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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월 4일 야곱의 우물 - 루카 5, 1-11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7-02-04 조회수674 추천수8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고, 군중은 그분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다. 그분께서는 호숫가에 대어 놓은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거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 두 배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그에게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하신 다음, 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사실 베드로도,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자기들이 잡은 그 많은 고기를 보고 몹시 놀랐던 것이다. 시몬의 동업자인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그러하였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루카 5,1­-11)

우리 수도회는 해마다 2월 10일, 베네딕토 성인과 쌍둥이였던 성녀 스콜라스티카 축일에 종신서원을 하고, 그 전날엔 첫서원을 합니다. 제가 첫서원을 한 그해 2월 9일은 주일이었습니다. 그날의 독서와 복음이 바로 오늘 복음 말씀과 같은 제1독서 이사야의 부르심과 제2독서 바오로의 소명입니다. 마치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의 부르심이 서원식을 위해 준비된 것 같았습니다. 더구나 이사야서에는 세라핌 천사들이 하느님 어좌 앞에서 ‘거룩하시다’를 노래하는데, 그날 그 천사의 이름을 받게 된 것은 제게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서원한 다른 수녀님들보다 내심 더 우쭐거렸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내가 뽑혔다고 느끼는 것은 참 기분좋은 일입니다.

예수께서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드실 제자들을 부르시는 오늘 복음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봅니다. 예수께서 육지와 배에서 군중을 향해 말씀하시는 부분과 깊은 데로 가서 시몬이 고기 잡는 부분, 그리고 그뒤의 반응과 결과.
많은 군중이 호숫가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반면 시몬 베드로는 군중 가운데 있지 않고 지금 일어나는 일에 별 관심이 없는 듯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무심히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베드로와 동료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겠다고 서로 밀치며 열중하는 군중이 참 대조적입니다.

 

그들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매번 허탕만 쳤으니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었을 겁니다. 어서 빨리 정리하고 잠이나 푹 자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들의 작업을 방해하고 더 피곤하게 하시지요? 효과적으로 설교를 하기 위해 시몬의 배를 빌리지만 어쩌면 의도하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군중에게 설교를 하시면서 슬쩍슬쩍 바라본 빈 배, 그물을 손질하는 사람들의 말없는 표정과 몸짓에서 무엇인가를 읽으시고 그들에게 다가가려고 마음먹었는지도 모르지요.

 

군중들과 거리를 약간 두기 위해 배를 호수로 좀 밀어 달라고 베드로에게 청하시고 거기에 앉아 가르치십니다. 시몬은 이제 자신의 배에 탄 예수님의 말씀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겠지요. 예수님은 군중이 돌아간 뒤에도 배를 떠나시지 않고 고기를 잡으러 가자고 하십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5,4­5ㄱ).

온 힘을 쏟아 하는 데까지 다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던 일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피로와 불신감과 자포자기 감정으로 쳐져 있는데 누가 다시 하라고 제안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물리칠 수도 있고, 속는 셈치고 한번 더 용기를 내어 최선을 다해볼 수도 있습니다. 오늘 시몬은, 목수 출신이 어부 출신인 자신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치라는 말에 모험을 합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5,5ㄴ).

 

우리는 가끔 복음서에서 앞뒤를 재지 않고 행동하는 베드로의 순수한 단순함을 봅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하기도 하고, 백점 받을 말을 하다가 금방 사탄이라고 꾸중을 듣기도 하고, 물 위를 걷게 해달라고도 하고, 주님을 인식하자 물에 첨벙 뛰어들기도 한 베드로. 그것이 예수님 보시기에 갈고 닦으면 튼튼한 반석으로 만들 좋은 바위였나 봅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요한 2,5) 투신할 수 있게 될 튼튼한 반석이….

배가 가라앉을 지경으로 많은 물고기를 보는 순간 그는 예수님의 큰 권능 앞에서 자신의 죄스러움을 보게 됩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가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5,8ㄴ). 이사야 역시 엄위하신 하느님의 대전에서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부를 알수록 자신의 초라하고 가난함을 더 인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판공성사 때 고백거리가 없어 고민하는 우리와 자신을 엄청난 죄인으로 고백하는 성인의 차이가 이런 데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죄스런 모습을 보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자비하신 하느님 앞에 나의 모습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곧 회개의 시작입니다. 루카복음 15장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라는 말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새롭게 시작되듯이, 베드로도 이사야도 죄인이라는 체험에서 주님과의 관계가 시작됩니다.

 

한 번의 회개로 우리가 정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종류의 회개는 단지 윤리 도덕적으로 잘못한 것에 대해 양심적으로 반성하는 차원보다 훨씬 심도 깊은 것이라 여겨집니다. 예수님은 그를 죄인으로 인식시키는 것에서 끝내시지 않습니다. 더 깊은 관계로 인도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5,10ㄷ). 떠나가 달라고 하는데도 떠나시지 않고, 오히려 죄인인 그들과 함께 하늘나라의 일을 하시고자 합니다. 아마 처음부터 그럴 요량으로 그 배를 눈여겨보았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들은 생업도 가족도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갑니다. 못난 모습을 고스란히 받아주시며 신뢰를 보여주시는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관계 안에서 수많은 어머니와 형제 자매들을 얻을 것이며 진복팔단 정신대로 살면서 땅도 하느님 나라도 모두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가난함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하지만 내가 응답을 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기에 “부르심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힌 사람은 적다” 하셨지요.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받은 소명과 선택이 굳건해지도록 애쓰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은 결코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2베드 1,10).

정 세라피아 수녀(포교성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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