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선악수의 열매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는 눈을 떴다. 그들이 느낀 부끄러움은 사람에 대하여 도덕적으로 깨닫게 하는 동시에 더 높은 경지로 인도한다. 그들의 부끄러움은 하느님과 사람이 대화를 시작하게 한다. “너 어디 있느냐?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창세 3,9-10). 원조의 부끄러움이 하느님과 말문을 트게 하고 마침내 구세주 강생까지 초래하였기에 부활찬송은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표현을 빌려 ‘오, 복된 탓!’이라 노래한다.
들에 있던 목자들한테는 ‘구유’가, 동방박사들한테는 ‘별’이, 성전에 머물던 시메온과 한나한테는 ‘신앙’이 구세주 예수님을 알아보는 신표가 되었다. 그러나 겐네사렛 사람들은 자신들의 ‘필요’가 예수님을 알아보는 표지가 되었다.
사람은 처음엔 눈에 보이는 것을 알아보고, 다음엔 생각하는 것을 알아보고, 그 다음엔 가슴으로 느끼는 것을 알아보고, 마지막으로 행하는 것을 알아본다.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며 쫓아다닌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참조).
원조는 부끄러움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였고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으며 하느님 앞으로 나서게 되었다. 먹음직스러운 과일을 본 눈을 통해 시작된 부끄러움은 성찰하고 통회할 줄 아는 사람, 실천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한다.
윤인규 신부(대전교구 솔뫼 피정의 집) |