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아이들에게 처음 술을 가르치다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02 조회수528 추천수3 반대(0) 신고
               아이들에게 처음 술을 가르치다

     




<1>

시골에서 자란 40대 이상의 사람들 중에는 소년 시절 아버지의 술 심부름으로 양조장을 다닌 기억을 가진 이들이 많을 것이다. 비닐 용기가 출현하기 전, 양조장의 큰 술독에서 막걸리를 푸짐하게 퍼서 됫박으로 넘치게 담아 주던 시절, 술 주전자를 들고 오면서 호기심 때문에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대고 한 모금 두 모금 술맛을 본 기억….

나는 소년 시절 아버지의 술 심부름으로 어지간히도 양조장을 많이 다녔다. 아버지는 내게 '제트기'라는 별명을 붙여주었고, 나는 그 별명에 홀딱 속아서 주전자를 들고는 나는 듯이 양조장으로 달려갔고 또 나는 듯이 달려오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주전자 꼭지에 눈이 가게 되었다. 주전자 꼭지 밖으로 찔끔찔끔 흘러나오는 허여스름한 막걸리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와 어른들이 왜 그것을 좋아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턴가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대기 시작했다.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대고 맨 처음 막걸리를 마셔본 기억은 명확하지 않다. 어느 날부턴가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대고 한 모금씩 두 모금씩 막걸리를 마신 기억,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서 몰래몰래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대는 그 짓이 이상하게 재미있었던 기억은 명확하다.

언젠가 한 번은 너무 여러 번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댄 탓에 주전자 뚜껑을 열어보신 아버지가 "오늘은 양조장 인심이 되게 박했구먼. 술 퍼주는 사람이 바뀌었나…"하시는 말을 들으며 얼른 외면을 한 채 슬그머니 부엌을 나오기도 했다.

술이라는 것은 어른들이 마시는 것이고 아이가 마셔서는 안 된다는 것을 어른들의 '교육'을 통해 잘 알고 있었지만, 나는 아버지 술 심부름 덕에 소년 시절부터 자주 몰래몰래 막걸리 맛을 보았고, 막걸리를 두세 모금 마시면 뱃속이 쏴 끓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게 이상하게 기분 좋다는 것을 체감적으로 알게 되었다.

내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아버지 술 주전자를 들고 양조장을 다니는 일은 동생들에게로 이어졌다. 내 밑으로 누이가 셋에 남동생이 둘인데, 모두들 술 주전자를 들고 양조장을 다닌 경험을 갖게 되었다.

언젠가 한 번 남매들이 거의 모였을 때 옛날 어린 시절 아버님의 술 심부름 이야기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누이 둘과 남동생 둘 모두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댄 기억들을 갖고 있었다.

지금 40대 중반인 막내 동생은 주전자 꼭지를 너무 여러 번 빨아서 술에 취해 비틀거린 적도 있었고, 아버지에게 들킨 나머지 꿀밤을 먹은 적도 있다고 실토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며 배꼽을 잡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2>

몰래몰래 주전자 꼭지에 입을 대고 한 모금씩 두 모금씩 막걸리 맛을 보던 시절을 벗어나, 술을 대접에다 가득 따라서 꿀꺽꿀꺽 제대로 마셔본 경험은 고1 때였다. 그때 취기라는 것을 알았다. 술을 마시면 취한다는 것을, 취한다는 것이 뭔지를 알게 된 다음부터는 쉽게 '탐닉'의 세계로 빠져들어 버렸다.

교복 단추를 두어 개씩 풀어놓고 교모(校帽)도 삐뚜름하게 쓰고 다니기 좋아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삼동네의 잔칫집이라는 잔칫집은 다 찾아다니며 취기를 즐기더니, 급기야는 사고를 저지르고 말았다. 고1 시절 겨울방학 때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밤거리를 돌아다니다가 한 어른과 시비가 붙게 되었고, 그 어른이 경찰서에 고소를 한 바람에 모두 서울로 줄행랑을 놓은 사건이었다.

