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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제관 부엌일 하시는 어머니 . . . [장현준 신부님]
작성자김혜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02 조회수2,243 추천수20 반대(0) 신고

 

 

 

 

 

 

어렵습니다...

 

평소 효도도 못하던 것이 효자의 마음으로 글을 쓰려고 하니

면구스럽습니다.

 

허나,

아직도 고생의 끝을 모르고 고군분투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이 글을 씁니다.

 

부모님은 지금 저와 함께 계십니다.

성당 옆에 집을 구해 두 분이 사십니다.

아버님은 병환으로 자리에 누워 계셔 한 몸 가누시기도 힘드시고

생계 유지도 어려워...

 

어머니가 출퇴근 하시면서 사제관 부엌일을 하고 계십니다.

어머니가 받으시는 월급으로 두 분은 소박하게 살아가십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이런 부모님의 처지를 생각할 때면

올화가 치밀어 그냥 술잔에 손이 갈 때도 있습니다.

 

부모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육십 평생이 넘도록 그렇게 끈기와 고생으로 살아오신 댓가가...

이것뿐이라는 사실에 더욱 울화가 치밀어 오르기 때문입니다.

 

아버님은 관공서의 운전기사로 일하셨습니다.

그러다가 30년 전에 출장을 가셨다가 한 쪽 눈을 다치셨고 시골의사가

치료하는 도중에 실명을 하셨습니다.

 

이젠 운전도 할 수 없는 몸이라 직장도 그만두셔야 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재산 보증을 서 준 것이 잘못되어,

있던 집 다 날리고 단칸방으로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두 분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어려움을 헤쳐나가셨습니다.

아버님은 다른 일을 찾아 다니셨고 어머니는 노점상을 했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상가를 하나 세 내어 수퍼마켓을 시작하셨습니다

몇 년 뒤에는 작은 아파트도 하나 사셨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이 10년을 채 못갔습니다.

제가 부제품을 받는 그 해에 부도가 났고,

부모님은 또다시 모든 것을  몽땅 날리셔야 했습니다.

 

이런 소식을 뒤늦게,

신학교에 있는 제가 듣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렇게 성실하게 살아오셨는데 또 그 지경이 되다니요!

미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부모님의 생계가 문제였습니다.

수소문 끝에 저를 잘 아시는 신부님이

사제관 주방 일을 봐 줄 사람이 없으니 내가 모시면 좋지 않겠느냐?

연락을 주셨습니다.

 

저는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고,

부모님과 상의한 뒤에 그 곳에 모셨습니다.

모셔다 드리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말이 좋아 성당에서 신부님과 함께 살면서 주방 일을 도와주시는 것이지,

솔직한 제 심정은...

어머니를 '식모'로 취직시켜드리고 돌아오는 기분이었습니다.

 

손주를 안고 그 재롱을 보며 며느리의 따뜻한 밥상을 받으셔야 할

연세에 이게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그러나 그렇게라도 계실 곳이 마련되었기에

저는 하느님과 그 신부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마침 그 성당에는 작은 집이 한 칸 있어서

아버님도 함께 계실 수가 있었습니다

 

방학 때는 인사를 드리러 가서 며칠 묵고 오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무엇이든 제가 잘 먹는 것을 바라셔서 소화제와 함께

부모님의 사랑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착한 신부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는 모습을

훔쳐 보았을 때는 심장이 서버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제가 신부가 되었을 때,

아버님은 제 손을 꼭 잡으시면서

 

"신부! 육십 평생에 이렇게 기쁜 일은 처음이네. 정말 고맙네!"

 

하셨습니다.

그 때 저는 속으로

 

"아버님, 어머님, 조그만 기다리세요. 제가 곧 모실게요." 했습니다.

 

보좌 신부를 마치고,

지금 이곳으로 부임하고 6개월 뒤에 성당 가까운 곳에 전세를 얻어

부모님을 모셔 왔습니다.

 

남들은

 

"어머니가 신부님 밥을 해주어서 무척 좋겠습니다.

 아버님도 함께 계시니 얼마나 좋습니까." 라고 합니다.

 

지나온 일들을 봤을 때,

부모님이 이렇게라도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또한 제 마음이 흡족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제관의 모든 잡일을 하셔야 하는 어머니의 모습과...

사목하는 아들에게 짐이 되지는 않을까하는 염려에서

항상 자리를 피하시는 아버님의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제가 신자들과 함께 있을 때,

저와 신자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어느새 모습을 감추십니다.

사무실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성당과 식당에만 계시다가

집에 가십니다.

 

아들을 생각하시는 아버님의 뒷모습을 볼 때면

언제나 불효를 저지르는 듯한 느낌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정든 고향 땅에 아담한 집을 하나 구하여

두 분의 노후를 편하게 해드리고 싶지만...

 

없는 집안에 태어나 배가 고파서 군대에 자원해 가셨던 아버지,

한국 전쟁을 고스란히 겪으셨던 아버지,

전쟁 중에 인민군을 잡아 훈장을 탔다고 용기를 자랑하시던 아버지,

작은 것에 기뻐하시고 정이 많으신 아버지,

남아의 호연지기가 있고 의리가 있다는 평판을 들으셨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예순 다섯의 연세에 비해 너무나 늙으셨고

몸이 축이 나셨습니다.

한 눈뿐인 것만 해도 억울한데,

당뇨병까지 얻으셔서 그 합병증으로 귀도 멀고 이도 다 빠져

젊은날의 그 풍채는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어려운 삶에 언제나 함께 하신 어머니,

가세를 일으켜 보고자 좋은 것 한번 제대로 못해 보신 어머니,

아버지의 병구완으로 자신의 몸조차 돌보지 못하시는 어머니,

 

아들의 밥까지 걱정하셔야 하는 어머니는 이중고에 시달리십니다.

 

언제나 긴장 한번 풀지 못하고 아버지와 아들 사이를 쫒아다니셔야하는

어머니입니다.

힘들었다는 투정 한 마디 안 하시고 40여 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아들을 위하시는 어머니이십니다.

 

당신의 몸이 불편해도 신부 일하는 아들이 신경쓸까봐,

또 안정을 취하셔야 할 아버님이 괜한 걱정을 하실까 싶어 남모르게

약을 잡수시는 어머니십니다.

 

저한테는 항상

 

"신부는 우리한테 신경쓰지 말고 신자들한테 잘해 주고 사목만 잘하라." 

 

말씀하십니다.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오신 아버지와 어머니,

저는 이 두 분을 존경합니다.

저한테 고귀한 삶을 교육시켜 주신 분이며

세상 누구보다도 고귀하신 분이십니다.

 

앞으로 좀더 안정된 생활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면서

오늘도 주님 안에서 두 손 모으며 성실하고 소박하게 살아가십니다.

 

전... 

제가 이런 부모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 [치마입은 남자의 행복]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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