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은 화려하고도 초라한 세상, 행복하고도 불행한 세상을 보고 돌아왔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 눈에 세상은 예전 같지 않았다. 혼란스러웠다. 도무지 앞뒤가 맞지도 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세상, 가난하다고 착하지도 않고, 지체가 높다고 거룩하지도 않은 세상이었다. 수렁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마르 6,17-29)에 대한 보도에 이어 나오는 제자들의 활동 보고(마르 6,30), 그리고 돌보는 이 없이 굶주리는 이들(마르 6,35-44)의 이야기는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모순과 딜레마에 빠진 세상과 제자들의 처지가 어떠했는지를 말해준다. 스승께서 보시기에 제자들은 지치고 혼란에 빠져 있었다.
나무는 쉬면 나이를 먹는다. 나이테는 묵은 시간과 새로운 시간을 구분 짓는 금이다. 쉬었다는 것은 성장했음을 말해준다. 나이테가 없는 나무는 크게 자라지 못하고 켜도 무늬가 없어 아름답지 않다. 쉼은 시간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쉼은 과거를 사라지게 하지 않고 영혼에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고 삶을 하느님 것으로 숙성시킨다. 하느님께서도 6일 동안의 창조를 완성하시고 쉬셨다.
세상을 보고 혼란에 빠진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깨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가서 좀 쉬라’고 말씀하신다. 끝은, 아니 완성은 외딸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 쉬는 것이다.
윤인규 신부(대전교구 솔뫼 피정의 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