내가 아스라이 멀어진 고1 시절의 그 사건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 것은 지금 고1 시절이 끝나가고 있는 아들녀석 때문이었다. 논산의 D고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아들녀석은 지금 집에 와서 방학을 보내고 있다. 이 달 10일로 예정된 성당의 청소년 음악제 '아뉴스데이'를 위해 매일같이 부지런히 연습을 하고 있다. 키보드와 기타, 두 가지 악기를 다룰 줄 아는 녀석을 보노라면 절로 흐뭇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런데 엊그제(1월 31일) 저녁 연습을 마치고 밤 10시쯤 집에 온 녀석은 밤참을 요구하면서 포도주도 한 잔 달라고 했다. 아내는 술을 청하는 녀석을 보며 어이없어 했지만 나는 웃음을 지었다. 녀석에게 포도주를 한 잔 주고 싶었다.

그러나 녀석이 청하는 포도주는 집에 없었다. 통풍 환자인 내가 통풍 환자에게 무난하다는 포도주(가장 값싼 1600원짜리 와인)를 사다놓고 가끔 한 잔씩 반주를 하는데, 그게 다 떨어진 탓이었다. 하지만 집에 맥주와 소주는 있었다. 지지난해 상처를 한 동생이 매일같이 형 집에 와서 저녁식사를 하므로 동생을 위해 늘 소주와 맥주를 마련해 놓고 있는 덕이었다.

나는 냉장고의 두 가지 술 중에서 맥주를 한 병 꺼내어 딸아이와 아들녀석에게 한 컵씩 따라주었다. 대학생인 딸아이는 이미 맥주를 마신 경험이 여러 번인 것 같았다. 하지만 아들녀석은 처음이라고 했다.

전에 할아버지 제사 때라든가 명절 때 음복을 하면서 제주(祭酒)를 한 모금씩 마신 적은 있지만, 제대로 한 잔 가득 마신 적은 없다고 했다. 중학생 시절부터 수학여행을 갈 적마다 아이들이 선생님 몰래 술을 사다가 마실 때도 자신은 거기에 끼지 않았노라고 했다.

아직 술 경험이 없는 아들녀석을 기특하게 여기면서 나는 아들녀석 앞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녀석을 흥미로운 눈으로 지켜보았다. 녀석은 밤참을 먹으면서 맥주 한 컵을 세 번으로 나누어 마셨다. 뱃속이 쏴 끓는다고 하더니, 얼굴이 뜨거워진다고 했다. 녀석은 어느새 붉게 충혈된 얼굴이었다.

누나는 "겨우 맥주 한 컵 마시고 말이 많아지니, 세 잔 정도 마시면 완전히 집이 떠나가겠다"며 동생을 놀리고, 엄마는 쓸데없이 녀석이 아빠를 닮지 않을까 걱정했다. 장차 술을 마시더라도, 술을 너무 좋아하여 성인병을 부르고 매일같이 약을 끼고 사는 신세는 되지 말아야 한다고 자못 훈계를 하기도 했다. 나도 한 마디 했다.

"무엇보다도 절제가 중요해. 과음은 건강을 해친다는 걸 늘 명심해야 해. 그리고 술 마신 표를 나쁘게 내는 사람은 술 마실 자격이 없어. 술을 마시고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남을 피곤하게 사람은 결코 멋있는 사람이 못돼. 적당히 술을 즐기면서 남들도 즐겁게 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해."

녀석은 장차 어른이 되면 그렇게 술을 마실 자신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큰소리치는 녀석의 빨개진 얼굴이 나는 더욱 예쁘게 보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선 아들녀석에게로 가서 몸을 안아주고, 아빠보다 키가 큰 녀석의 얼굴을 끌어당겨 따끈따끈한 뺨에 입을 맞춰주었다. 그리고 녀석의 손을 잡고 방안의 컴퓨터 앞으로 갔다.

