(Lk.2,22)

 
제1독서 말라키 3,1-4
복음 루카 2,22-40
 
중학교 때 아주 친했던 세 친구가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이 세 사람은 모두 다른 길을 걷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신부, 또 한 사람은 목사,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은 교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만나자 마자 신부와 교수는 “우리 한 잔 해야지?” 하면서 술을 주문합니다. 이 둘은 담배까지 피우면서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지요. 이렇게 담배까지 피면서 술을 마시는 두 사람이 못마땅했던 목사 친구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핀다네. 그런데 참 불공평한 것 같아. 목사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면 당장 난리가 나는데, 신부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건 왜 괜찮은지 모르겠단 말이야.”

이렇게 불평스러운 목사 친구의 말에 교수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요.

“아니, 그걸 여태 몰랐단 말이야? 신부들은 가장 중요한 ‘동정’을 하느님께 바치고 결혼을 안 했으니 무슨 재미로 사나? 따라서 술, 담배 정도의 재미는 인정해 줘야지. 그런데 목사들은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재미 볼 것은 다 보면서 거기다가 술 담배 재미까지 허락해 달라고? 그게 더 불공평한 것 아니야?”

이 교수 친구의 말이 꼭 맞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들의 봉헌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봉헌에 대한 말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돈의 액수에 따라 열심한 신자로 구분을 짓기도 하며, 또한 그 사람의 봉헌하는 모습이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형편없는 사람, 부족한 사람으로 판단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봉헌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느님 아버지께 자신의 가장 좋은 것을 바치고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질적인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십일조를 꼭 봉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십일조는 자신의 수입의 십분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도의 십일조라는 것입니다. 하루 24시간 중에서 그 십분의 일인 2시간 30분 정도는 주님을 위해서 봉헌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당에 앉아서 기도만 2시간 30분 동안 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을 기쁘게 할 만한 행동 역시 하나의 기도가 될 수 있는 것이고, 이 생활들을 봉헌한다면 주님께서는 더욱 더 기쁘게 받아 주실 것입니다.

바로 이런 마음으로 하루를 생활한다면 내가 쓰고 남은 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자신의 가장 좋은 것을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기쁘게 봉헌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 봉헌 축일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다시금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고 있는 것은 혹시 찌그러지고, 병들고, 내게 이차적인 것들은 아닌지요. 창세기의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노령에 얻은 귀한 자식을 제물로 바치라 명하실 때, 과연 납득이 갔을까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말씀을 좇아 이사악을 제물로 드리지요.

예수님께서도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당신의 생명을 희생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과연 지금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봉헌하고 있는지요?


오늘 하루의 십분의 일을 주님께 봉헌합시다. 방법은 알아서~~~



피아노 협주곡 제1번 bb단조 작품23('좋은 글' 중에서)


피아노 협주곡 제1번 bb단조 작품23은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가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사랑 받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작곡한 차이코프스키는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이며 모스크바음악원의 학장인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에게 이곡을 헌정할 생각으로 악보표지에 <루빈스타인님께>라는 문구를 쓰고는 음악원 교수들과 루빈스타인 학장을 초청해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연주가 끝나고 차이코프스키는 루빈스타인의 표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루빈스타인은 이 작곡에 대해 혹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작품은 너무나도 형편없네. 도저히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니야. 물론 몇 군데는 괜찮을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다시 손봐야 하네, 제대로 다 고친다면 다음 번 나의 음악회에서 연주해 주겠네."

이 말을 들은 차이코프스키는 억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루빈스타인에게 반박했습니다.

"죽을지언정 단 한음도 고치지 않을 것이요. 나는 이대로 출판할 겁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그 동안 너무나도 믿었던 루빈스타인에게서 그런 모욕적인 발언을 듣고는 치를 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악보표지에 써놓았던 <루빈스타인님께 >라는 문구를 지우고는 그 대신해서 <한스 폰 뷜로님께 >라고 고쳐 썼습니다. 한스 폰 뷜로는 당시에 유명한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이었습니다. 뷜로는 차이코프스키에게 이 음악을 받고 는 흥분하여 말했습니다. "이처럼 훌륭한 작품을 작곡가께서 제가 직접 받다니요! 이 기쁨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한스 폰 뷜로는 1875년 이 곡을 보스턴에서 세계 최초로 연주했습니다. 그래서 이 곡은 세계적인 음악으로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는 처음 루빈스타인에게 받았던 그 치욕과 모멸감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1878년 루빈스타인에는 파리박람회에서 러시아의 대표로 초청받아 이 음악을 연주하여 엄청난 호응을 받았습니다. 그 후 루빈스타인은 자신의 잘못을 차이코프스키에게 사과했고 차이코프스키 역시 이 음악의 부족한 독주부분을 수정하여 일단락되었다 합니다.

차이코프스키의 곡이 엉터리라 몰아붙였던 그가 그 곡을 연주하여 열렬한 찬사를 받으면서 조금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루빈스타인과 같은 세계 최대의 음악가도 자기 분야에서 실수를 하는 것으로 보아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남에게 모욕을 주어도 좋을 만큼 뛰어난 사람은 없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Behold, this child is destined
for the fall and rise of many in Israel,
and to be a sign that will be contradicted
(and you yourself a sword will pierce)
so that the thoughts of many hearts may be revealed.”
(Lk.2,34-35)
 
Ta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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