컴퓨터를 켜고 <오마이뉴스>를 연 다음, 5년 전에 쓴 글 하나를 찾아 보여주었다. 월간 <말> 2002년 10월호에 쓰고, 인터넷에도 올린 '맨 처음 고백/가출 1주일만에 집에 돌아왔더니'라는 글이었다. 내가 고1 시절 겨울방학 때 술을 마시고 저지른 사건에 대한 추억담이었다.

아들녀석은 빨갛게 취기가 오른 얼굴임에도 진지한 자세로 아빠의 글을 읽었다. 자신의 지금 시기와 일치하는 아빠의 그 시절 모습에 흥미를 느끼는 것이 분명했다. 아빠의 글에서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에서도 흥미를 느끼는 녀석 모습을 보며 나는 녀석의 이마에 또 한 번 입을 맞춰 주었다.

<3>

어제(1일) 저녁 우리 가족은 모처럼 만에 외식을 했다. 최근 감기를 앓으신 다음(회복 단계에서) 그만 미끄러운 아파트 현관 로비에서 낙상을 하여 허리를 다치신 바람에 며칠 째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마련한 외식 자리였다.

정말 모처럼 만의 가족 외식이었다. 전에 가운데 제수씨가 살아 있을 때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가족 외식을 했다. 그러나 제수씨가 세상을 떠난 후로는, 자꾸 제수씨 생각도 나고, '빈자리'가 더욱 확연해지는 현상 때문에 알게 모르게 가족 외식 빈도가 줄어들고 말았다.

또 한 번 그것을 의식하면서, 그러나 아무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으면서 우리는 한방오리로 저녁식사를 했다. 낙상 후유증을 앓으시는 어머니께서 그런 대로 잘 잡수셔서 나는 좀 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나는 집에서 가지고 간 포도주로 반주를 하면서 동생을 위해 소주도 한 병 주문했다. 나는 동생을 제외한 가족 모두에게 포도주를 한 잔씩 주려고 했는데, 아들녀석은 소주를 원했다. "어제 저녁에는 맥주를 마셨으니까 오늘은 소주를 좀 마셔볼래요"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작은아버지와 고1 조카녀석이 마주앉아 소주를 대작하는 형국이 되었다. 나는 어머니와 딸아이와 중1 녀석인 조카 규왕이에게 포도주를 따라준 다음 다같이 어머니의 건강 회복을 위한 '건배'를 했다. 알코올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특이 체질을 가진 마누라는 빈 잔으로 건배를 했다.

아들녀석은 소주를 두 잔이나 마셨다. 그리고 포도주도 한 잔을 마셨다. 중1 규왕이도 소주잔으로 포도주를 두 잔이나 마셨다. 두 녀석 모두 얼굴이 붉어졌으나 소주를 마신 아들녀석이 더 정도가 심한 것 같았다.

어머니는 "왜 그새 어린애들한테 술을 가르치느냐"고 내게 핀잔을 하시고, 두 손자 녀석을 번갈아 보시며 걱정을 하셨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이것도 다 교육이에요. 제가 가정교육을 잘하기 위해서 가족 외식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술을 주는 거예요."

그리고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아빠는 옛날 고등학생 시절에 어른들 몰래 밤거리를 쏘다니며 술을 마시고 큰 사고를 쳤지만, 너희들은 절대 어른들 몰래 술을 마셔서는 안 돼. 어른이 될 때까지는 가족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만 가족과 함께 술을 마셔야 해. 그러면서 술 마시는 법을 배워야 해. 술에 대한 예의범절도 모르면서 술을 마셔서는 안 돼. 너희들, 어른이 될 때까지는 가족 가운데서만 술을 마신다고 약속할 수 있지?"

녀석들은 좀 더 진지하게 보이는 얼굴 색깔로, 그리고 군대식으로 명확하게 대답하며 활짝 웃었다. 녀석들의 그런 모습을 보며 어머니도 웃음을 지으셨다. 하여 더욱 즐겁고 유쾌한 가족 외식 자리였다.  


관련 기사 - 가출 1주일만에 집에 돌아왔더니


 2007-02-02 13:37
ⓒ 2007 OhmyNews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